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재학생
‘디지털 레고’로 만든 캠퍼스, 진짜같은 200개 건물 빼곡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23호(2021.10.15)
재학생 안민규
블록쌓기 게임 ‘마인크래프트’ 속
관악캠퍼스 구현 프로젝트 주도
지리, 건축 전공 등 집단지성 발휘
안민규씨가 마인크래프트에 구현한 관악캠퍼스 풍경.
1. 정문 진입 후 보이는 미술관과 대운동장 사잇길 2. 사회대 건물 3. 자연대 강의실험연구동이 사진을 보는 듯 실제와 흡사하다.
2년 가까이 학교에 못 나온 ‘코로나 학번’ 재학생이 가상 공간에 관악캠퍼스를 구현했다.‘샤’ 모양 정문부터 학내 순환도로와 관악산 계곡, 공대 언덕까지 실제를 빼다 박았다. 안민규(전기정보공학 2년)씨가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BTS(Build The SNU)’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디지털 레고’로 불리는 마인크래프트에선 정육면체 블록을 쌓아 건물은 물론 나무와 강 같은 자연물, 전기 회로까지 무엇이든 만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게임 속에 학교와 관광지를 짓는 게 유행이다. 누적 판매 2억장,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속에 서울대라는 세계를 만든 안씨를 9월28일 학내 카페에서 만났다.
-건물만 200개가 넘는 대형 프로젝트다. 얼마나 진행됐나.
“8월부터 시작해서 20% 정도 만들었다. 건물들 터를 다 잡아놓고 정문 주변과 체육관, 사회대 구역을 먼저 완성했다. 기숙사 구역과 아랫 공대, 자연대 일부 건물도 지어놨다.”
-게임 속에 캠퍼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때문에 등교할 수 없던 게 아쉽던 차에 올해 초 캠퍼스를 어떻게든 구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제페토 등 여러 가상 플랫폼을 고려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했던 마인크래프트를 택했다. 자율성이 높아서 좋았고 고등학교 건물을 만들어본 경험도 있었다.”
-게임 내 기본 단위가 작은 블록 하나인데, 그 블록을 다 쌓아서 짓는 건가.
“하나하나 쌓을 수도 있지만, 건물의 기본 틀을 잡아주는 프로그램을 쓰고 창문이나 벽 같은 디테일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건물 하나에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여러 사람이 참여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만든 것 중 50~60%는 혼자, 나머지는 15명 정도가 함께 지었다. 에브리타임 (대학생 커뮤니티)에 ‘도와주실 분 와달라’고 올렸더니 많이 와주시더라. 건축 전공자도 있었다. 보통 익숙한 자기 학과 건물을 지으셔서 나는 사람들이 잘 짓지 않는 건물을 맡았다. 2학년인데 리더 아닌 리더가 돼서 부담되기도 했다.”
-학교에 못 나와서 캠퍼스가 낯설 텐데.
“인터넷 지도의 로드뷰와 3D맵, 위성사진을 참고해서 만든다. 정 자료가 없으면 프로젝트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인 오픈 카톡방에 물어본다. 140명 정도 있어서 금방 사진이 나온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인 미술관도 똑같이 만들었다.
“지금까지 만든 것 중 제일 힘들었다. 대각선도 많고(레고처럼 마인크래프트에서도 대각선을 구현하기가 어렵다), 중간에 깎여 있는 복잡한 구조여서 네모난 블록으로 만들기 쉽지 않았다.”
-4·19 기념탑은 화환과 기념비 글씨까지 꼼꼼하게 재현했다. 의미를 알고 있나.
“4·19혁명 때 선배님들 중에 돌아가신 분이 있다고 알고 있다. 최대한 모든 건물과 장소를 구현하는 게 목표기 때문에 사회대 쪽 만들 때 지었다. 기념비 뒤에 적힌 글씨는 찾아보고 적어놨다.”
-학교와 많이 친해졌겠다. 작업하면서 느낀 관악캠퍼스의 특징은.
