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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파리 떼에 사레가 들고 – 애기봉,수덕산
수덕산을 내리면서 바라본 월봉산
(수덕산) 정상에서 다리쉼하여 사위를 바라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우선 북으로는 수덕산의 모산인 화악산이 오른
쪽에 자리 잡은 응봉과 함께 M자 하늘금을 이룬다. 응봉에서 오른쪽으로는 촉대봉이 반기고, 동쪽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 너머 멀리로는 춘천 용화산과 홍천 가리산이 가물거린다. 계관산 오른쪽 뒤로는 삼악산과 검봉이 시야에 들
어온다. 서쪽 가평천 건너로 마주보이는 백둔봉과 명지산 풍광도 일품이다.
―― 월간 산, 주말산행코스 수덕산(2000년 1월호)
주) 수덕산 정상에서 보는 조망이 23년 전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사방이 온통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있어 아무
런 조망을 할 수가 없다.
▶ 산행일시 : 2023년 7월 29일(토), 맑음, 소낙비
▶ 산행인원 : 4명(악수, 아파치(진인근), 메아리, 하운)
▶ 산행코스 : 관청리,보건진료소,560.4m봉,주릉 1,044.3m봉,애기봉,932.9m봉,애기고개,738.8m봉,
767.3m봉,797.6m봉,수덕산,임도,소법지(달골소류지),소법리 손일 마을 아래
▶ 산행거리 : 도상 14.5km(임도와 도로 3.7km 포함)
▶ 산행시간 : 8시간 55분
▶ 갈 때 :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 타고 가평역에 가서, 택시 타고 관청리 보건진료소 앞으로 감
▶ 올 때 : 소법리 손일 마을 아래에서 택시 타고 가평터미널 근처 꿀꿀이네 음식점으로 와서, 저녁 먹고 사장님
승용차로 가평역에 와서 전철 타고 상봉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6 : 53 – 상봉역
07 : 46 – 가평역
08 : 25 – 관청리 보건진료소 앞, 산행시작
09 : 10 – 560.4m봉 아래, 휴식( ~ 09 : 20)
10 : 55 – 화악산 남쪽 주릉 1,044.3m봉
11 : 10 – 애기봉(△1,054.9m)
11 : 45 – 932.9m봉
11 : 55 – 애기고개 840m 전, 점심( ~ 12 : 30)
12 : 50 – 애기고개, 헬기장
13 : 40 – 738.8m봉
13 : 58 - 763.3m봉
14 : 50 – 수덕산(修德山, △793.7m)
15 : 31 – Y자 갈림길, 왼쪽은 막골 버스정류장 2.8km, 오른쪽은 상가둘기 버스정류장 3.7km
16 : 10 – 임도, 소법천
17 : 20 – 소법리 손일 마을 아래 삼거리, 산행종료
2.1. 산행지도(애기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일동, 춘천 1/25,000)
2.2. 산행지도(수덕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춘천 1/25,000)
▶ 애기봉(△1,054.9m)
“만상을 변화시켜 많지 않는 시간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바에, 흘러간 시간을 애달프게 뉘
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다. 역시 오늘을 열심히 살 일이다. 열심히 사는 오늘만이 과거와 손을 씻고 미래와 손을
마주 잡게 해주기 때문이다. (…) 나는 그래서 주말에 산에 가는 기쁨을 위하여 느슨하게 오늘을 보내지 못한다.
오늘 나를 바쁘게 굴리는 속에 내일 만날 기쁨을 앞당겨 맛보는 또 하나의 기쁨을 더하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들이
설날에 맛보는 기쁨이 오히려 까치설의 그것만 못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리듯, 설령 내일의 기쁨이 기대에
어긋날지라도 내게는 분명히 거기 앞서 챙겨 가졌던 오늘의 기쁨만이 확실한 내 것으로 하게 되니 말이다. 산에
가는 일,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산악인이자 작가인 김장호(金長好, 1929~1999)의 에세이 집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1995) 중의 ‘산에
가는 기쁨’에 나오는 대목이다. 확실히 그러하다. 나는 주말에 산에 갈 일을 생각하면 주초부터 즐겁다. 일주일은
하루를 위해 살고, 하루는 일주일을 위해 산다. 일주일에 하루는 산에 가는 날이다. 그리고 산에 가기 전에 미리
틈틈이 도상(圖上)으로 가 본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관청리 보건진료소 앞에서 산행 준비하는 우리를 본 트럭운전사가 언덕바지를 오르다 말고 트럭을 멈추고서, 이쪽
에는 등산로가 없다고 알려준다. 알겠습니다 답변했으나 내심으로는 우리가 가는 데가 곧 길입니다 하고 말했다.
