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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생각
이 홍사
누가 허락도 없이 수꼴이라고 하느냐?
절대로 수꼴의 면허나 자격증을 낸 일이 없다.
수꼴? 수구 꼴통의 줄임말로 요즘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인데, 홍랑의 아들 녀석은 늘 빈정거리는 투로 말한다. 아버지는 수꼴이라고. 이 녀석은 정확한 뜻을 모른다. 홍랑이 생각하기에는 늙은이의 변하지 않을 고정관념을 수꼴이라고 곡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 이놈아! 꼰대는 수꼴이라고 직설적으로 털어놓지. 수꼴? 그래도 좌빨이라는 말보다는 거부감이 덜 인다. 이 자식아!
홍랑은 속으로 그렇게 반문하며 중얼거린다. 그런데 꼰대라는 말이 있기나 할까? 어디서 비롯된 말일까?
꼰대?
일삼아서 사전을 들추어 본 일이 있다. 늙은이, 아버지, 선생을 통속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역시 그랬다. 속어인데 명사로 분류되며, 뜻은 그렇다고 사전은 기술하고 있었다. 꼰대라면 노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뉘앙스의 명사라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하여 꼰대라고 불리더라도 노인 냄새를 없애려고 홍랑은 매일 샤워를 한다,
아무렴. 꼰대가 되더라도 노인 냄새는 풍기지 말아야지.
무슨 훈계를 하려고 하면 아들 녀석이 홍랑을 보는 눈은 그 꼰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하다. 그건 살아보면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다. 그래, 그렇더라도 꼰대에겐 철학이라는 게 있다. 살아온 경륜에서 무의식적으로 묻어나오는, 대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다. 통으로 싸잡아 환갑이 넘도록 굳어버린 아집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고리타분한 생각은 결코 아니다.
세상에는 열린 꼰대도 있는 법이다.
그래 이미 꼰대가 되었으니 꼰대의 생각을 늘어놓아 보자.
이 꼰대는 경제를 개발한 세대다. 세대 차이가 난다는 아이들아! 이 점은 무시하지 마라. 너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발판을 구축한 세대이며,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서 이 나라 경제의 초석을 다진 세대다. 홍랑이라는 이 꼰대는 항상 시계를 오 분 빠르게 설정하고 살아온 세대다.
오 분 빠르게?
환갑이 되는 날 아침, 이제는 귀가 순해지는 나이다. 홍랑은 이제는 느긋하게 생각하자는 각오로 시계를 다시 맞추었다. 정시보다 오 분이 늦도록. 이제는 오 분 늦게 살자. 오 분 늦게! 딱, 오 분 늦게 죽자는 심정으로 시계를 맞추었다.
오 분?
홍랑은 평생 오 분이 빠른 시계를 보고 살아왔다. 오 분이라는 시간은 인식의 획기적인 전환이고 변화였으며 생활의 지침이었다. 오 분! 그건 살아온 생에 대한 반란이고 혁명이었다. 쉽게 생각할 오 분이 결코 아니다.
홍랑은 꼰대로 둔갑하는 환갑날 아침에 그런 짓을 자행했다.
환갑날 아침에 비로소 스스로 이제는 꼰대가 되었음을 자인하고 시계를 돌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오 분을 늦게 맞추더라도 늦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약속을 한 시간이 그러했고, 기차를 타는 시간이 그러했고, 무슨 일이든,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그러했다. 미리 준비하는 게 평생 몸에 배어서 그런지 일찌감치 준비한다. 준비하고 나서 느긋하게 돌아보면 예정된 시간보다 항상 이르다. 오히려 모든 일이 오 분 빠르게 진행된다는 확고한 보상 심리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기다림의 따분한 시간을 오 분이나 줄일 수가 있다는 안도감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세대 차이를 들먹이는 아이들아!
