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신앙은 반드시 turn이 있어야 한다.
09/21토(土)눅 11:5-13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성도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이 말은 신앙은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 가장 큰 비밀은 기도의 비밀입니다. 기도는 평생 배워야 하며 신앙의 수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기도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면 기도가 재미없습니다.
누가복음 11장 9절 이하에 보면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주실 것이다” 왜 구해야 주시는가? 왜 두드려야 열리는가? 왜 찾게 하시는가? 그냥 주시면 안 되는가? 여기에 기도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강청함의 비밀입니다.
▣기도 응답에는 친구라는 관계성보다 강청함이 더 중요합니다.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성이 있습니다. 강청한다는 것은 간절함의 표현으로 절실함을 나타냅니다. 또 해결의 창구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강청은 포기 없는 간구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오직 자식을 얻겠다는 신념과 자신의 창구(窓口)는 오직 주님께 있다는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8절). 기도 응답은 관계성도 중요하지만 강청입니다.
▣기도는 열려진(준비된) 길을 찾게 합니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주실 것이다”(10절). 여호와 이레의 복은 기도할 때 준비된 길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필요를 준비하셨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주십니다. 여리고 성은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셨습니다. 성을 도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열어놓으셨지만, 기도할 때 열립니다.
창 21:14~에 보면 하갈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부르짖습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혀 주시니 바로 옆에 물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해서 우물이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좋은 것(성령)을 주십니다.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절). 내 속에 오신 성령은 기도할 때만 역사하십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And...
성도는 변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변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실재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주인일 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내가 죽고 내 삶을 통해 예수가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죽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에 방향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에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종교 생활로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복이 있는 때입니다. 기도가 시작되는 그때, 우리는 가장 소중한 품에 안깁니다. 가장 절망적인 밑바닥에 이르렀을 때,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이것은 기도로 얻는 복입니다. 낮아짐으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 감사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내가 비워지고 주님으로 채워집니다. 기도하는 자의 복입니다.
“눈물로 눈을 깨끗하게 씻고 나면 이상하게도 침입자가 반가운 손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만을 본다. 하지만 그 순간 하나님은 그 빈자리를 가득 채워주신다. 눈을 열면 그 공간만이 아니라 심지어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공간까지도 가득 채우고 계신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카일 아이들먼.
우리는 낮아지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려가는 길입니다. 내가 내려갈 때 주님이 높이십니다. 여기에서 낮아짐은 ‘능동적인 낮아짐’입니다.
닉 왈렌다란 사람은 외줄 하나로 나이아가라폭포를 건넌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고, 수백만 시청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낮아지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의 외 줄타기 공연으로 보러 구름처럼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데 쇼가 끝나면 그곳은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이 버려져 있습니다. 왈렌다는 공연이 끝난 후 몇 시간 동안 현장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쓰레기들을 줍습니다. 그의 이야기입니다. “세 시간 동안 쓰레기를 줍는 일은 내 영혼에 매우 유익하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겸손이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 낮출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렇게 한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한다. 남을 섬기지 않으면 내 자아만 섬기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절망을 체험한 사람만 낮아짐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높아진 자는 결코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습관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날마다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https://youtu.be/yfWzBI1pjgg?si=8zMVVB0hmfMS9z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