일부러 농가 멀찍이 비켜 오른쪽 잣나무 숲을 겨냥하고 산기슭 풀숲을 헤친다. 화악산에 덕순이가 산다는 업계의
보고를 여태 들은바 없는 터에 이에 반박하듯이 메대장님이 풀숲을 누벼 찾아낸다. 수대로 그 분내를 맡아본다.
코가 맵도록 향긋하다.
그 트럭운전사 말씀이 맞았다. 너른 잣나무 숲은 인적에 관계없이 수월하게 지났으나 그 다음은 울창한 잡목 숲이
다. 양팔로 잡목 숲 헤치다 팔심이 부치면 눈 딱 감고 저돌적(豬突的)으로 덤빈다. 미역줄나무 덩굴이 엄청 사납다.
더러 튕겨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옆을 새로이 뚫는다. 소나무도 믿을 것이 못 된다. 낮게 드리운 하수지(下垂
枝)가 너무 많아 납작 엎드려 지나야 한다. 엉겁결에 붙드느니 두릅나무고 산초나무다. 그 날선 가시에 찔리고 속속
아려온다. 땀은 눈 못 뜨게 흐른다.
참으로 어렵사리 능선 붙든다. 인적은 없다. 우리가 인적을 만든다. 가파르고 길게 오르다 잠깐 내리고 다시 오르기
를 반복하여 고도를 높인다. 560.4m봉이 제법 당찬 첨봉이다. 그 오르막 가파름이 잠시 수그러든 틈을 타서 휴식한
다. 오늘 처음 함께 오신 진인근 님과 인사한다. 나와 갑장이다. 메대장님이 사는 아파트 바로 아래층에 사신다고 한
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고수이시다. 1년 365일 중 300일을 산행하기 십 수 년이라 하시니 여러 말이 군말이다.
암벽도 하시나요? 등산학교 암벽과정 강사도 했습니다. 별명은 아파치, 날다람쥐 등 여러 가지라고 한다.
3. 접시껄껄이그물버섯, 식용버섯이라고 하는데 선뜻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4. 애기봉 가는 길, 내내 가파르고 하늘 가린 숲속이다.
5. 560.4m봉 가파른 오르막이 잠시 수그러든 틈을 타서 휴식한다. 메아리 님과 하운 님
6. 애기봉 가는 길
7. 접시껄껄이그물버섯 삼형제
8. 말나리(Lilium distichum Nakai ex Kamib.)
백합과 여러해살이풀이다.
일본명은 조센구르마유리(チョウセンクルマユリ, 朝鮮車百合)이다.
9. 동자꽃(Lychnis cognata Maxim.)
석죽과 여러해살이풀이다.
일본명은 마츠모토센노우(マツモトセンノウ, 松本仙翁)이다. 우리나라는 동자(童子)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선옹(仙翁)이라고 한다.
10. 도깨비부채 풀숲을 지나 애기봉 가는 길
도깨비부채(Rodgersia podophylla A.Gray)도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하였다.
일본명은 야구루마소우(ヤグルマソウ, 矢車草)이다
11. 이질풀(Geranium thunbergii Siebold ex Lindl. & Paxton)
쥐손이풀과 여러해살이풀이다.
12. 애기봉 정상에서, 아파치 님과 메아리, 하운 님
그러니 바위 나오면 무턱대고 아파치 님 뒤를 쫓을 일이 아니다. 아파치 님은 앞장서되 냅다 빼는 게 아니라 경쾌한
발걸음으로(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뒷사람의 속도를 감안하여 나아간다. 그런데 실은 이게 뒤따르는 사람에
게는 더 힘들다. 보이지 않으면 내 걸음으로 가고 해찰도 부리는데, 일정한 속도와 거리를 계속 유지하자니 내가 녹
아난다. 후덥지근한 날이다. 바람 한 점 없다. 가도 가도 하늘 가린 숲속에 갇힌 꼴이라서 더 덮다.
