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금(金),가마 부(釜), 내릴 강(降)자로 풀어내는 가야의 어원역사
우리는 가야에 대해 제대로 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가야(本伽倻)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가야사(伽倻史)를 제대로 모르는 후세의 학자들이며, 대가야(大伽倻) 또는 본가야(本伽倻)라고 하는 칭호는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다.
고령(高靈)은 원래 우가야(上伽倻)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가야부족국(伽 倻部族國) 가운데의 종가(宗家)라는 것이며, 그 외의 가야부족국(伽倻部族 國)들은 모두 「아라가야(下伽倻)」, 즉 「작은집」들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사실은 가야부족국(伽倻部族國)들에 관하여 우리 역사책보다 훨씬 많은 기사(記事)를 간직하고 있는 『일본서기』가 증언해 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 주목을 끄는 것은 김해지역을 「남가야(南伽倻)」라고 표시하고, 한자명(漢字名)의 가야(伽倻)를 「아리히시 가야」라고 부르고 있는 사실 이다. 「아리」는 오늘의 우리말로 고쳐 말하면 「아래」라는 뜻이고, 「히시」는 일본말 「하시」의 변형으로 우리말 「끝(端)」이라는 말이다. 즉 「아리히시 가야」라는 것은 「아래 끝의 가야」라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의 「아래」는 옛날 우리말로는 「아라(下)」라고 했었는데, 『일본서기』 를 편찬할 당시 일본에서는 「아로」라고 하였고(繼體天皇 六年冬十二月條 參 照), 현대 일본 사람들은 「오로(オロス=下降시키다)」라고 말한다.
지금도 일본 사투리로 「작은 집(分家)」을 「아라 이에→아라예」라고 하는 고장이(富山, 福井) 있으며, 「말단(末端)」을 「오라보」라고 하는 곳도(烏取, 出雲) 있어서 「아라→아로→오로→오라→아리」로 모음교체가 되어 온 과정을 증명해준다 (東京堂出版 『全國方言辭典』 參照)
결국 김해지역은 가야부족국(伽倻部族國) 중에서 「가장 작은 집」이었다. 가야한국(狗邪韓國)의 전성기는 수로왕(首露王)이 왕위에 있었던 시기 인데, 수로왕 시대가 과연 언제였느냐 하는 것부터 커다란 수수께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그가 구간(九干)의 추장(酋長)들에게 추대받아 즉위한 것은 서기 42년(後漢光武帝 建武十八年)이었다’ 고 되어 있다. 그러나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 온 금함 속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이때인데, 태어난 그 날에 왕위에 추대되었다는 말을 믿기 어렵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수로왕이 헌제(獻帝) 건안(建安) 4년(서기 199년), 158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인도의 「아유 디아국」으로부터 배를 타고 시집 온 그의 왕후 「허옥」은 수로왕보다 10년 앞서 1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주인공 내외가 한결같이 157∼158세까지 장수하였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만일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전하는 수로왕의 나이를 믿지 못한다면, 즉위하였다는 서기 42년을 기준으로 할지 아니면 사망했다는 서기 199년 을 믿을지 결정해야 하는데 사망했던 서기가 타당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알 속으로부터 태어난 날에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히 다른 나라들 건국신화와 같기 때문에 이것은 수로왕을 신격화 시키려는 후손들의 창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수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거등왕(居登王)」의 재위(在位)기간 때문이다. 수로왕가(首露王家)의 계보 「가라세가문헌보감(駕洛世家文獻寶鑑)」에 따르면, 장남인 「거등왕(居登王)」 즉 「도왕(道王)」이 등극한 것은 수로왕이 돌아간 해인 서기 199년이었으며, 그가 사망한 것은 서기 253년으로 되어 있다.
그 이후 그의 아들 「마품왕(麻品王)」이 사망한 것은 서기 291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수로왕의 아들과 손자의 재위 기간이 각각 54년과 39년으로, 수로왕의 기간과 비슷해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수로왕의 재위기간을 서기 42년부터로 기산(起算)한다면 그 이후의 왕들의 재위기간을 정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추리해 보면 「금관가야(金官伽倻)는 수로왕이 즉위한 서기 42년 부터 신라에 항복한 532년까지 존속한 나라다」라고 배워 온 고대사의 상식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 것인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수로왕이 즉위한 해로 여겨왔던 서기 42년은 「가 야한국(狗邪韓國)」이라고 하는 가야족(伽倻族)의 막내 나라가 탄생한 건국기 념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나라가 건국되기 전까지 오늘날 함안(咸安)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아라가야(下伽倻=安羅伽倻)」라고 불리어왔고 문헌에 남아있는 「안라가야(安羅 伽倻)」라고 표기되는 고장의 이름과 그 지역에 남아있는 고분들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로왕은 가야한국(狗邪韓國)이라고 왜인전이 호칭한 「아라가야」의 중흥(中興)을 이룩한 왕으로서 실제로 그가 즉위한 것은 계보에 적혀있는 후손들의 재위기간을 참작한다면 그의 아들 거등왕(居登王)보다 약 50년 정도 앞선 서기 140년대라고 보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 본다.
즉 가야한국(狗邪韓國)은 건국된 후 약 100년이 지난 즈음에 수로왕이 즉위하여 나라 이름을 크게 떨쳤는데 수로왕의 시대를 지나면서부터 오래지 않아 나라 형편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당시 세력을 넓혀온 백제의 「곰숭배사상(熊崇拜思想)」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상식으로는 수로왕이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始祖)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태양을 조상으로 섬기는 태양신앙족(太陽信仰族)이 었기에 모든 사람의 성(姓)은 조상의 속성(屬性)인 「밝음」, 즉, 「화(火)/명 (明)」이었고, 그것을 한문자로 나타낸 것이 「박(朴)」이었다.
「김(金)」은 곰숭 배사상(熊崇拜思想)이 유입되어 온 후부터 사용하게 된 것으로서 원래 「가마 (黑)」이던 것이 연대가 내려오면서 차차 모음교체를 거치면서 「가마→고마 →금→김」과 같이 변화한 것으로 보여진다.
수로왕이 태양신앙족(太陽信仰 族)이었던 사실은 그의 왕후가 태양신앙족(太陽信仰族)의 나라로 유명한 인도의 「아유디아」 왕국 왕녀였다고 하는 「삼국유사」 전설이 뒷받침하여 준다.
태양신앙족(太陽信仰族)이었던 왕실(王室)이 수로왕 이후부터 점차 곰숭배사상(熊崇拜思想)으로 변해간 것을 「삼국유사」에서는 「왕후가 꿈속에서 곰을 보고 태자(太子)를 잉태(孕胎)하였다」고 전한다. 그렇다고 하여 왕실의 성이 하루아침에 「박(朴)」으로부터 「김(金)」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왜인전이 편찬된 서기 300년 이전까지는 태양신앙족(太陽信仰族)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하고 묻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