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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로마서 5:18-21 2024/6/30 성령강림 후 제6주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얼마 전 화성에 있는 한 공장에서 23명의 노동자들이 아주 안타까운 참변을 당했습니다. 그 중에서 흔히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재중동포 17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타까운 죽음이 보도로 나가자 여기저기서 비난의 막말이 쏟아졌습니다.
‘중국동포가 아니라 중국인이다’
‘불법체류자인지 확인하라’
‘4대 보험 냈는지 조사하라’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다’ 등 혐오의 발언들이 쏟아졌습니다.
타인을 향한 혐오와 비난과 정죄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오늘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말세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새)딤후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3:2 사람들이 ①자기를 사랑하며, ②돈을 사랑하며, ③자랑하며, ④교만하며, ⑤비방하며, ⑥부모를 거역하며, ⑦감사하지 아니하며, ⑧거룩하지 아니하며,
3:3 ⑨무정하며, ⑩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⑪모함하며, ⑫절제하지 못하며, ⑬사나우며, ⑭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3:4 ⑮배신하며, ⑯조급하며, ⑰자만하며, ⑱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5 ⑲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가까이 하지 말라)
여기서 제 마음을 먹먹하게 말세의 징조는 세 가지입니다.
‘(2)자기를 사랑하며’ ‘(3)무정하며’ ‘(3)사나우며’
‘자기를 사랑하며’
이것이 왜 말세의 징조가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정말 사랑해야 될 첫 번째 대상
하나님 아버지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세의 가장 큰 징조가 ‘자기를 사랑하며’가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서점가에서 뜨는 책들이 있습니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 자신을 위해 살라‘는 등의 자기 사랑 자기 위로의 책들이 서점가에서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당연하고 맞는 말 같지요.
하지만 복음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어가 ‘너 자신’입니다.
따라서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 자신을 위해 살라’는 위로는 속임이고 거짓입니다.
‘무정하며(너는 너 나는 나)’
이것은 왜 문제가 될까요?
우리가 사랑해야할 또 다른 대상 이웃(타인)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가 주신 새 계명을 무력하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요13:34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나우며’
무엇이 문제일까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죄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으니 사나울 수밖에 없겠지요.
죄
과연 없는 것일까요?
범죄자가 아니니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죄는 분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죄의 주인공이지요.
죄와 죄인에 대한 바울의 설명입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바울은 보이지 않는 죄를 언급하면서 한 사람 아담을 언급합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없던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 세계, 그 세계에 없던 죄와 사망이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시작된 불순종의 결과 죄와 사망이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죄 이것을 우리가 원죄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해서 원죄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말세의 징조 그것은 곧 원죄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원죄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들이 말세의 징조들이지요.
(새)딤후3:2 (죄와 사망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①자기를 사랑하며, ②돈을 사랑하며, ③자랑하며, ④교만하며, ⑤비방하며, ⑥부모를 거역하며, ⑦감사하지 아니하며, ⑧거룩하지 아니하며,
3:3 ⑨무정하며, ⑩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⑪모함하며, ⑫절제하지 못하며, ⑬사나우며, ⑭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3:4 ⑮배신하며, ⑯조급하며, ⑰자만하며, ⑱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5 ⑲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것입니다)하니,
어떻습니까?
동의하십니까?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이것은 저 인간 이야기지’
그러면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이야기라면, 동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12절 뒷부분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원죄에 있어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바울이 이렇게 아담 한 사람의 죄를 모든 사람의 죄로 보편화시키고 확대시킨 것은 성서적인 배경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아담’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철수’ ‘영희’처럼 고유명사로 해석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일반명사 ‘사람’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을 다루고 있는 본문 창세기 2-4장을 보면, 정관사 ‘하’를 붙어 ‘하 아담’ ‘그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것은 단순히 ‘철수 영희’처럼 ‘아담’ 그 한 사람의 불순종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불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바울이 결론이 ‘원죄에 있어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였습니다.
(참고로 아담이 ‘영희 철수’처럼 고유명사로 사용된 것은 창세기 5장 3절 이후부터입니다. 정관사 ‘하’가 빠지고 ‘철수’ ‘영희’처럼 고유명사로 쓰이게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죄에 대한 바울의 이어지는 설명입니다.
롬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율법이 없었던 시대
그 시대 율법을 어기지 않아도 아담의 죄가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
그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 할지라도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에게 사망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실자의 모형 아담 한사람이 행한 불순종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르는데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대한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롬5:15 그러나 이 은사(은혜의 선물)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오실 자의 모형(그림자) 아담
그 첫 사람, 그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원죄를 갖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②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의롭다 하심 곧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인 바울의 설명입니다.
(새)롬5: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모든 사람/5:12)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많은 사람/5:15)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5:12)과 많은 사람(5:15)의 차이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나타난 원죄 그리고 원죄로 말미암은 사망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타나는 의롭다 하심 곧 무죄 판결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많은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원죄를 설명하는 롬5:12에서는 ‘모든 사람’으로
죄 사함의 은혜를 설명하는 롬5:15절에서는 ‘많은 사람’으로 각각 다르게 나누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 크고 놀라운 은혜 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일까요?
첫째 원죄가 여전히 그 사람 속에서 왕 노릇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밀쳐놓고 원죄 속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아주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지요.
그래서 자기만 사랑하고, 이웃을 대할 때 ‘나는 나 너는 너’ 무정하고, 이기적이고 사나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이런 권면하고 있습니다.
(새)롬5: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그러니 ①하나님에게 돌아와서, ②죄가 왕 노릇 하게 하지 말고, ③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생명이 너희 안에서 왕 노릇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끝없는 구애에도 그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이들의 특징은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새)롬5: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번 더 강조)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유죄 판결이 기다리고 있는 불순종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의인으로 판정받아 생명을 얻게 되는 순종의 삶을 살 것인가?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이겠지요. 의인으로 인정받는 순종, 생명을 얻게 되는 순종
그 순종을 찬송가 449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1.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길 환하겠네
2.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겠네
3.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4. 우리 받은 것을 주께 다 드리면 우리 기쁨이 넘치겠네
5. 주를 힘입어서 말씀 잘 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말씀을 마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죄가 많은 곳에서 죄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선택할 것인가? 당연히 은혜지요.
그래서 바울이 이런 해답을 준 것입니다.
(새)롬5: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죄가 많은 곳(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이러한 간증이 우리 교회의 자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바울에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한 사람 아담 안에 거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것인가? 바울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새)롬5: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