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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105편1~11절
제목 : 여호와를 기억하라
본문은 시편105편의 전반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 및 섭리주로 묘사한 104편에 이어, 105편은 그 하나님을 언약을 허락하시고 이루어나가시는 분으로 묘사하며 그분을 송축할 것을 명령합니다.
즉, 105편의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시는 구속주이십니다.
105편의 전분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1~11절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사실을 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1. 여호와를 기억하고 찬양하라(1~7절)
105편은 103편과 104편에 이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시편 4권의 전체 주제인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잘 어울립니다.
온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103편은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용서하시는 분’으로 설명했고, 104편은 ‘창조주요 섭리주’로 묘사했습니다.
이어 105편은 ‘언약’(아브라함 언약)을 선택하여 설명합니다.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행하신 일들을 만민 중에 알게 하라고 멸령합니다(1절).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78편, 106편과 함께 본 시편은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 있어서 그 민족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경이를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편의 시편들은 동일 주제를 지향하지만,
그 주제를 지향하는 의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78편은 교훈적입니다.
즉, 그 의도는 한 가지 교훈을 가르치는 것인데,
가르쳐 현재를 위한 경고를 삼기 위하여 과거를 회상합니다.
106편은 참회적 고백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과거 역사를 주로 죄악의 역사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반면, 본 시편105편은 감사를 끌어내기 위한 적절한 주제인바,
미래의 순종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토대로서의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여명기에 그 민족을 위해 행하신 여호와의 능력의 역사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본 구절에서는 특히 감사를 끌어내기 위한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 본 표현은 그 다양한 문맥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나타냅니다.
애가(哀歌)의 문맥의 경우는 고통자가 구원을 바라며,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는 것이 되겠고(116:4),
찬양시의 경우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와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며,
즐거워하는 것이 되겠습니다(104:35, Anderson).
아무튼 본 절 전체는 사 12:4과 유사합니다.
*사12: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2) 하나님께 노래하며 찬양하고 그분의 기이한 일들을 말하라고 권합니다(2절).
“[2]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그를 찬양하며(잠루로). '어떤 일정한 리듬을 동반해서 노래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그저 노래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음악적 정형을 갖추고서 노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노래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엄위로운,
인간과는 구별된 신(神)이시기 때문에,
찬양에도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다 바침이 마땅합니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고 명령합니다(3절).
“[3]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는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입니다.
요점은 우리의 찬양에 있어서 주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요점을 좀더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뻐 찬양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그분이 택하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의 이름이란 곧 여호와 자신이요(Anderson).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을 말합니다(Davies).
(2) 찬양과 기뻐함의 주제는 그의 마음이 거룩하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빛이 빛을 좋아하듯이,
거룩함을 지향하는 자만이 그 사실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땅 위에 하나님만큼 완전히 거룩한 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거룩해지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4) ‘여호와를 구함’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4절)
“[4]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와 그의 힘을 구하라'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그의 전능한 힘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70인역(LXX) 및 벌게이트역(Vulgate)의 의역,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하면 강해지리라'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 시편 전체 줄거리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 속에 나타났던 강한 능력의 하나님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즉, 문맥은 강한 능력의 하나님을 초점으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중시할 때 본 구절은 '강하신 여호와...'로 의역함이 더 타당하겠습니다.
5) 그가 행하신 기적과 이적과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5,6절)
“[5]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6](위에 포함)”
아브라함의 후손. –대상16:12,13에는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언약의 시조라는 면에 강조점이 있고,
역대상의 경우는 언약의 후손들이라는 면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47:9 외에 본 시편 9, 42절에서만 '아브라함'이란 호칭을 볼 수 있습니다.
택하신 야곱의 자손.- 정확하게 직역을 하면 '택하신 야곱의 자손들(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이스라엘 백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씨들로서 하나님의 택자(擇者)들이며,
언약과 약속들의 상속자들인 야곱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신 역사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조부(祖父)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듯이 말입니다(8절).
그 입의 판단. - 여호와께서 주신 율법이 아니라 바로와 그 백성 위에 내린 징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14절; 출 6:6; 7:4; 12:12).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들을 치신 사건을 비롯한 열 가지 재앙과 홍해까지 이스라엘을 추격했던 바로의 군병들을 물속에 수장시키심으로써, 모세를 통해 실행된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해방을 무시한 애굽을 징벌하셨습니다.
본문 앞에 언급된 '기사'와 '이적'은 이와 동일한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동일한 의미가 반복된 것은 하나님의 애굽 징벌 종류의 다양성 및 강조를 나타내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6)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합니다(7절).
“[7]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 여기서 '우리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엘로헤누’로서 하나님의 언약적 품성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본 절로부터 본 시편의 끝 절까지 계속되는 찬양의 핵심은,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확신과 함께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언약의 수여자로 언급하신 사실은 출 20:2에도 나타납니다.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 '판단'는 일반적으로 '재판', '판결'등을 뜻하지만 본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영향력'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심에 따라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 나라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여호와는 언약을 기억하신다(8~11절)
1) 천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심(8절)
“[8]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8절은 ‘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즉, 언약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마쉬파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언약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기에, 백성들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언약은 무엇입니까?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 신7:9에서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라는 말씀을 연상시키는 본 구절의 '천 대'는 한계가 없는 기한 곧 '영원'을 뜻합니다.