“가장 중요한 건 산에 있다는 거다(웃음). 다른 학교라면 평지에 바로 지으면 되는데, 처음 한 달은 땅만 다졌다. 지리학과 분이 고도맵을 사용해서 게임 내에 지형 정보를 불러와 준 게 큰 도움이 됐다. 경사가 많다 보니 한쪽은 1층인데 반대쪽은 2층인 건물, 1.5층 구조가 많다. 또 학교에서 기부를 받으면 무조건 건물을 짓는 것 같다. 그래서 건물이 정말 많고, 할 일이 많다.”
-마음에 드는 점은 없나(웃음).
“(잠시 생각하더니) 캠퍼스가 커서 한눈에 보면 멋있고, 학교가 유명한 덕분에 (참고할) 자료가 많다.”
-지도 만들 때도 축척이 중요하다. 현실과 게임 속 비율 정하느라 고심했다고.
“시행착오 끝에 현실과 게임 속 건물 비율을 1 대 1.5로 맞췄다. 현실의 1미터가 게임 내 1.5블록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마인크래프트 속 캐릭터 크기가 블록 2개짜리다. 1m를 1블록으로 맞추면 2m 키로 건물을 보는 셈이라 현실성이 없고, 1 대 2로 하면 건물이 너무 거대해진다. 1 대 1.5로 맞췄더니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올려다보는 느낌이 났다.”
-가상 캠퍼스는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의 일환으로도 보인다.
“메타버스는 단순히 가상 공간에 재현만 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에서 하는 활동이 있고,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우리 프로젝트는 메타버스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거라 생각한다. 아직 건물 외부만 만들었는데 시간이 되면 내부를 완성하고 콘텐츠도 넣어보고 싶다. 학교 구석구석 탐방은 물론 전시를 하거나 술래잡기 같은 행사를 할 수도 있다. VR처럼 몰입도가 좋아지는 기술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
-가상 캠퍼스 연합도 있다던데.
“혼자 만들다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선례를 찾았다. 영남대가 이미 만들었기에 만나서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코로나를 계기로 마인크래프트에 캠퍼스를 만든 대학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됐다.”
-완성된 캠퍼스는 언제 볼 수 있을까. 랜드마크인 관정도서관도 아직 없다.
“관정도서관은 어려운 건물이라 아직 짓지 못했다. 지금은 학기 중이어서 속도가 더딘데 내년 2월까진 완성될 것 같다. 게임을 사야만 볼 수 있는 게 진입장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 중이다.”
-정문과 본관 잔디광장은 곧 바뀔 텐데.
“요즘 그게 제일 고민이다. 옛날 모습을 보존해서 추억을 되살릴지, 예상 도면을 보고 미래 캠퍼스를 미리 볼 수 있도록 할지. 프로젝트 구성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개인 비용도 들어가는지.
“한 달에 서버 운영비 4만원 정도다. 배달음식 몇 번 덜 먹고 미래에 투자하는 거라 생각한다.”
-관심 있는 분야는.
“코딩하는 걸 좋아하고, 영상에도 관심이 있다. ‘이미지 밴드’라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예능과 드라마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머릿속에 있는 걸 실제로 구현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길을 찾고 싶다.”
-가상 캠퍼스는 만들어도, 친구 만들기는 어려운 시절이다.
“프로젝트 발표나 시험 볼 때 나와서 친구들을 만나면 ‘네가 걔였구나’ 한다. 다같이 놀면 안 그럴 텐데, 비대면이라 건너건너 친해질 수밖에 없어서 슬프다. 겨우 친해졌는데 만나기도 전에 군대 간 친구도 있다.”
-‘진짜 캠퍼스’가 열리면 뭘 하고 싶나.
“과방(학과 자치공간)에서 과제하기. 자하연에서 ‘리딸라’(자하연 느티나무 카페 인기 음료 ‘리얼 딸기 라떼’) 먹으면서 놀고,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싶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