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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선교 1-1
여러분 온전한 선교라는 말, 특별히 2024년 로잔 언약이 1970년대에 시작된 이후 네 번째로 큰 대회로 모이는 그런 행위입니다. 그 큰 모임이 바로 대한민국 인천 송도에서 9월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합의문을 도출하기 위해서 여러 다양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선교학자들 또한 예배 또한 여러 목사님들이 모여서 함께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청년들도 거기 가서 주님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의견을 나누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온전한 선교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그 주제를 계속해서 묵상하며 온전한 합의문을 도출하기 위해서 그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공동 발표문이 될 수도 있고 의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발표하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사전 작업하고 있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이 지금 한국교회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전한 선교라는 제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로잔 언약이라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또한 로잔 언약을 잘 모르거나 알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로잔 언약이라는 1970년대 일어났던 이 일은 진정으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온전한 선교 증인된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그들이 20세기 1970년대는 (20세기 중후반) 20세기 초반부터 있어 왔던 wcc 세계 교회 협의에서 이루어졌던 선교라는 그 이야기와 함께 맞물려서 일어난 복음주의 대표자들이 함께 모여서 선교가 무엇인가 복음주의권 교회가 선교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발표한 것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 교계에서는 WCC를 종교 다원주의를 만들어내는 안 좋은 주님의 복음을 왜곡시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WCC의 첫 시작과 지금 이 순간까지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통칭 사회 복음이라고 얘기하는 온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라는 그곳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음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변역되어 하나님이 온전히 영광 받으시는 그런 거룩한 일들이 우리의 사회 곳곳 전 지구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거룩한 복음이고 주님이 완성하신 성취하신 놀라운 일들이다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WCC 세계 교회 협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이같이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20세기 초반에 일어났던 일과 관련해서 또 다른 권에 있었던 복음주의 권에 있었다라고 얘기하는 분들은 복음 그것 사회 복음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아니다 그것은 선교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온전한 선교는 즉 온전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영혼이 구원받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사회의 어떤 구제하고 규율 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무슨 사회를 변역해 한다라는 일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거룩한 사명 하고는 연결되지 않는다라고 20세기 초반에 복음주의권에 있는 분들은 세계 교회 협의라는 것과 관련 이렇게 분리돼서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흐름 가운데서 1970년대에 복음주의권 있는 대표자들이 모여서, 존 스토트 빌리 그레엄 이와같은 분들이 모여서 온전한 복음이 무엇인가라고 했었을 때 온전한 복음은 사실 우리가 분리시켰던 이 두 가지가 하나다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것, 즉 영혼이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 바로 영혼 구원하는 것이다라고 이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복음 온전한 선교다고 얘기합니다. 이것만 온전한 선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WCC를 우리가 그동안 반대하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조금은 등한시 했습니다. 물론 우리도 사회 규율을 세우고 적선을 베풀고 뭐 여러 가지 다양한 일들을 했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이 모든 일은 이 땅 온 지구촌에 있는 모든 사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회 모든 영역 모든 곳에 하나님의 다스리심 즉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하여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도 온전한 복음이고 온전한 선교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흐름 속에서 4차 로잔 언약 운동과 Marketplace Theology 즉 일터에서의 운동에서는 우리의 삶에 단순히 보내는 선교사 또는 가는 선교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모든 사회 영역안에서 삶의 영역이 바로 선교의 영역이고 우리는 모두 선교사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흐름 가운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온전한 선교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첫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게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그 사명을 감당하여 주님의 그 복음을 증언하는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 증인된 삶이라는 것이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온전한 선교 첫 번째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 할 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의 거룩한 백성 즉 성도로서 회복되었는데 성도로서 즉 다른 말로 한다면 영혼이 구원 받았다고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았다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재한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이 되었다는 얘기거든요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다는게 무엇입니까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창조된 사람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첫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 그들에게 공동체를 이루라고 하면서 너희는 이 땅에서 이 지구상에서 이 창조 세계가 거룩한 열매를 맺으며 번영하는 일들을 위하여 너희는 수고하라. 그 말은 다스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바로 예배의 중요한 어원이 되었다라고 우리가 나누었습니다.