'명하신'은 '치와'로서 동일한 단어가 민 27:19에도 나오는데 그곳에는 '세우다'로 되어있습니다.
*민27: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기억하셨으니. '자카르'는 한번 맺은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을 묘사하는 용어입니다(74:2; 79:8).
한편, 본 용어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처럼 언약의 대상인 이스라엘도 언약에 대하여 신실할 것을 명령하는 대목에서도 사용됩니다.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대상 16:15)
2) 언약, 맹세, 율례,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 (9~10절)
“[9]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10]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입니다.
직역하면 '그가 아브라함을 향하여 잘랐던 그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언약'이라는 말이 원문에 없으나 본 구절 자체에 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카라트'는 고대에 언약 체결 당시 언약 쌍방이 그 사이로 지나갔던 두 부분으로 '자른' 짐승을 연상시키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국가에서는 일정의 계약을 체결할 때 짐승을 잡아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쌍방이 그 자른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그 행위 속에는 만일 체결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잘라진 양편의 고깃덩이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결심이 담겨져 있었습니다(렘 34:18-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을 맺으실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짐승을 잡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브라함은 암소, 암염소, 수양,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놓았는데 새는 쪼개지 않았습니다(창 15:9,10).
그러나 일반의 경우와 달리 아브라함은 그 쪼갠 고기 사이를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 사이를 통과하신 것입니다. (창15:17)
*창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더라”하였는데,
이 횃불은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그리고 택한 후손에게 계속 전승될 약속은 자신의 생명을 바꾸어서라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그 의식을 통하여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본 의식(儀式)을 통하여 우리는 먼 훗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성취하실 그리스도, 곧 하나님 그분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생명을 걸어가면서까지 하신 약속, 그 약속을 본 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삭에게 하신 맹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카라트'로 표현 했던 반면,
이삭에게 주신 약속은 '쉐부아트'로 표기하고 있는데,
후자는 전자에 주었던 약속에 대한 확증이라는 측면에 그 강조점이 두어져 있습니다(창 22:16; 26:3).
대(代)를 이어 전해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은,
약속한 땅, 가나안의 수여가 그 핵심입니다.
(3)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입니다.
여기서 '율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호크'인데 주로 복수형인 '후킴'이 자주 쓰입니다(119:5등).
율법의 외형적 성격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본 용어는 주로 한번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문자화된 형태를 가리킬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18:22; 147:19).
여기서는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등에게 이미 주었었기 때문에 이제는 글로 써서 종이에 간직한 바 된 듯한 분명하고도 명확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4)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입니다.
얍복 강 씨름 사건 이후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게 되는데(창 32:24-32)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단순한 개명(改名)을 뜻하지 않고,
한 국가의 탄생을 암시합니다.
말하자면 야곱이 한 국가의 시조가 된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3) 언약의 내용(11절)
그 내용이 11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11]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창세기 12:1~3의 아브라함 언약의 본문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본문에서 두 가지 중요한 언약의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는 것’과 또 하나는 그 후손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얻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은 이러한 언약의 내용 중에서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언급합니다.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이스라엘 12지파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셔서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해주신다고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소유’라고 번역된 원어는 ‘나할라’인데,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대개 ‘기업’으로 번역됩니다.
‘나할라’ 곧 기업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 가운데 들어온 자들에게 그 나라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눠주시는 삶의 터전을 뜻합니다.
열방 중에 이스라엘을 언약백성으로 불러내셨기에, 온 땅 중에서 그들에게 언약의 땅의 분깃을 나눠주시고, 그 땅을 여호와 하나님의 안식이 충만한 땅으로 만들어나가서, 결국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주신 땅이 곧 기업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각각에게도 역시 기업을 나눠주셨고, 각 가족에게도 기업을 나눠주셨습니다.
기업은 하나님께서 나눠주셔서 가족, 지파, 민족이 얻은 분깃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인은 열 개의 동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고 선포하고 감사하고 자랑합니다.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이적을 행하신 그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고 구하고, 그것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기억하고 그 하나님을 가시화 하는 것이 구원 받은 백성이 사는 이유이고 삶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영원한 언약을 주셨고 기억하셨습니다.
이삭에게도, 그의 아들 야곱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소유하고 상속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석을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이 하나님의 신실함이 듯이, 그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를 신실한 믿음의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이유는 언약에 대한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함께하는 하루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몫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반드시 이루십니다(6~11절).
비록 지금 이스라엘은 자기 몫을 소유하지 못한 노예들이지만,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셔서 그들 몫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셨습니다(갈3:29).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시인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흥분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1~3a절).
그리고 이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자신들만 간직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향해 주님이 하신 기이한 일들을 말하며,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라고 촉구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도무지 침묵할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알려주고 싶습닉까?
2) 여호와의 능력을 구하고 여호와의 얼굴을 찾는 사람의 마음은 항상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3b~4절).
주님의 손은 능력을 구하는 자에게 선을 베풀고(에8:22),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찾는 자를 만나주시기(렘29:12,13)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누구를 찾고 무엇을 구합니까?
사람은 우리를 실망시킬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결코 자기를 찾는 자를 외면하거나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3) 시인은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촉구합니다(5~7절).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으로 애굽을 심판하신 것을 기억하고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공평하고 정의로운 판단으로 온 땅을 심판하실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애굽에는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범죄한다면 동일한 잦대로 그들도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잊지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