홍랑이라는 이 꼰대는 다른 동시대 세대들처럼, 이른바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세대들처럼 일하지 않고 입으로만 민주를 외치며, 열심히 일하는 세대에 기생하여 살아온 기생충, 좌빨은 결코 아니란다. 그런 인간들과는 엄연히 이념과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심지어 너희처럼 그들을 혐오하고 있단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가능하면 후손들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을 방법론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꼰대란다.
일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말하면 일할 자리가 없다고 대답한다.
당연하지. 그러게 배웠으니.
이 모순의 시대에 그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인지하고 파악하는 세대가 바로 꼰대의 세대란다. 지식은 너희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지혜의 촉각은 너희들 보다 발달한 세대란다. 지혜는 배우지 않고 아는 것이라고 했다. 홍랑은 늘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따지면 신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많이 배웠을지 모르지만, 밥을 구하는 능력은 홍랑이라는 꼰대의 세대가 월등히 낫다는 생각이다.
홍랑이라는 꼰대는 평생 버릇이 되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새벽에 일어나서 떠올린 말이 노동 예찬이라는 말이다. 늙을수록 일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이 하고 싶어서 이 말이 무의식중에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노동 예찬?
노동 예찬? 왜 그런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홍랑이 새벽에 일어나면서 불쑥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말인데, 노트북을 켜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홍랑은 바로 적어보았단다. 꼰대가 되면 뭘 생각하다가 깜빡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점은 인정하고 시인한다.
노트북에 그렇게 적어놓고 커서가 껌뻑이는 글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모니터에 적은 글귀 뒤에 커서가 껌뻑이고 있다. 뭘 이어서 쓰라는 얘기인데 도무지 이어서 쓸 말이 홍랑에겐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인가? 너무 오래 보아서인지 눈물이 괼 정도로 바라보고 생각했다.
노동?
이 신선한 언어가 왜 이렇게 변질되었을까? 좌빨들이 쓰는, 뭔가 이념적인 용어라는 뉘앙스가 풍기지 않는가? 이념적이고 좌우 편 가르기를 하는 말이나 행위는 이 꼰대가 딱 질색이니 노동이란 예찬할 거리가 못 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최소한 이 단어가 지닌 속성은 그렇다는 생각이 짙다.
노동자와 근로자는 같은가? 노동자의 날이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나? 근로자의 날이 노동자의 날로 바뀌었나?
잘 모르겠다.
보고 있으니 노동이라는 단어는 좌빨의 전용어인 듯 느껴져서 그런지, 홍랑의 눈이나 심리적으로,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홍랑은 한참을 보다가 마우스를 당겨 껌뻑이는 커서를 옮겨 노동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일거리 예찬이라고 수정해서 적었다. 일거리 예찬? 어감이 좀 다른가? 부드러워졌나? 이게 수꼴의 언어다.
일은 거룩하다.
이 말에는 어떤, 괴상한 논리로 무장된 좌빨의 논자라 하더라도 부정하거니 딴지를 걸지 못할 것이다.
“그래 일은 거룩한 거야!”
홍랑은 드디어 흡족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 일어나서 처음 뱉는 말이다. 그렇게 입을 떼고 자신의 말에 거듭 수긍하고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까지 주억였다. 일이 없어서 환장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니터에 던진 눈길을 떼지 않고 있다가 예찬이라는 단어를 또 지우고 홍랑은 찬사라는 단어를 쳐넣어 보았다.
일거리 찬사?
일거리에 관한 찬사? 일거리에 대한 찬사?
아무래도 좋다. 노동 예찬이라는 말보다는 어감이 부드럽고 낫다.
일은 실로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다. 여기서‘것이다’라는 말을 빼고‘일이다’라는 말로 수식해도 무방한 언어가 바로 일이라는 말이다.
일이란 실로 신성하고 거룩한 일이다?
음! 이제야 어감이 거북하지가 않는군.