울창한 잡목 숲을 벗어났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하루살이, 모기와 날파리 떼가 너희들 잘 만났다고 덤벼든다. 배
낭 좀 벗어놓고 쉬자 해도 이들 등쌀에 일어나기가 바쁘다. 에프 킬라가 별무소용이다. 아무리 숨이 가빠도 입 벌려
큰 숨 한 번 쉬기가 무척 조심스럽다. 아차하면 날파리가 떼로 덤벼들어 목젖까지 건드리는 통에 생 눈물을 한 바가
지나 쏟는 사레들기 일쑤다. 마침내 화악산 남릉 주릉 오른다. 지도에는1,044.3m봉이다.
내쳐 오른쪽으로 방향 틀어 애기봉을 향한다. 암릉이다. 잘난 길 따라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간다. 애기봉. 가평군에
서 오석의 단정한 정상 표지석을 설치했다. 풀숲에 묻힌 삼각점은 춘천 301, 2005 재설‘이다.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다. 월간 산 1998년 9월호에 소개한 애기봉이 빈말 같다. 실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애기봉)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제법 웅장하다. 우선 북쪽으로는 애기봉 모산인 화악산이 중봉을 거느린 채
하늘금을 이룬다. 화악산에서 오른쪽으로는 강원도 화천 땅으로 넘는 실운현 고갯길이 실낱처럼 보이고, 그 오른쪽
으로 응봉과 촛대봉이 손에 잡힐 듯 마주 보인다. 실운현 아래로는 화악산과 응봉 정상에서 움푹 패어져 내린 오림
계곡과 산림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몽덕산 북배산 계관산 아래로 평화로운 화악리 분지가 펼쳐지는 풍광도 일품이다. 남쪽으로는 수덕산으로
달아나는 산릉과 구나무산 뒤로 양평 용문산이 가물거리고, 서쪽으로는 깊은 협곡을 이룬 가평천 건너로 명지산이
마주 보인다. 명지산에서 오른쪽으로 차돌박이산 언니통봉 능선 위로 강씨봉 개이빨산 국망봉 도마치봉 등이 일렁
이는 파도처럼 시야에 와 닿는다.”
13. 애기고개 가는 길
15.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촉대봉
16. 멀리 왼쪽이 가덕산
17. 실운현과 응봉
18. 애기고개, 임도도 고갯마루 헬기장도 풀숲이 우거졌다
19. 애기고개에서 바라본 가덕산과 북배산(오른쪽)
20. 촉대봉
21. 응봉
22. 원추리(Hemerocallis fulva (L.) L.)
백합과 여러해살이풀이다.
일본명은 혼칸조(ホンカンゾウ, 本萱草)이다.
시름을 잊게 해준다는 중국의 고사로 인하여 훤초(萱草), 또는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봄의 대표적
인 맛있는 산나물의 하나였는데 이때는 `넓나물`, `넘나물`이라고 따로 이름이 주어져 있었다.
23. 단풍나무
24. 백둔봉과 명지산
25. 백둔봉
▶ 수덕산(修德山, △793.7m)
울창한 숲속의 연속이다. 화악산 남릉 주릉이지만 등산객들이 그리 자주 다녀간 것 않다. 잡목 숲 헤치며 내린다.
조망처는 애기봉 정상에서 20분 내린 등로 옆 전망바위에서다. 연무가 짙기도 하지만 실운현에서 응봉, 촉대봉과 그
너머로 가덕산과 북배산이 흐릿할 뿐이다. 이정표에 애기고개를 840m 남은 지점 공터에서 점심자리 편다. 아파치
님은 행동식인 떡이다. 나와 메대장님, 하운 님은 고봉밥이다. 여기도 날파리 떼가 극성이다. 그들을 위해 별도로
상을 차려주어도 거들떠보지 않고 우리 상으로만 몰려든다.
날파리 떼가 몰려드는 등쌀이 밥맛 모르고 먹는다. 풀숲 길을 발로 더듬어 길게 내려 애기고개다. 바닥 친 안부이기
도 하다. 임도와 너른 헬기장은 풀숲에 묻혔다. 수덕산 가는 길 또한 잡목 숲에 가렸다. 엎드려 뚫는다. 애기봉의 위
수지역을 벗어났다. 산을 다시 간다. 681m봉이 첨봉이다. 흘릴 땀이 아직도 남았는가 싶게 쏟는다. 이다음 738.8m
봉을 시작으로 수덕산에 이르는 도중의 연봉들이 암봉이다. 이정표는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어가기를 안내한다.
