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국·UAE의 ‘라피크’
안용현 논설위원[입력 2021.11.19 03:18]
한국이 개발한 요격미사일 체계인 '천궁-Ⅱ'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될 예정이다. 계약 규모는 4조원에 이른다. /연합뉴스
중동 국가 예멘의 ‘후티’ 반군이 2017년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을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짓고 있던 바카라 원전이었다. UAE는 ‘원전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이렇게 UAE의 주요 시설은 후티 반군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인 UAE와 사우디가 예멘 내전에서 ‘시아파’인 후티 반군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후티 뒤에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있다. 그런데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북한식 스커드 미사일을 본떠 만들어졌다. 북은 이란에 특수전·탱크 교관도 보냈다. 북·이란 군사 커넥션이 UAE의 안보 위협이다.
▶2009년 UAE 원전 건설은 사실상 프랑스가 따낸 상황이었다. 계약 날짜까지 정해졌다. 그런데 프랑스는 UAE 가상의 적국인 이란과도 관계가 깊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막판에 이 점을 파고들었다. ‘원전+안보 협력’을 UAE 실권자인 왕세제에게 직접 제안했다.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이란 군사 체계와 유사한 북한을 한국이 잘 안다고 설득했을 것이다. 파리 코앞에 갔던 UAE 원전이 서울로 고개를 돌렸다.
▶이듬해 방한한 왕세제가 우리 특전사의 대테러 훈련을 참관한 뒤 한국 국방장관에게 “이런 부대가 UAE군을 훈련시켜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특전사 150명으로 구성된 ‘아크 부대’가 UAE 특수전 학교로 파병됐다. 아크는 아랍어로 ‘형제’란 뜻이다. 그 무렵 UAE 왕실 경호원들도 청와대 경호실로 파견돼 훈련을 받았다. 파병 전 한국의 UAE 무기 수출은 5년간 393억원이었다. 파병 후엔 1조2000억원으로 30배 뛰었다.
▶UAE 국방부가 최근 “한국형 방공 체계인 ‘천궁2′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계약 규모는 129억디르함(약 4조1500억원)”이라고 했다. 우리 방위 산업 수출 역사상 최대 규모다. UAE는 이란이 이라크 미군 기지를 탄도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탄도미사일 방어에 부심해왔다. 그 적임으로 ‘천궁2′가 선택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UAE와 맺은 비공개 군사 협약을 ‘적폐 청산’한다면서 잘못 건드려 평지풍파를 만들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급히 날아가고 문 대통령이 왕세제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무마됐다. 자칫했으면 ‘천궁’ 수출도 없을 뻔했다. ‘라피크’라는 아랍어가 있다. 사막 건너는 먼 길을 함께할 동반자라는 뜻이다. UAE는 중동에서 유일한 우리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된 우물 안 개구리들이 어렵게 키워 온 ‘라피크’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