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요한복음 13장 3-6절『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고 하는데, 베드로가 발을 씻지못하도록 예수께 항변한다. 나중에는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말한다. 가롯유다는 예수를 팔려고 하므로, 예수님이 가롯 유다를 발에 비유를 하면서, 목욕한 자는 깨끗하지만, 발은 씻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가룻유다는 발에 해당되고, 다른 열한명의 제자들은 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왜 발을 씻어야 하는가? 표면적으로는 발은 이동해야 하므로 씻지 않으면, 비위생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는 세례와 같은 의미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따라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는 것은 위생적인 문제가 아니라, 육적으로 죽고 영적으로 부활생명을 얻게하는 일인 것이다.
한 제자인 가롯유다는 자기 죄로 죽게 되지만, 나머지 열한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발을 씻는 행위(세례에서 물에 잠기는 것)인 것이다. 발이 물에 잠긴 것은 죽음을 상징하며, 가롯유다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2-13절『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제자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선생이라는 말로 말을 잇는다. 선생은 학생보다 뛰어난 자라기 보다, 앞에서 선도적으로 나가는 자라는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내가 먼저 시범을 보였으니, 너희들도 나와 같이 본을 보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5절에서『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어주는 행동은 그들에게는 단순히 발의 먼지를 제거하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도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테니, 너희들도 나와 연합하여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3장 16-17절에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종은 항상 주인의 뒤에서 따르고 행한다. 주인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멈추는 것이다. 비록 종이 행동하지만, 주인이 하는 것을 대행할 뿐이다. 이러한 의미를 알게 되면 종은 참으로 복이 있는 자가 된다. 주인과 종이 하나가 되어 행하므로, 종이 행하는 모든 것은 주인의 행위가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종은 주인의 모든 권능을 받고 행동하는 것이므로 종에게 복인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8절『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 인줄 너희가 믿게 하려함이로다.』
발꿈치 드는 자는 표면적으로는 키가 작은 자가 키를 크게 보이려고 발꿈치를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배반하는 자이고, 대적하는 자를 의미한다. 가롯유다가 예수를 팔고, 이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사건을 제자들이 목격하므로서, 시편에서 말하는 다윗의 이야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시편 41편 9절『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다윗을 대적하던 자는 바로 아들인 압살롬과 다윗의 신하들이었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은 원래 하나님과 하나였지만, 그들 중 많은 자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생겼으며,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죄로 영적으로 육신에 갇혀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인 것이다. 그들은 가롯 유다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처럼 유사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영이 육체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하신 것이다. 제자들이 이런 상황을 깨닫게 되면,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 시범을 보이셨으니, 제자들이 다 따라 행하는 것이고, 오늘날 성도 역시 다 따라 행할 것이다. 이것이 죽어있는 영적 형제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신다.
요한복음 13장 20절에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바로 예수님이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을 한다. 복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신도가 예수와 함께 육의 몸이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죄가 죽고(물세례), 죄의 몸이 죽는 것(불세례)이다. 죄를 사해주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권한을 위임하셨고, 예수님이 제자(성도)에게 그 권한을 위임하셨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여는 권능을 하나님이 아들 예수에게 주셨듯이, 예수님이 제자(성도)에게 그 권한을 주셨다. 그래서 제자(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다. 세례를 받는 자는 비록 제자들이 신도의 머리에 안수하지만, 예수 나아가 하나님이 직접 안수하고 세례를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를 파는 자들이 있다. 예수를 이용해서 장사하는 자들이다. 십일조 등을 이용해서 헌금을 강요하거나, 성전 건축 헌금을 강요하거나, 온갖 절기를 만들어서 헌금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교회 공동체 건물을 목사가 팔고 도망가는 사례, 목사가 아들과 추종자들에게 공동체 건물을 넘겨서, 몇몇 사람들이 교회를 사유화하는 모습이 있는 것이다. 또한 성령체험이라고 해서 돈을 기부하도록 하는 등의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가롯유다와 같은 자들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자신은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랑하지만 속은 탐욕에 찌든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