직등한 인적은 없다. 고분고분 이정표 따른다. 그러다 주릉에 올라서면 넘어온 암봉이 조망이 트일까 궁금하여 뒤돌
아 오르곤 한다. 번번이 허탕이다. 767.3m봉 넘고 완만한 봉봉을 넘어 수덕산 정상이다. 좁다란 헬기장이다. 삼각
점은 ‘춘천 315, 2005 재설’이다. 수덕산도 사방에 키 큰 나무숲에 가려 조망이 무망이다. 수덕산의 지명유래에 대한
국토정보플렛폼의 설명이다.
“일명 수섭산이라고도 불리며 산의 정상에는 신선바위와 대원사(大願寺)가 있다. 대원사에서 고승이 도(道)와 덕
(德)을 닦았다고 하여 수덕산(修德山)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문헌에서 수덕산에 관한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1973년 이전 화전이 널리 퍼져 있었으나 현재 조림사업을 통해 잣나무와 낙엽송이 우거져 있다.”
수덕산 정상의 좁은 헬기장은 땡볕이 가득하여 그 아래 숲속 그늘에서 휴식한다. 이정표는 갈림길마다 상가둘기와
막골 버스정류장을 안내하는데 우리는 알탕 또한 중한지라 그럴 듯한 계곡을 찾아 그 동쪽 지능선을 내려 달골 아래
로 내리기로 한다. 우리가 지능선을 개척하는 줄 알았는데 선답이 있었다. 암릉도 나온다. 살금살금 내린다. 갑자기
다. 장대비가 쏟아진다. 차라리 시원하다. 얼굴 들어 샤워한다. 장대비는 20분 정도 퍼붓는다.
가파른 흙길은 미끄럽다. 빗물과 함께 구르다 자세 고쳐 미끄럼타고 내린다. 이윽고 지능선이 맥을 놓고 계곡으로
떨어진다. 임도와 만난다. 풀숲이 무성하다. 풀숲 헤치다 팔과 다리가 쐐기에 쏘인다. 어디서 땀을 씻을까 연신 계곡
을 들여다보며 내린다. 계류는 누런 흙탕물이다. 방금 전의 장대비로 임도의 황토가 쓸려 들어갔다. 머드팩도 다투
어 할진대 흙탕물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든다. 어쩌다 계류를 들여 마셨는지 입안이 모래 씹는 것 같이 서걱거린다.
소법천 임도에 이어 농로를 내린다. 오늘 산행의 가장 난코스다. 3.7km. 장대비가 멎으니 시원하기는커녕 더 후덥
지근하다. 사우나탕에 찬물을 잠깐 뿌린 격이다. 농로는 그야말로 불볕이다. 이대로 목동터미널까지 걷기는 무리다.
행정안전부에서는 휴대폰에 수시로 문자메시지 날려 폭염이 대단하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했다. 목동 택시 부른
다. 운이 좋았다. 목동에 택시가 3대 있다는데 금방 온다. 목동터미널이 아닌 아예 가평터미널로 가자고 한다.
26. 수덕산 정상 주변
27. 수덕산 정상에서, 메아리 님과 하운 님
28. 수덕산 정상에서, 키 큰 나무숲이 빙 둘러 있어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다.
29. 수덕산 내리면서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월봉산
30. 으아리(Clematis mandshurica Rupr.)
미나리아재빗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이다.
32. 소법천(所法川)
33. 자귀나무(Albizia julibrissin Durazz.)
일본명은 네무노키(ネムノキ, 合歓木)이다.
34. 부용화
35. 무궁화
36. 소법리에서 바라본 계관산
잠 못 드는 밤이다. 오늘 산행 중 전례 없이 모기에 물리고, 쐐기와 독나방에 쏘이고 풀독까지 올라 온몸이 가렵다.
밤이 길기도 하다.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1952~2023)의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2023.6)를 본다. 나와 동
년배이기도 하여 세계적인 영화 음악가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의 소개다. “2020
년 암의 재발과 전이로 인해 치료를 받더라도 5년 이상 생존율은 50퍼센트라는 진단을 받고서 시간의 유한함에
직면하게 된 그가 삶의 마지막 고비에서 되돌아본 인생과 예술, 우정과 사랑, 자연과 철학,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
오래도록 기억될 그의 음악과 싶은 사유에 관한 기록이다.”