예배와 선교라는 것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일하고 온전하게 쉬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는 하나님께는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온전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인 그 인간으로서 온전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즉 창조 세계가 번영하도록 청지기로서 왕들로 일하는 것이 바로 선교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일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향해서는 예배요 세상을 향해서는 선교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선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성령님의 충만한 인재로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구원받은,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청지기의 소명을 회복한 왕들로 완전히 살아난 이들이 이사야서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온 고귀한 일을 하면서 그리고 왜 우리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누군가가 질문한다면, 그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답변할 수 있는 우물쭈물 하면서 답변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분명한 뜻을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온전한 삶으로 살아가게끔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셨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즉 권세라는 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서 28장 18절부터 20절, 즉 대위임령 선교라는 것에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왔던 이 말씀들 마태복음서 28장 18절부터 20절 근데 우리가 많이 간과하였던 “나는 하늘과 땅 의 권세를 동시에 받았다”고 하는 하늘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통치하시는 그 그 영적 영역이다 하는 그 곳을 하늘이라고 하죠 그리고 땅은 온 우주를 포함한 해 달 별 우리가 보고 있는 은하계의 모든 것을 포함한 지구에 있는 곳까지 포함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상을 가르쳐서 땅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그 하늘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 영역인 하나님 나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 하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의 영역인 그곳이 하나 되었는데 그곳에 온전한 통치라는 권세를 받으신 분이 바로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이시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슈퍼비전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이 슈퍼비전이란 말은 지도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몇분의 성도와 같이 영성지도 컨퍼런스를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단어가 바로 슈퍼비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구하시고 살펴보시며 너희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끊임없이 힘을 주시고 때로는 격려하시고 때로는 가르치시고 때로는 그건 아니야라고 하면서 탁탁탁탁 하시는 규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이 누구신가요? 슈퍼비전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서 그 임재를 통하여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이 땅에서 온전한 창조 세계를 향한 분명한 일과 쉼이 분명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세상 가운데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이야기할 때 나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으로 얘기하지만 영혼 구원은 죄인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 형상을 회복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것이 바로 영원히 구원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우리의 육체와 별 상관없는 것으로 그리고 이 창조 세계와 관련한 청지기 사명과 관련 없는 것으로 연결하여 얘기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에 스스로 빠지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합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이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그 일을 할 것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너희가 하는 그 모든 착한 일이나 선한 일들이 내가 너희에게 부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했던 그 모든 일들이 너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주변에 있는 이웃들이 너희와 함께 내가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성령님만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물론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우리의 마음에 때로는 양심의 가책 또는 기쁨을 주시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시지만 예수님께서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사도행전 4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이 병든 사람을 낫게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억울하게 그것도 바리새인들도 없어 공회에 구성원도 충족하지 못하고 사두 개인들만 모인 반쪽짜리 산헤드린 공회에서 신문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공회에서 불완전한 재판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이 담대하게 당신들이 왜 내가 이 일을 했는지 물으신다면 내가 담대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만왕의 왕이 되시는 그 주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이 재판장에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자가 병 고침 받은 일, 미문에서 항상 구걸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병을 고침 받은 것입니다. 바로 그 일로 인하여 베드로와 요한이 그 불완전한 공회에 잡혀서 밤새 감옥에 감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의사 누가는 그곳에서 병고침을 받았던 걸인이 무슨 말을 했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병 고침을 받은 자가 그곳에 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거기에 같이 있었다는 일만으로도 베드로와 요한이 잘못한 일을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인으로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셨던 그 말씀이 너가 지극히 작은 사람 한 명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며 이는 마지막날 들어 나게 될 것이다는 말씀과 연결되어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 가운데서 우리가 한 주목해 할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를 겁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십시오.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달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이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전하신 말씀을 들으십시오라고 사랑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산헤드린 공회의 반쪽짜리로 불완전한 공의에 불완전한 사람들이 지금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는 자들로 자기들이 통칭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얘기하는 권세자들이라고 하지만 가장 불안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지금 다시 한번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들을 전달하고 계시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우리가 그 일의 증인이라고 베드로와 요한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병자가 병 고침을 받는 일을 통하여 예수님이 사랑으로 당신들을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얘기합니다.
