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곡 파문당한 한 무리의 영혼들, 절벽 밖에서 기다림
우리의 모든 행동에서 존엄성을 깎아내리는
성급함으로부터 그의 발걸음이 자유로워졌을 때,
딴 곳에 가 있던 나의 정신도
다시 자유로워졌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생겼다.
나는 눈을 들어 바다 위에서
하늘의 높은 곳을 향해 솟아오른 산(정죄산)을 바라보았다.
단테는 오직 자기 앞에만 그림자가 드리워 진 것을 보고 혹시 혼자 남아 있지 않나 두려워 재빨리 옆을 돌아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보며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널 인도하지 않느냐, 그리고 내 몸은 나폴리에 묻혀서 내 앞에 그림자가 없지만 놀랄 필요는 없다. 어떤 하늘도 다른 하늘의 빛을 가로채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권능은 우리의 몸을 고통과 차가움,
뜨거움에 민감하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그 비밀을 드러내지는 않으려 하시지.
망령들에게는 그늘에 그림자를 비치지 않을 지라도 그 영혼들이 고통과 차가움 그리고 뜨거움에는 민감하도록 합니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면 망령들도 차가움, 뜨거움을 느낍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신비한 의지로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없습니다.
그러한 권능은 그 비밀을 드러내지는 않으려 하신답니다.
삼위일체를 하나의 존재 안에 내포하는 그
무한한 길을 인간의 이성이 가로지를 수 있기를
바라는 자는 미친 것이다.
인간들이여,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라!
그대들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면
마리아께서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었겠지.
단테는 인간이 이성으로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것보다 그 결과로 알려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으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헛된 것이었음을 말하고 있는데, 만일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파악한다면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낳을 필요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은총과 계시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베르길리우스는 림보에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성으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의 영혼의 상태를 두고 “희망 없는 희망 속에서 살고 있는 거야”(지옥 4곡 림보에서)라고 말합니다.
만족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헛되이 바라는 것을 그대들은 보았으니,
그들은 영원히 통곡할 자들이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을 마친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에 잠겼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인간이 지닌 고유한 기능이 이성이라고 보며 이성을 중시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들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선생님이 고개를 숙였다는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말합니다. 이성이 할 수 없는 영역이 영의 세계요 신앙의 세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신학이 철학의 상위 개념이라고 말하는 듯 한데 나는 신학은 잘 모르는 영역입니다.
이성과 신앙을 서로 보완하고 치유해야 한다, 이성적 사고와 믿음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산기슭에 도착했고,
거기서 너무나 가파른 암벽에 맞닥뜨렸는데
민첩한 다리라도 쓸모가 없을 정도였다.
두 시인은 산비탈을 보고 탄식을 합니다. 인간 이성이 벽에 부딪힌 것입니다.
레리치와 투르비아 사이의 황량하고 험준한 길이라도 정죄산 기슭의 가파른 암벽에 비하면 오르기 쉬운 널찍한 계단과 같았을 거라고 합니다. 정죄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암벽을 아이거 북벽의 험준한 길과 비교한 것입니다.
아이거 산의 북벽이 가장 어려운 등반 코스 중의 하나랍니다.
2008년 스위스와 프랑스 자동차 여행 당시 인터라켄에 갔을 때의 내 블로그의 글과 사진입니다.
호텔에 들어가니(인터라켄에서 스위스 민박을 즐기려고 했는데 늦게 도착해 호텔로, 그 당시 이 호텔비가 굉장히 비쌌음) 전망 좋고 분위기 좋고 딱 최고입니다. 우리 방 발코니 문을 여니 유명한 아이거산의 북벽(알프스 산맥의 3대 북벽의 하나)이 우리 눈앞에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아이거산의 북벽 곁으로 두 개의 산, 세 개의 산봉우리(아이거, 묀히, 융프라워)가 우리를 향해 서 있는데 거금의 호텔비가 아깝겠는가?
스위스 그린덴발트에서 아이거산의 북벽을 보며 트래킹 2008년 그린덴발트에서
노란 미니 열차를 타고 올라가 내린 역, 그 뒤 아이거 산 북벽 2008년 인터라켄 여행에서
이 왼쪽 눈위의 바위 낭떨어지 보다 정죄산 오르는 산 기슭이 더 가파르다고
오르기에 더 편한 암벽을 찾으며 비탈을 올려다보니 한 무리의 망령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리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은총으로 죽은 선택된 영혼들이라 부르며 우리가 오를 만한 원만한 비탈이 있는지 말해 주라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오를 만한 완만한 비탈이
어디 있는지 말해 주시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사간 낭비를 피하는 것 아니겠소?
길을 알지 못하면서 걸어간다는 것은 때를 잃는 것으로 가장 뛰아나고 지혜로운 자는 때를 놓치는 않는 다는 것, 시간의 귀중함을 안다는 베르길로우스의 말입니다.
저 선택된 무리의 대표들이
온순한 얼굴과 고귀한 걸음걸이로
우리 쪽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앞에 나선 자들이 내 그림자가 절벽에 걸치는 것 보고 걸음을 멈춰 서서 주춤거렸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여러분이 보시는 이 형상은 인간의 육신인데 하늘에서 오는 덕성 없이 이 절벽을 넘으려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자 훌륭한 그 영혼들이 “돌아서서 우리 맞은 편으로 가시오!”라고 알려줍니다.
그 영혼들 중 하나가 내게 저 세상에서 나를 본 적이 없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몸을 돌려 자세히 바라보았다.
금발에 고귀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한쪽 눈썹에 상처가 나 있었다.
단테가 본적이 없다고 하자 그는 가슴 위의 상처를 보여 주며 '나는 만프레드!(페데리코 2세의 아들, 서자) 콘스탄차 황후의 손자요. 나의 사랑스러운 딸과 어머니에게 지옥에 있지 않고 연옥에 있다고 사실을 말해주시오'라고 합니다.
만프레디가 페데리코 2세의 아들이 아니라 코스탄차 황후의 손자라고 말하는 것은 페데리코 2세가 지옥(지옥편 10곡)에 있는 반면 코스탄차는 천국(천국편 3곡)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프레드는 아버지 페테리코 2세(시칠리아 왕, 신설로마제국의 황제에 올랐다. 프리드리히 2세라고도함)가 서거하자 배다른 형 콘라트 4세가 왕이 되었으나 1년 후 서거하여 조카 콘라드가 왕이 되어 섭정을 하려했으나 교황의 눈 밖에 나(십자군 원정 문제로) 파문을 당해 죽었기에 지옥에 있을 거라 소문이 났었습니다.
희망이 한 가닥 푸르름을 지닌다면
그런 파문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사랑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것이오.
파문당한 영혼들이라도 참회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참회를 해도 삼십 배의 기간 동안 절벽 밖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 영혼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높은 절벽의 웅크리고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 게 이런 이유입니다.
내가 이렇게 산기슭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당신이 본 대로 나의 착한 코스탄차에게 전해 주어서
당신이 날 기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오로지 참회와 기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중세 가톨릭 전통에 따르면 이승의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벌 받는 기간이 단축되고 구원의 시간이 빨리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만프레드는 코스탄차에게 기도해 주도록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