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나를 가금(家禽)이라고 부른다. 집에서 기르는 조류라니. 모욕이다. 인간과 우리는 인간의 주장처럼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사육? 웃기지 마시라. 누가 누구에게 더 기대는지 따져보면 당신네 흰소리는 쑥 들어갈 것이다.
금계도(金鷄圖) :19세기 - 온양민속박물관
오동나무 아래 금계(金鷄) 한 쌍이 있고, 물 위의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 모습과 함께
영지와 산호, 괴석과 구름 등을 배치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丁酉年, 五德을 지닌 '닭의 해, 닭의 소망'
조선 후기 하달홍(河達弘,1809~1877)은 畜鷄說에서 漢詩外傳의 故事를 인용하여
닭은 머리에 관(볏)을 썼으니 문(文), 발톱으로 공격하는 무(武). 적을 보면 싸우니 용(勇),
먹는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 어김 없이 때를 맞춰 우니 신(信)이라 하였다.
즉 닭이 오덕을 지녔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의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는 그림과
생활용품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동물로서의 닭을 만나본다.
변상벽의 닭그림(卞相壁筆鷄圖): 17~18세기, 변상벽 작-국립중앙박물관
고양이를 잘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변상벽의 닭 그림이다. 닭은 먹을 것이 있으면 서로 불러
함께 먹는 동물로, 이를 닭의 오덕(五德) 중 인(仁)이라고 했다.
인간은 나를 가금(家禽)이라고 부른다. 집에서 기르는 조류라니. 모욕이다. 인간과 우리는 인간의 주장처럼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사육? 웃기지 마시라. 누가 누구에게 더 기대는지 따져보면 당신네 흰소리는 쑥 들어갈 것이다.
금계도(金鷄圖) :19세기 - 온양민속박물관
오동나무 아래 금계(金鷄) 한 쌍이 있고, 물 위의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 모습과 함께
영지와 산호, 괴석과 구름 등을 배치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우리를 먹는다. 날로, 삶아서, 쪄서, 볶아서, 데쳐서, 구워서, 튀겨서 먹는다. 어린 건 연하다고 먹고 늙은 건 쫄깃쫄깃하다고 먹는다(닭회의 역사는 유구하다. 공자가 즐겼다 하여 조선 사대부도 따라서 먹었다). 가리는 부위도 없다. 뼈는 푹 과서 육수를 내고, 똥집(모래주머니)은 잘게 잘라서 굽고, 발은 양념 발라서 찐다. 인간은 끔찍이도 우리를 좋아한다(인간의 계륵(鷄肋) 타령은 뜬금없다. 쓸모는 없는데 버리긴 아까운 게 닭갈비라고? 우리 갈비도 심장을 지킨다).
한국인 1명이 1년에 닭고기 15.4㎏을 먹는다(OECD 2014년). 우리가 잡아먹힐 때 평균 무게는 2㎏(수탉 2.4㎏, 암탉 1.9㎏)이다. 한국인 1명이 1년에 닭 예닐곱 마리를 먹어 치우는 셈이고, 한국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아도 1년에 닭 4억 마리를 잡는다는 뜻이다. 시도 때도 없다. 한여름엔 몸을 보해야 한다며 끓여 먹더니 요즘에는 “눈 오는 날엔 치맥”이 유행이란다.
쌍계도(雙鷄圖) ;1900년, 안중식 작 - 국립민속박물관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이 그린 '쌍계도'로, 벚나무와 바위를 배경으로 암수 한 쌍의 닭을 그렸다.
암탉은 웅크려 앉아 있고, 수탉은 암탉을 보호하는 듯 꼿꼿하고 용맹한 자태를 뿜어낸다.
계란은, 생각만 하면 목이 멘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올 때까지 어미는 품에서 알을 내려놓지 않는다. 동양화에서 모이 쪼는 우리 가족이 수시로 출연하는 건 우리가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란하게 사는 꼴이 그렇게 부러웠는가. 인간은 알을 낳기가 무섭게 집어 먹는다(한국인 1인 연 계란 소비량 254개, 암탉 1마리 연 산란개수 약 180개).
우리는 부화한 지 평균 35일 만에 죽는다. 다시 말해 고기가 된다(육계 기준. 산란계는 산란이 뜸해지는 18개월 전후에 죽인다). 그런데 아시는가? 우리의 자연수명은 10년이다. 16년을 살다 간 닭도 있다. 우리는 생애의 0.83%만 살고 죽임을 당한다. 요절도 이런 요절이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우리에게 미안한 기색이 없다. 당신들이 소·돼지의 무덤을 썼던 풍습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닭 무덤은 없다.