일이란 단어는 거룩하고 숭고해서 이런 곳에도 가져다 붙여도, 의미가 상통하고 무방한 말이다. 그렇지. 일이 거룩하고 숭고하다는 사실은, 땀 흘려 해 본 자만이 그 참맛을 알 수가 있다는 게 꼰대인 홍랑의 생각이다. 땀 흘린 보람, 무슨 좋은 결과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 좋은 설렘.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가뿐한 몸의 뿌듯함. 이걸 딱 꼬집어 뭐라고 설명할 수가 있을까?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수긍하기가 힘들지도 모르는 자긍심. 서술력이 부족한 홍랑은 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작금은 시대가 변해서 일거리가 없단다.
특히나 건설은 완전히 버린 자식이다.
이 나라의 중장비들은 전부가 일거리가 없어서 서 있단다.
투자 심리가 얼마나 위축되었는지 하던 공사마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투자!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총체적으로 경기가 극도로 나빠져서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투자! 투자.
홍랑의 식견으로 짚어도 맞는 말이다. 이견을 달 수가 없다.
중장비가 서 있다? 일거리가 없어서?
홍랑이 소유한 장비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그건 장비 차주로서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은 것이 바가지에 녹이 슨 채로 서 있는 굴착기다. 그건 장비 차주가 되어보면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다. 그게 홍랑의 장비든, 타인의 장비든 참으로 꼴 보기 싫어 애써 외면하게 된다.
세상에 가장 보기 좋은 것은 그 물건이 제 용도로 쓰이면서 윤이 날 때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 자리에서 제 일을 열심히 할 때가 가장 보기 좋다. 그때 자세히 보면 일하는 사람 얼굴에 윤기가 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소명을 다할 때의 아름다움,
그것을 어디에 견줄까? 꽃의 소명은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고 열매를 맺는 것이 분명할 터이다. 열매는 곧 씨앗이다. 그래서 꽃이 필 무렵도, 질 무렵도 아름다운 거다. 건설기계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일 할 때 가장 보기가 좋다. 일하러 갈 때도 보기가 좋고 깔끔하게 일을 마치고 들어올 때도 보기가 좋다. 그게 꼰대의 생각이다.
홍랑은 아들 녀석에게 이 일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싶었다. 꼰대라고 부르는 아들 녀석의 가슴에 심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세상의 모든 꼰대가 자기 아이에게만 가르치면 세상이 분명하게 바뀔 것인데 안타깝다.
홍랑은 생각한다. 아들 녀석은 아직 일이 귀한 줄을 모른다고. 노는 게 최선이고 쉬는 게 차선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일은 그다음 순위로 밀려 있다. 그걸 역순으로 돌려야 된다는 게 꼰대의 생각이다.
불행하게도, 이 모순의 시대에 비단, 아들 녀석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 터이다. 그 세대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누구의 덕인지 모르지만 먹을 게 흔한 시대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일단 집에 앉아서 먹을 것을 배달시킨다. 그다음은 카드를 긁는다.
그다음은?
또 그다음은?
그다음은 모른다. 아니. 생각하기를 회피하는 것이다. 일단 생각은 거기까지만 한다. 먹는 데까지만 생각을 한다. 거기서 생각을 멈춘다. 참으로 편리한 생각을 지닌 세대다. 홍랑의 아들 녀석도 예외는 아니다.
이걸 무어라고 풀어서 설명하지? 홍랑은 그저 답답하다.
홍랑의 아들 녀석은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좀 나은 편이다. 장비 차주의 아들이라고, 입대하기 전에 굴착기 면허를 내도록 가르쳐서 군에 보냈다. 군에서 굴착기 운전병으로 근무해서 실무를 좀 익히고 제대하자 녀석의 이름으로 굴착기를 한 대 장만해주어서 이 녀석은 고생하지 않고 장비 차주가 되었다.