이 흐름 가운데서 결국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얘기하고자 하는 중요한 핵심은, 당신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분명한 종교 지도자와 권세자들이 맞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온전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그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로 나아와 그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통치력이 수고와 섬김으로 온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그리고 고결하게 여기실 수 있도록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구세주 메시아 예수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지금 사도 베드로는 증거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13절을 통하여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끝으로,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이 이야기는 여러분이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즉 온전한 인간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슈퍼비젼 즉 온전한 지도를 편달 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 들어와서 그 통치자들의 통치를 온전하게 해야 하는데,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는 당신들을 적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후 1세기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면 증거할수록 그 복음을 반대하고 박해하고 겁박하고 죽이는 일들이 감옥에 가두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누구보다 사도 바울이 그 일을 행했던 사람이다라는 것은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를 감옥에 가두는 일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하길 미운 마음 증오하는 마음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긍휼하게 여기셨던 것처럼, 그들도 긍휼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권세자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적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들도 회복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어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마의 관계에서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선다는 말은 분리 시킨다는 말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지 못한 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그 지도 아래에 들어오지 못한 잘못된 권세자 들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노예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를 대적하고 있는 그 영적 권세자들이나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노예로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미움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으로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같이 온전한 권세자들로 회복되어야 할 자들입니다. 그들을 악마의 관계에서 분리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과 그 일을 꾀어서 그 일을 하게끔 만드는 악한 영 악마의 세력들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굳세게 되어야 한다고 사도 바울이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절에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자들은 통치자들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그 당시에 정치적인 지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의 또 다른 말씀중에 로마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면 로마에 있는 황제나 그 로마의 지배자들과 대적하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여러 가지 다양한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싸운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 즉 통치자들의 권세들인 어둠의 악한 영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을 적대자로 대결하지 말고 어떤 로마인으로 지배하는 사람들과 대적하지 말라라고 얘기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말씀들을 우리가 종합해 살펴본다면,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통치자들 권세들 어둠의 세계에 악한 세력을 상대해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을 적대자로 대결하지 말고 상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알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대적하는 사람들 하지만 온전한 자들로 권세자들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섬김 통치자들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과 그들을 꾀어서 계속해서 자기의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세력들을 분리시키는 그 지혜와 능력이 너희 안에 있어야 한다라고 주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바탕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라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의 대항할 수 있다. 악한 날, 말세라고 표현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 다시 오시는 그 즉 파르시아 기간이 말세의 기간인데, 이 기간에 우리는 온전하게 대항할 수 있으며 온전하게 하나님 백성 온전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자들로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라고 얘기하면서 이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예수님이 그 보좌에 앉으시는 그 마지막 날에 우리는 주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주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있으며 온전히 맞이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 모두가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온전한 선교라는 것은 모든 성도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원래 창조되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본래에 모습인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된 통치자들이, 온전하게 하나님 창조 세계에서 온전한 인간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온전한 인간 공동체로서 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번영하는 일을 위하여 수고하기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지도 아래 우리가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것을 기억하며 일하고 쉬며 사는 것 즉 인생을 사는 것이 바로 온전한 선교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두 번째 온전한 선교를 우리가 행할 때 우리는 수많은 적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기억해야하는 것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주님의 선한 일을 했을 때, 그 선한 일을 경험했던 사람이 끝까지 갇혀 있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라고 그들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또한 더불어서 사도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적대하는 사람들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온전한 통치자들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계속해서 자기의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악마들과 분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가 그들을 위해 악마들과 상대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선교를 위해서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님이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자들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왕들입니다. 우리는 권세중의 권세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슈퍼비젼 그분의 지도하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며 목격하고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이사야 예언자가 이야기한 대로 사도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요한이 했던 대로 정말 고귀한 일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귀한 일을 너는 누구의 이름으로 누구의 권세로 했느냐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증거해야 하는 복음 선포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에 주님과 함께 온전하게 살아가기를 우리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