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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남아시아에서는 음력 4월 15일에 붓다의 탄생을 축하한다. 사실, 불기 2565년이라는 기준도, 1956년 세계불교도대회를 열고 회의 끝에 후려친 연도다. (그나마도 북방불교와 남방불교는 1년 차이가 있다. 그레고리력 어쩌구,,, 음력 어쩌구,,, 때문에) 붓다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또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나마 고고학적 근거 덕분에 대략 이때쯤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할 순 있다. 확실한 점은 80년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건 다 인도의 텍스트들 때문인데, 그들은 시간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다. 태어난 것은 언젠가 죽고, 다시 태어나서 살아가는데, 무한히 순환하는 시간을 자르는 게 다 무어냐, 마 그런 느낌이다.
어쨌든 북방과 남방 모두 음력 4월을 붓다의 탄생월로 정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어 세세손손 전해진 전통일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이 되기까지>
한국에서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이 된 것은 크리스마스 덕분이었다. 이승만이 크리스마스만 공휴일로 지정하자 곧바로 불교계는 ‘딥빡’했는데, 그때는 ‘비구’니 ‘대처’니 종단끼리 나뉘어 자기들끼리 열심히 싸울 때라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 후, 용태용 변호사와 불교계는 부처님 오신 날 공휴일 제정을 위해 위원회도 꾸리고 소송도 걸고 아무튼 여러모로 노력한 결과, 75년 공휴일 제정에 성공한다. 혹자는 부처님 은혜가 아니라 변호사님 은혜라며 차라리 그쪽에 감사하겠다고 하는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것을 모르는 얘기다. 꾸짖을 갈!
부처님 오신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몽골이 있다. 대만은 원래 공휴일로 지정됐다가 크리스마스와 함께 취소했고, 일본은 원래 둘 다 공휴일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홍콩만, 그리고 러시아 연방에서는 칼미키야 공화국(유럽 유일의 티베트 불교 국가)만 공휴일로 지정했다.
대충 요 정도까지만 배경을 설명하고, 이제 이웃 나라 모습을 함 보자.
(고백하자면, 늦은 밤 갑자기 연락 온 임권산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쓰긴 쓰는데, 나는 해외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본 사람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풍습은 나도 간접경험으로 후려쳤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리고 내부고발을 하나 하자면, 죽돌 편집장이 다른 건 몰라도 '협박'스킬 만큼은 소속 기자들에게 아주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북방 불교 : 일본, 중국, 대만, (+한국)>
1. 일본
일본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부처님보다 종파의 교조를 더 쳐준다는 점이다. 각 종파 간의 경쟁 관계가 제법 심한데,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 기념보다 교조 탄생일이 더 빅 이벤트다. 그렇다고 부처님 오신 날을 안 쇠는 건 아니다. 다만, 일본은 전 세계가 음력으로 기념하는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양력 4월 8일을 주장하고 있다. (일부 종파는 음력 4월 8일로 기념한다)
그래서 한창 꽃 피는 계절에 축제를 열게 되므로, ‘부처님 오신 날’ 같은 용어보다 ‘꽃 축제’라는 용어가 더 자주 쓰인다. 이름에서 보듯, 종교 행사라기보다 지역 행사 같은 느낌이다. 아이들은 아기 부처님을 모신 가마를 끌며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관욕을 한다. 그 관욕수를 마시면 그해에는 병이 없고 건강하다나 뭐라나 해서 다들 관욕수를 받아 간다.
이 축제는 현대화도 됐다. 작은 찹쌀떡을 만들어 절의 지붕에 올라 던지는데, 떡 안에 경품권이나 상품권 등이 들어 있어 동네 사람들 모두가 이승엽 홈런볼 받듯 눈에 불을 켜고 떡을 받는다. 떡 던지는 사람이 제대로 못 던지면 욕먹고 강판당하는 일도 종종 있다 카더라.
법회는 하긴 해도 우리나라처럼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법문도 없다. 물욕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비지니스 모델, 그것이 일본 불교의 뚜렷한 특징이다.
2. 중국
동아시아 불교의 옛 따거, 중국의 불교는 문화대혁명으로 다 사라졌다 어쨌다 하지만, 소수의 절간에서 부진장강곤곤래처럼 나름대로 전통을 지켜왔다. 여기도 4월 8일 날 행사를 열긴 한다. 그런데 행사 방식이 한국이나 일본처럼 종단이나 종파로 갈라지는 게 아니라, 사찰별로 나뉜다.