이젠 현장에서 웬만한 난이도의 작업은 거뜬하게 마치고 들어올 정도로 숙련이 되어 있는 녀석인데, 일을 즐기지 않는 것이다. 일이란 자고로 끌려다니지 말고 즐기며 해야 하는데 녀석은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아버지 옛날에 어떻게 일을 했는지 얘기를 해줄까?”
홍랑이 밥상머리에서 이렇게 말을 꺼내면 녀석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까딱하면 숟가락을 놓고 일어설 기세다. 그러면 옆에 앉은 아내는 아들 녀석 편에 서서 장단을 맞춘다.
“옛날하고 지금과 비교를 하지 마세요. 시대가 어떻게 변했는데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려고 해요?”
“이 여편네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건 똑같아! 틀린 게 하나도 없어”.
홍랑은 아들 녀석이 들으라는 소리로 아내에게 그렇게 일축하기가 일쑤다.
옛날에 홍랑은 밥상머리에서 하시는 아버지 말씀을 묵묵히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된 게 그렇지도 않다. 참 안타깝다. 그것이 바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살아있는 교육인데 그런 밥상머리 교육은 과감히 생략되었다. 홍랑은 고개를 갸웃한다. 혹시, 우리 집에서만 그런가?
‘주관적으로 가까이서 보지 말고 객관적으로 멀리서 보아라, 그러면 세상이 돌아가는 판세가 보인다. 바둑도 멀리서 훈수를 두는 놈의 눈에는 보인다.’
홍랑의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적에 늘 하시던 말씀인데 그 말이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그 말을 떠올리고 홍랑은 등 뒤에서 자신의 뒷모습을 객관적으로 본다.
참 처량한 작자의 구부정한 뒷모습이다. 세파에 시달린 꼰대의 모습이다.
이제는 아버지라는 권위는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꼰대의 잔소리만 존재할 뿐이다.
오늘은 모처럼 굴착기가 일이 잡혔단다.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야산에 길을 내고 터를 닦는 현장에 나가는, 하루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나마 오랜만에 일감이 들어온 것이다.
녀석이 서 있는 굴착기를 끌고 일을 하러 나가는 날이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바가지에 슨 녹을 벗기는 정도의 일이지만, 아들 녀석이 일하러 나가는 날이라 홍랑은 더 일찍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여태 놀았으면 일이 얼마나 귀한지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홍랑이라는 꼰대의 생각이고. 녀석은 이제는 일하러 나가는 날이면 새벽에 깨우지 않아도 제시간에 맞추어 겨우 일어나는 정도다. 그것도 장족의 성장과 발전에 해당하는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아침에 깨우려면 죽을 맛이었다. 밤에 뭘 하는지 아침에 못 일어나서 홍랑이 먼저 깨우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제 엄마가 나서서 깨우곤 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일어나는 정도인데 아내는 그게 감지덕지다.
홍랑은 아침에 자는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고 아직 깨우기에 이르다는 생각을 하고 아래층의 사무실로 내려오며 속으로 뱉었다.
아들아! 축구화 속의 발가락이 되어라.
일은 그렇게 해야 하느니라.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할 때 자긍심은 곱절로 느끼느니라. 아버지는, 아니 이 꼰대는 평생 축구화 속의 엄지발가락이었단다.
축구화 속의 엄지발가락?
갑자기 떠오른 말인데, 말을 하고 보니 그렇다.
홍랑은 축구화 속의 엄지발가락이었다. 평생 그랬다.
홍랑이라는 이 꼰대가 중장비를 시작한 게 얼마인가? 조수 시절부터 따지면 사십 년이 훌쩍 넘는다. 그동안 이제는 누구도 깨지 못할, 절대로 깨지지 않을 기록들을 상당히 많이 세웠다. 지금 근로 시간으로는 도저히 그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지금은 중장비 기사도 근로기준법에 상응하여 아침 여덟 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다섯 시에 마치는 게 현장마다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홍랑이 한참 잘 익은 노동의 나이에 일할 적에는 중장비 기사에게는 그런 근무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 법에 저촉은 받지 않고 현장에서 일을 시켰다.
