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시인이 아무리 마음에 드는 시를 써 놓았더라도 시의 꼴을 갖추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시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시의 꼴이란 사람의 얼굴 같다. 미인을 판단할 때 부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눈에 미인임을 알아보는 것처럼 약간 난해한 시라도 한 번만 읽어봐도 좋은 시인지 허접한 시인지 대강은 짐작된다. 속은 알 수 없지만, 꼴이 되거나 안 된 시는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보면 한눈에 들어온다. 시의 꼴이란 무엇인가?
1) 제목과 첫 행이다. 제목과 첫 행이 시를 끌고 가는 머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제목이 너무 익숙하거나 진부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첫 행에서 관심을 끌어야 한다. 시의 첫 행이 재미없으면 그 시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이미지Image다. 시를 읽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지가 시의 몸통이기에 그렇다. 시에서의 이미지를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말로 만들어진 그림'이다. 하나의 형용사든 은유나 직유, 또는 비유나 묘사적 어구로도 만들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사용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어떤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이다.
근대시의 핵심이 리듬에 있었다면 현대시의 핵심은 이미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이미지 중심에서 의미 중심의 시로 옮겨가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리듬이나 이미지의 중요성이 퇴색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시 자체가 안 되거나 시가 맛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시를 쓰고자 하면 리듬과 이미지를 시에 넣는 연습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렇게 제목과 이미지에서 첫 행, 이 말 하는데 저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했다면 일단 성공한 시라고 볼 수 있다.
3) 또한 시인의 언어란 한마디로 말해서 ‘소수어’다. ‘소수어’란 시인이 선택한 일반적 내용을 가장 축약된 말로 조합한 ‘구체적 언어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가공에 불과한 일반적 이미지는 표면적 언어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서 ‘파도가 넘실대는 드넓은 바다’란 구절은 “A는 A다”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소수어’가 되기 위해서는 2차 가공에 들어가야 한다. 2차 가공의 대표적인 작법이 ‘비유’다. 비유는 입체감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이는 시적 대상의 이미지와 연관되는 다른 대상을 가져와서 가공하거나 그림자에도 그 역할을 주어서 결합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많이 절망한다. 결합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시의 재료는 잔뜩 늘어놨는데 그것을 결합하지 못하면 시로 요리되지 못한 시 이전의 시, 비시(非詩)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밥으로 조리되지 않은 생쌀을 밥이라고 내놓은 형국이다. 그러므로 ‘결합’은 시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결합의 다른 말은 ‘유추(類推)’다. 상상과도 비슷한 말인데, 이 유추의 힘은 시에서 절대적이다. 모든 시는 ‘유추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하다.
4) 시인의 세계관은 세상과 불화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를 아이러니스트라고도 하는데 삶의 진부한 상식을 넘어서 새롭게 인식한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해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지식의 자리에는 시인이 설 자리가 없다. 즉, 세상의 모든 시적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모순어법, 또는 반어와 역설로 표현하는 문학이 시의 핵심에 흐르는 사상이기에 그렇다.
일반적인 사람은 세상의 상식으로 정답을 말한다. 시인의 언어는 그 사람들에겐 오답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때 그 오답은 허공의 언어가 아니라 땅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지난 강의에서 언급했듯 허공의 언어는 공허한 것이고, 땅의 언어는 새롭게 해석한 언어다. 기름진 합리주의자나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뒤틀린 언어주의자가 되어야지만 시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