계명도(鷄鳴圖): 20세기 초 - 온양민속박물관
닭은 예로부터 새벽이면 어김 없이 때를 맞춰 우는 동물이자 여명을 밝히는
상서로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닭은 울음과 일출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야맹증 환자다. 깜깜하면 뵈는 것이 없다. 한밤에 닭서리 했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시라. 우리는 늘 속수무책이었다. 대신에 우리는 빛에 민감하다. 인간은 감지하지 못하는 빛을 우리는 눈과 피부로 알아챈다. 빛을 느낄 때 우리는 울음을 터뜨린다. 별 뜻은 없다. 동틀 녘 혈액 농도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생리현상이다.
오동계자도(梧桐鷄子圖) : 조선후기 - 국립민속박물관
오동나무 아래 수탉이 경계를 서고, 암탉이 병아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평화로운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다섯 마리의 병아리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오자등과(五子登科)"의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십이지 닭 신 미기라대장 : 1977, 만봉(萬奉1910-2006)작-국립민속박물관
십이지 신장(神將)은 불교의 약사여래(藥師如來,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를 모시는 장수로,
그 중의 세 번째인 미기라 대장(迷企羅, 범어 Mihira)은 닭의 모습이다.
닭 그림 문 : 20세기 초 - 미륵대도 강화선원 (강화關帝廟)
1904년에 중수(重修)된 강화 관제묘(關帝廟) 대문의 문짝이다. 윗부분에는 까치를, 아랫부분에는 수탉을 그렸다.
좌측 상단에 '시시장명복자래'(時時長鳴福自來, 때때로 길게 우니 복이 저절로 오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닭 모양 연적(鷄形硯滴) :19~20세기 -국립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닭 모양 연적으로,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수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볏과 꼬리, 날개에는 안료를 사용해 다채롭게 장식했다.
계이(鷄彛) : 19~20세기 - 국립고궁박물관
종묘 제례 때 쓰이는 제기(祭器)로, 닭이 새겨져 있다. 봉황이 새겨진
조이(鳥彛)와 짝을 이뤄 봄,여름 제사에 사용하였다. 닭 문양은 조상신의 영혼을 상징하며
조상신의 도움으로 천하가 평안하기를 염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수젓집 : 20세기 초 /(左)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右)경운박물관
수저를 넣어 보관하는 주머니로, 비단에 수를 놓았다.
그러나 시방 우리 신세는 처량하다 못해 참담하다. 산란계 양계장을 가본 적 있으신가. 산란계 대여섯 마리가 서너 뼘만한 닭장 안에서 산다. 산란계 한 마리에 부여된 면적은 A4 용지 한 장 꼴이다. 조류독감 사태 앞에서 인간은 계란 값을 걱정하지만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일생을 걱정한다. 이번 겨울 조류독감으로 2000만 마리가 넘는 닭이 죽었다. 우리가 없으면 누가 새벽을 여는가. 우리가 없어도 인간은 살 수 있는가.
다리미 : 20세기 초 - 충현박물관
숯을 넣는 몸통 앞 부분에 닭모양의 장식이 있다. '닭다리미'라고도 부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하늘을 나는 법을 잊어 버렸다. 인간이 던져주는 모이에 길들여져 가축으로만 살았다. 그러나 안일과 나태의 결말은 가혹했다. 이제는 아니다. 더 이상은 모이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홰를 박차고 비상할 것이다. 다시 새가 되어 창공을 제압할 것이다. 비로소 우리 해가 밝았다.
◆ 참고자료 =『한국의 재래닭』(이희훈) / ‘정유년 닭띠 학술 토론회 원고’(국립민속박물관)
명리학에선 입춘, 역학에선 동지가 새해 기준
「
계견사호 목판(鷄犬獅虎 木版)일부와 목판으로 찍은 닭 그림: 18~19세기로 추정- 삼성출판박물관
새해에 액을 쫓고 복을 빌면서 대문이나 벽장에 붙였던 닭, 개, 사자(해태), 호랑이 세화를 찍어내는 목판의 일부이다.
전통적으로 닭은 호랑이, 사자, 개와 마찬가지로 길상과 벽사(辟邪)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림= 국립민속박물관의 '정유년 새해를 맞다' 특별전시회에서 전시 중인 작품들
◆글 = 중앙일보 '세상 속으로(2016, 12, 31)에 실린 손민호 기자의 '닭의 해, 닭의 소망'
첫댓글 닭의 해 정유년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선생님,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ㅎㅎ
향남씨,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