당시에 하루 일이라면 아침에 시작하는 시간은 일곱 시로 정해졌지만 마치는 시간은 딱히 정해지지 않았다. 해가 빠지고 어두침침해져야 마치는 시간이었다. 올림픽을 하기 전에 썸머타임이라는 게 있었다. 홍랑은 올림픽에 관한 기억은 없고 한 해 전의 썸머타임만 기억에 오롯이 남아있다.
그해는 유독 가물었는데 그야말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삼십 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홍랑은 그 현장은 잊지 못하고 어쩌다 고속도로로 가다가 칠곡휴게소를 지나 그 현장 어귀를 지나가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모서리를 치곤 한다.
아침에 일을 시작할 적에는 썸머타임을 적용해서 엄격히 일곱 시에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치는 시간은 해가 져야 마치는데, 저녁 아홉 시 반이 되어도 해가 넘어가지 않고 날이 훤한 것이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뜨거운 해가 늦도록 대지를 달구다가 넘어가는 날의 연속이었다. 시계를 한 시간 당겨 놓았으니 당연히 그 시간에 해가 넘어가지 않지, 비가 와야 하는데, 비가 와야 하는데, 당시에는 꼰대가 아닌 홍랑이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계산하니 하루에 열여섯 시간 반을 굴착기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에는 홍랑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굴착기를 구매한 지 얼마 않았던 시점이었다. 일이 재미있을 무렵이라 목돈을 만들자고 일이 수월한 현장을 버리고 칠곡의 통신케이블 매설공사에 월 임대를 들어갔었다.
월 임대란 연료비는 현장에서 부담하고 한 달 일하는데 얼마, 이런 형식으로 계약을 하고 일을 했는데. 그해에는 날씨가 얼마나 가물었는지 67일을 곱빼기로 하고 나니 비가 내렸다. 비가 와야만 현장이 쉬는데 농로에 밟으면 타박타박한 먼지가 발등까지 덮어씌울 정도로 비가 오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인부들이야 알아서 하루씩 빠져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굴착기 기사인 홍랑이 쉬면 현장의 모든 일이 중단되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오로지 비를 기다렸다. 덕분에 석 달을 넘게 계획했던 일이 두 달이 좀 넘어서 끝이 났다.
그건 신화였다.
어두컴컴해져서야 하루 일을 마치고 현장에서 출발하면서 인사라고는, 농담이지만, 집에 잠시 다녀올게요, 하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굴착기에 에어컨이라는 게 달리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해 여름, 뜨거운 날씨와 중장비가 내뿜는 열기를 고스란히 홍랑은 몸으로 감당하고 막아야 했다. 하루 일을 하면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몸에서 쉰내가 날 지경이었고 땀에 엉덩이는 짓물러 살아오면서 치질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다. 치질은 중장비 기사의 직업병이다. 지금은 전기 통풍 방석이나 에어컨이 있어서 그렇지 않지만, 지금 꼰대로 불리는 당시의 기사는 다 그랬다.
집에는 쉬러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잠만 자러 들어오는 셈이었다. 현장 마무리를 하고 집에 도착하면 밤 열한 시가 되었고 씻고 바로 자야만 했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래야 했다. 이렇게 일해서 뭐하나? 그런 생각은 사치였다. 아니,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짬이 없었다. 67일을,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곱빼기로 하고 나니 비가 내렸다.
세상에? 그렇게 반가운 비가 있었든가?
비는 이틀간 내렸는데 홍랑은 이틀 동안 집에 나른하게 퍼져서 잠만 잤다.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몸살로 이어졌던 모양이다. 노동의 강도가 셀수록 휴식과 잠은 달콤한 법이고, 뒤에 나타나는 보람도 더 뿌듯하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틀간 어머니의 자궁 속에 태아가 이렇게 편한가 싶을 정도로 아늑하고 아득하고 혼몽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일하는 가운데 짬이 나거나 자투리 시간이 주어지면 그 시간을 홍랑은 황금의 시간이라 명명했다.