그가 병원에 있을 때 미국 컨트리 가수인 로이 클라크(Roy Clark, 1933~2018)의 ‘예전에 내가 젊었을 때
(Yesterday, When I was young)’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몇 소절이 지나지 않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더라고 했
다. 그래서 나도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찾아 들어보았다. 로이 클라크의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회한을 얘기하는
듯한 곡조는 가사 그대로였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나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가사 전문
을 소개한다. 내 경우를 얘기하는 것 같다.
예전에 내가 젊었을 때(Yesterday When I Was Young)
내가 겪었던 사랑들은
언제나 낭패만 겪었던 어설픈 삶
나는 자꾸 나이만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Seem the love I’ve known has always been
The most destructive kind
Guess that’s why now
I feel so old before my time
내가 젊었을 때
인생이란 내 혀끝에 닿은 빗물처럼
달콤하기만 했었는데
어리석은 장난처럼 애태웠던 추억만이
밤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같이 아롱거립니다
Yesterday, when I was young
The taste of life was sweet
Like rain upon my tongue
I teased at life as if
It were a foolish game
The way an evening breeze
Would tease a candle flame
셀 수 없이 많은 꿈을 꾸었고
장대한 계획을 세웠었건만, 어쩌랴,
흐르는 모래처럼 나약하게 되었을 뿐
한낮의 밝은 빛을 멀리하고 환락의 밤만을 위해 살던 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세월만 덧없이 흘렀습니다
The thousand dreams I dreamed
The splendid things I planned I always built, alas,
on weak and shifting sand
I lived by night and shunned the naked light of day
And only now I see how the years ran away
예전에 내가 젊었을 때
그때는 끝도 없이 마시며 노래하며 즐겼고
오직 환락만이 인생의 전부라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 현혹된 눈으론 차마
볼 수 없는 고통만이 남았습니다.
Yesterday, When I Was Young
So many happy songs were waiting to be sung
So many way-ward pleasures lay in store for me
And so much pain my dazzled eyes refused to see
시절과 젊음은 결국 그렇게도 빨리 보내버렸으니
인생이 그런 것이란 생각을 떨칠 줄 모르고
이제 와서 되불러 보려 온갖 몸부림을 쳐보지만
결국은 나 자신 뿐, 아무도 남는 건 없습니다
I ran so fast that time and youth at last ran out
I never stopped to think what life was all about
And every conversation I can now recall
Concerned itself with me, and nothing else at all
지난날 푸른 달빛을 따라
유흥으로 지새던 날들이 내게는 새로움도 가져왔지만
지금 생각하니 꿈만 같았던 내 지난 인생이
낭비와 무의미한 공허의 피안을 맴돌고 있을 뿐
Yesterday the moon was blue
And every crazy day brought something new to do
I used my magic age as if it were a and
And never saw the waste and emptiness beyond
사랑놀이에만 정신이 팔렸고
오만하고 자만심으로 거드름 피우던
열정은 아주 빨리 시들었습니다
사귀던 친구들도 다 떠나고
막 내린 무대에 홀로 남은 쓸쓸함만 남았습니다
The game of love I played
With arrogance and pride and
every flame I lit too quickly, quickly died
The friends I made all seemed somehow to drift away
And only I left on stage to end the way
수많은 노래가 있지만 부를 수 없고
혀끝에 떨어지는 눈물은 이제 쓰디쓰게만 느껴집니다
나에게 지금은 지난 젊은 시절을 보상해야 할 시간입니다
There are so many songs in me that won’t be sung
I feel the bitter taste of tears upon my tongue
The time has come for me to pay for
Yesterday, When I Was Young
첫댓글 더운데 고생많으셨습니다.
"예전에 내가 젊었을 때(Yesterday, When I Was Young)", 이 노래 정말 좋아요.
가사보다도 곡조와 로이 클라크의 목소리가 눈물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백작 님이 눈물 흘리시려면 아직 멀었지요.ㅋㅋ
한때 김장호 시인의 글을 읽으며 도상 산행을 자주 해보았었는데 요즈음은 악수님의 글을 보며 자주 도상 등산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실지 산행이 훨씬 더 즐거우신지 잘 아실 테지요. 하여간에 쉬운 산행은 없습니다.^^
지역경제에 이바지 마니 잘 하셨구요
년중 300번 가시는 그런분과는 상종을 마시길ㅋ 만수무강에 지장이 됩니다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캐이 님도 같은 과이시던데.ㅋㅋ
@악수 천만에요
저를 매도 마시길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