사찰 하나가 하나의 종파만큼 위력을 발휘하던 클라스를 보여주지만, 반대로 무수히 많았던 종파는 역사에서 다 퇴장하고, 절간과 스님만 남게 된 중국 불교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곳도 있다. 한국처럼 꼬리표를 붙인 연등을 달기도 하고, 전체적인 행사 방식도 한국의 절간에서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웃 나라처럼 거리에 모두 나와 연등회나 축제를 벌이지는 않는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여겼던 마오 시대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중국 불교를 볼 때마다 은퇴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중국이 사회주의국가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공휴일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3. 대만
대만은 일본·한국의 부처님 오신 날 모습과 몹시 비슷하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대규모 행사를 치르며, 국민의 70%가 불자인 만큼 그 스케일도 제법 가슴이 웅장해진다. 특히, 행사 때마다 춤 파티가 열리는데, 큰 절 마다 전속 댄스팀이 따로 있단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향이 꽤 강했던 곳이라, 종파마다 양력 4월 8일과 음력 4월 8일에 각각 부처님 오신 날을 지낸다.
특이한 점은, 부처님 오신 날과 어머니의 날이 대충 비슷해서, 둘을 퉁쳐서 기념하는 행사가 많다. 안 될 게 뭐 있나.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세계의 불교도들은 모두 따로 집을 지어 사는 붓다의 자식들이라고.
4. 한국
한국도 북방불교에 속한다. 한국 불교와 부처님 오신 날의 풍경에 대해선 모두 알고 있는바 따로 다루지 않고 패스한다.
<남방 불교 :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1. 스리랑카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은 전 국민의 대부분이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이다. 이쪽 나라들은 음력 4월 15일에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붓다의 탄생, 붓다의 출가, 붓다의 깨달음, 그리고 붓다의 열반을 모두 하나의 날짜로 잡아서 기념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이 모든 기념일이 각각 따로인데, 여기는 다 섞어 버렸다. 이것을 웨삭(Vesak) 데이라고 부른다. “태어남도, 깨달음도, 열반도 다 둘이 아니다.”라나.
불교 국가에서 4개의 기념일이 다 쓰까진 날은 그 행사의 스케일이 어떠할까. 하루 정도로는 납득될 리가 없다. 아예 한 주를 통째로 비워 붓다의 탄생을 축하한다.
자신들을 세계 불교의 수도라고 생각하는 스리랑카의 사람들은 축제보다도 경건함을 우선한다. 1주일 동안 흰옷을 입고, 술과 고기를 금하고, 집집마다 대나무 등을 걸며, 아예 하루종일 절간에서 지낸다. 절간에서 뭐하냐고? 새벽부터 모여서 불교 교리 대토론회를 연다. 음주가무가 없는 1주일이라니, 나도 불자지만 스리랑카 사람들에겐 한 수 접어줘야겠다.
2. 미얀마, 태국
웨삭 주간을 보내는 풍습은 태국과 미얀마도 비슷하다. 다만, 미얀마에서는 보리수나무에 불을 붓는 의식에 집중한다.
태국 불교도들은 공덕을 만들기 위해 사찰 순례를 다니면서 음식을 제공하고 최대한 많은 스님에게 공양을 올린다. 대부분 향락업소는 휴무하며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가무를 금지한다. 상좌부 불교라는 큰 줄기를 공유하는 나라들의 메인 이벤트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재밌는 점이다.
3. 베트남
위의 북방 불교 목록에서 베트남을 언급했다. 그리고 지금 남방 불교에서도 베트남을 언급한다. 여러 국가들 중 유일하게 두 부류의 불교에 모두 속하는 국가이다.
베트남은 이웃 나라들과는 달리, 중국 불교와 남방 불교가 믹스된 느낌을 강하게 보여준다. 물론 음력 4월 15일로 기념하지만, 과거엔 4월 8일에도 기념했었다고 한다. 이날 내놓는 스님들의 메시지도 ‘사회주의적’이다. ‘보국안민, 단결조화, 불교를 통한 조국 베트남의 건설’을 운운한다. 아시아의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이러한 빨간 맛 불교를 맛볼 수 있다. 이를테면 북한은, 사월 초파일에 등을 걸긴 하는데, 거기에 ‘주체’ 드립을 잔뜩 써 놨다 카더라.
남아시아의 불교 국가들은 웨삭 데이를 크리스마스처럼 전 세계적 홀리데이(holy day)로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난 99년부터 유엔 웨삭 데이가 제정되어 매해 태국, 스리랑카, 베트남 등에서 돌아가며 주최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만 강조하는 것에 ‘딥빡’한 건 한국이나, 남쪽 동네나 똑같다는 사실. 그러니까 앞으론 크리스마스 말고도 부처님 오신 날에도 전국의 모텔이 만실이 되는 풍습을 거국적으로다가 실행할 필요가 있겠다.
티베트 불교 : 티베트, 네팔, 부탄, 몽골
1. 티베트
인도불교의 정통 계승자인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 네팔, 부탄, 몽골 등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에 가장 널리 퍼진 불교도 티베트 불교다. 티베트 불교 역시, 여러 기념을 섞어서 음력(티베트 달력으로) 4월 15일에 웨삭 데이를 기념한다.