황금의 시간?
그걸 아들 녀석에게 알려주고 싶지만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안타깝다.
홍랑이 지닌 그 기록에 이젠 누구도 도전할 수가 없고 깰 수도 없다.
신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화창조, 도전의식이 유독 강한 꼰대, 홍랑이 정말 좋아하는 말이다. 한때 그 글귀를 명함에 새겨넣기도 했을 정도다.
신화창조는 그 현장뿐만이 아니라 또 있었다.
신평동 고속도로 굴다리가 확장되기 전이었으니 이십 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공단 쪽에서 수도와 도시가스 중에서 고압 가스관이 신평 굴다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외통수 길이라 주간에는 교통량이 많아 철야 작업이 불가피했다. 야간에 한 차선을 막고 공사하고 주간에는 차량을 통행시켜 주어야만 하는 공사였다. 수도업체와 도시가스시공업체가 공동으로 하는 작업이었는데 그 현장은 정말 난공사였다. 매일 작업 시작하는 시간과 종료하는 시간을 경찰서 상황실에 보고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외통수 길이었다.
팔백 미리 수도관과 삼백 미리 고압 가스관을 그 굴다리를 통과시키는데, 정확하게 며칠이 걸렸는지 홍랑의 기억에 없지만, 보름 이상이 걸렸다. 그동안, 고스란히 올빼미 철야 작업을 해야만 했다.
굴착기는 본디 주간 작업보다 야간이 체력소모가 훨씬 심한 법이다.
지하에 이미 묻혀있는 다른 매설물을 건드리는 날에는 난리가 난다. 만약 건드리면 그날 밤은 그걸 복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조심조심, 홍랑은 몸의 모든 감각기능을 굴착기 바가지에 실어서 흙 속을 더듬어 가면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런 현장에서 철야 작업을 하고 나면 눈이 아리고 시리다. 그러나 낮에도 쉬거나 잘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굴착기가 모자라던 시절이라 누가 연락이 와도 오는 것이다. 잠깐만 하면 된다고 도와달라고 사정해서 나가면 한나절 작업이다.
잠은 자투리 시간에 자야만 했다.
낮에 작업하더라도 야간에 다른 굴착기를 보내면 안 된다. 지하 매설물이 있는 위치를 이미 홍랑이 파악하고 있기에 홍랑이 작업을 들어가야 현장에서 안심하는 일이다. 홍랑은 늘 축구화 속의 엄지발가락이라는 생각으로 일에 임했다. 잠이 모자라 충혈된 눈으로 올빼미 작업을 보름 이상 해야만 했다.
지금은 그런 작업이 잡히면 굴착기 두 대가 동원되겠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이쪽에 가서 수도관을 들어주고 저쪽으로 넘어가서 땅을 파고, 두 대의 몫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주간까지 따지자면 세 대의 몫을 혼자서 한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신화가 아니고 기록은 또 있다.
낙동강 중간의 모래톱에 일주일간 갇힌 적도 있다.
천이백 미리 대형 수도관을 낙동강 건너 삼 공단으로 끌고 가서 모자라는 공업용수를 공급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 대형 공사는 한 업체가 낙찰받아서 한군데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구간별로 끊어서 입찰을 받는다.
당시에 홍랑이 거래하는 수도업체에서는 하필이면 낙동강을 횡단시키는 구간을 맡았다. 강바닥에 대형 수도관을 매설하는 가장 난공사였다. 그런 공사는 물과 사투다. 강둑을 자르고 강가의 모래사장에서는 큰 문제가 없이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두 달이 넘게 걸리는 공사였는데 강 중간쯤에서 공사가 한창 진행할 적에 때아닌 봄 홍수를 만난 것이다. 주위의 강물 속, 모래를 퍼서 공사하는 구간에 섬으로 만들어 물길을 돌리며 공사를 하는데 거대한 홍수를 만났으니 방법이 없다. 그 섬이 유실되지 않도록 사수를 해야만 했다. 물론 간 중간에 고립된 굴착기를 빼서 나올 수도 없었고, 더구나 매설하다가 중단된 천이백 미리 대형 관로가, 모래섬이 유실되어 묻히는 날에는 관 안에 물과 함께 쓸려 들어간 모래를 빼낼 방법이 없다. 무조건 섬을 사수해야만 했는데 모래톱은 늘어난 물에, 뭉텅, 뭉텅 유실되는 것이었다. 그걸 보는 홍랑은 살을 깎아내는 기분이었다.
두어 시간마다 강물 속의 모래를 퍼서 유실된 만큼 섬을 보강하여 홍수가 끝날 때까지 섬을 살려야만 하는 것이다. 강물이 불어나고 유속이 빨라지자 유실되는 모래의 양도 엄청났다. 단단히 둑을 보강해놓고 잠깐 눈을 붙이고 보면 뭉텅 잘려나간 모래톱, 그걸 보는 낭패감이란.
그때마다. 주위의 물속을 긁어서 모래를 퍼서 다시 보강하며 공사 구간을 사수하며 강물이 줄기만을 막연히 기다려야 했다. 밤이라고 유실되지 않는 게 아니다. 밤에도 두어 시간마다 시동을 걸어 쓸려나간 만큼의 모래를 퍼서 섬의 둑을 만들어서 공사 구간이 유실되지 않도록 보강해야만 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낚시용 고무보트로 굴착기 연료, 두 말과 먹을 것을 공급받고 작은 모래섬에서 홍랑 혼자 일주일을 살았다. 첫날은 누구의 간섭도 없는, 상당히 낭만적인 곳에서 맛보는 고립의 해방감이라 생각을 했는데 이틀이 지나고 나니 그런 고역이 없었다. 굴착기 운전석에서 앉아서 선잠을 자며 물길을 살펴야 했는데 그런 일도 기록이라면 기록이었다.
모래섬은 자꾸 줄어서 겨우 굴착기가 설 자리와 공사 구간만 사수하고 있으니 강물이 차츰 줄기 시작했다. 강물이 줄어드니 주위의 물속에 있는 모래를 푸기가 수월해졌다. 잔뜩 긁어서 거대한 둑을 만들어놓고 일주일 만에 퇴근했는데 그때의 해방감이란. 일주일간 씻지도 못하고, 면도는커녕, 옷도 갈아입지 못했으니 홍랑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을 내려다보니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었다.
지금이야 옛날에 같이 일했던 기사를 만나면 술좌석에서 안주로 등장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홍랑은 그 전설의 실제 주인공이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일했으니 이만큼 사는 것이라고.
홍랑은 아들 녀석에게 말하고 싶다.
이 꼰대가 그렇게 해서 너를 키웠노라고.
요즘 들어서 가끔 나오는 말인데. 동일노동에 동일 임금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는 말인즉, 누구의 발상인지 모르겠으나 정책에서 이 말이 등장하는 것은 시장성을 무시한 것이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무한 경쟁의 자유시장에서는 이 말이 합리적으로 성립이 될 수가 없다.
실전에서 뛰어보지 않고 기생하며 살아온 좌빨에서 나온 말이 분명할 것인데 방법론적으로 형성될 수 없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일노동을 할 것이냐? 노동의 질과 강도가 다른데 무엇을 근거로 동일노동을 할 것인가?