티베트를 괜히 인도 불교의 정통 계승자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아예 4월 한 달 동안을 부처님 오신 날처럼 보낸다. 이들은 4월은 싸가다와(Saga Dawa)라 하여 매우 성스러운 달로 여기는데, 이달에 지은 선업과 악업 모두 평소보다 10억 배로 떡상한다고 생각한다.
1일, 8일, 15일, 21일 등 주요 일자마다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고, 한 달 동안 육식을 피하거나, 한 달 동안 오후불식(붓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후에는 밥을 먹지 않는 풍습)을 지킨다고 한다. 가끔 티베트인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같은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 무협지에서 괜히 티베트 출신들이 세계관 끝판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관욕의식(아기 부처님을 씻기는 의식)이 부처님 오신 날에만 봉행되는 특별 이벤트지만, 티베트는 일상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관욕을 생략한다. 특히, 15일에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크고 아름다운 괘불을 걸고 기도 및 전 국민적 축제를 벌인다.
한국불교에서도 괘불은 대중을 압도하는 예술작품으로써, 특별한 날에만 걸렸다. 그런데 티베트의 괘불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사이즈다. 아마 단일 회화 작품으로는 세계 최대 순위에 가볍게 들 것 같다.
재밌는 건, 괘불 문화를 공유하는 나라가 티베트 불교를 믿는 국가들과 한국 정도뿐이라는 것이다.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고, 티베트 불교의 친척인 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도 없다. 그 이유를 티베트와 한국 사이에 있던 몽골에서 찾을 수 있다. 티베트 불교는 몽골인들의 정신적 스승이 되고, 몽골 전성기에 그들의 불교가 고려로 밀려 들어왔다. 그 흔적은 현대 한국불교에서도 발견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괘불이다.
<경전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든다>
K-부처님 오신 날의 메인 콘텐츠는 아무래도 ‘연등 달기’이다. 지금은 좀 뜸한 것 같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나가다가 연등을 달았다. 중국과 일본, 대만에서도 등 달기 콘텐츠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반면, 남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은 등을 아예 달지 않거나, 인테리어 느낌으로 다는 곳도 많다. 왜 그럴까?
북방 불교에서 등을 밝히는 것은 붓다의 유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른바, ‘자등명 법등명’의 유훈이다.
“아난아, 마땅히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부디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자기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 부디 다른 데에 귀의하지 말라”
阿難!當自熾燃,熾燃於法,勿他熾燃, 當自歸依,歸依於法,勿他歸依
이것은 한자로 기록된 경전에 남은 유훈으로써, 동아시아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찾아 스스로 빛을 내며, 그 빛을 찾을 수 없을 때 붓다의 가르침에 의지하라는 이 유훈은 불교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간 석등이나 연등을 켜온 것은 이 유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해당 경전의 남아시아 버전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자기의 섬에 머물고 자기에게 귀의하라.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법의 섬에 머물고 법에 귀의하라.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학자들은 남아시아 버전 경전을 한역 경전보다 더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즉, 섬에 해당하는 단어 dīpā는 ‘섬’과 ‘등불’ 두 뜻을 다 가지고 있는데, 한역 경전에서는 ‘등불’을 택함으로써 의역 혹은 오역이 된 것이다. 그 의역 또는 오역이 2,000년 간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부처님 오신 날 풍경을 갈라놓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일 수도 있다. 역사상의 붓다는 단 한 명인데, 스리랑카, 미얀마, 중국에서는 붓다가 자기네 나라에 왔다 갔다는 전설이 하나씩은 꼭 있다. 게다가 챙겨주는 사람 맘대로 생일이 제각각이다. 사상적으로도 북방의 대승과 남방의 상좌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게 불교다. 도저히 하나로 조화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도 붓다라는 이름 아래 한 집에 모일 수 있는 것. 옛날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다양성을 존중하고 근본주의를 배척하는 것이 불교였으며 불교일 것이다.
만연한 혐오의 시대. 뭐 하나 껀덕지 생기면 SNS며 커뮤니티며 사람 하나 죽일 듯이 물어뜯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요즘 나도 사람이 밉다. 영혼을 갈아 넣어 쓴 책이 너무 안 팔린다. 내가 가카였다면 어떻게든 수를 짜내서 전 국민이 내 책을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텐데, 내게는 그런 호연지기가 없다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기사를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날짜는 제각각이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보내는 전 세계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다 비슷해 보였다. 미소는 미소로 이심전심한다. 덕분에 그 모든 미움과 원망은 내려놓고, 더불어 사는 삶의 즐거움을 곱씹기로 했다.
독자 제위분들도, 평안한 마음이 가득한 부처님 오신 날 보내시기를 발원한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