홍랑이 생각해도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말에 현혹되지 마라. 선수가 사이다에 신경을 쓰면 안 된다. 수꼴의 생각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수꼴? 그래 좌빨이라는 말도다는 듣기가 낫다. 보수나 진보를 놓고, 진보라고 하면 지식인으로 분류하는 희한한 경우가 생겼다. 어디에, 무슨 근거를 두고 그렇게 분류하는지 홍랑은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라고 하면 일 할 자리가 없단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홍랑은 외치고 싶다.
지식으로만 무장된 너희들은 바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신세대는 그걸 모르지만, 지혜를 지닌 꼰대들은 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마당이 이렇게 기울어졌는지 홍랑은 안다.
투자 심리를 살려야 한다.
너희들이 그렇게 못마땅해하는 자본가, 그들의 투자 심리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결코,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선망의 대상은 될 수가 있어도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 저절로 굴러온 것이 아니다. 축구화 속의 엄지발가락이 있었기에 넣은 골의 득점이다. 자본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지금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할 부류는 자본가가 아니라 바로 강성노조다. 뻔뻔하고, 염치도 없고, 체면을 모르는, 좌빨 강성노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대에 참 책임감이 없는 개인이 모인 집단이다. 무리한 요구를 해서 관철되지 않으면 바로 파업을 들먹인다. 그걸 연례행사로 하고 있으니,
말은 이쯤에서 아끼자.
이 꼰대가 단언하는데 작금에는 박해받는 노동자가 없다. 외국인 근로자도 최저임금과 근로 시간을 적용받는 마당에 박해받는 노동자라니? 그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황제 노조라는 말이 돌지 않는가? 노조는 아무리 설쳐도 죄가 되지 않고 고용주를 잡아넣는 법은 조목별로 따지면 이천 가지가 넘는다. 분명 세상은 갑과 을이 바뀌었다. 적어도 노동계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노조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본가가 투자할 수 있는, 최소한 틈과 여유는 주어야 한다. 투자는 하고 싶은데 노조가 겁이 나서 투자를 재고한다면 그건 분명히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잘못된 구조다.
꼰대는 거의 다 살았다. 전쟁이 없는 세대에 나서 정말 잘 살았다. 꼰대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세대를 걱정하는 것이다.
기원전 4세기경 동굴에 조각된 문자에서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으니 앞날이 걱정이라는 말이 나와 있단다. 꼰대는 그때도 존재했던 모양이고, 그때의 꼰대도 새로운 세대들을 걱정했지만, 인류는 망하지 않고 번식을 지속하였고 문명은 진화했다. 그렇지만 안일한 세대들아! 그대들도 언젠가는 꼰대가 된다.
위층에서 계단이 쿵쾅거린다.
녀석이 이제야 내려오는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어라? 이렇게 지났나? 빠듯한 시간이다. 주기장에 가서 굴착기를 끌고 현장까지 가자면 빠듯한 시간이다.
“아버지?”
사무실 문을 열고 아들 녀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철제 캐비닛과 책장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인데, 홍랑은 꼰대 거기 있어요? 하는 소리로 들렸다.
“왜?”
꼰대에 너무 집착했던가? 하마터면, 꼰대 여기 있다고 낭창하게 대답할 뻔했다.
“갔다 올게요.”
“항상 오 분 일찍 현장에 도착하는 버릇을 들여라. 오 분이 중요한 법이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오 분 정도는 기다려야죠.”
“일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이라고 생각해라.”
“노가다 판에서 고객이 어디 있어요? 갔다가 올게요.”
녀석은 나머지 말은 듣지 않고 문을 쿵 닫고 계단을 급하게 내려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은 더 배울 게 있다. 일을 물고 오는 법, 그걸 가르쳐야 한다. 기회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모름지기 균등한 기회란 없다. 열심히 일하는 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만 기회는 균등하게 제공된다.
그게, 마치 몇억 년 된 동굴의 종유석 같은 수꼴 정신, 수꼴이 가슴 속에 기둥으로 자리 잡은 꼰대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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