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철호 요한 신부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신명기 26,16-19 마태오 5,43-48
제1독서에서 모세는 백성에게 주님의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명령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를 지키면 주님께서
그들의 하느님이 되시고, 그들은 주님 소유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 모두가 당신 계명을 충실히 지켜 살면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고자 창조된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주님의 참된 규정과 계명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지켜야 할 계명은
구약 성경에 담겨 있는 문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를 통하여 무엇이 진정한 아버지의 뜻인지 알려 주시는데,
오늘 복음도 그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여야 참으로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그렇게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에게도 해가 떠오르게 하시는 분이시며,
당신을 저버리는 불의한 이들에게도 비를 내려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물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원수가 죄를 짓도록 내버려 두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원수라 하더라도 다시금 하느님께 돌아선다면,
그를 기꺼이 맞이하라는,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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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신명기 26,16-19 마태오 5,43-48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스라엘 백성의 두 가지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그분의 율법 준수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의 여정이 끝날 무렵에 모압 평야 너머로 펼쳐지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부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기 6장 4절-6절) 1)
모세는 하느님의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혹시나 잊을까 다시 마음에 새겨 두라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집에서나 나가서나 잊지 않도록 반복해서 들려 줄 뿐만 아니라
손에 표징으로 묶고, 또 이마에 표지로 붙이고 그리고 문설주에 써 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어서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법을 성실하게 지킬 것을 아울러 당부합니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신명기 26장 16절) 2)
이스라엘은 자기 동포를 중심으로 하는 결속은 대단합니다.
그 진가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나타납니다. 이미 가나안에 사는 타 민족을 적으로
여겼고 정복하는대로 가축들과 함께 가차없이 죽여 버립니다.
후에 역사를 거듭해오면서 이 국수주의 사상이 바빌론, 아시리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점점 동포애로 발전하여 증대한 적대감으로 지배 제국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을
‘원수’로 확대했던 것입니다.
당시 지배자 로마제국은 얼핏 보아서는 이스라엘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 같아도
태양신을 바탕으로하는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정치적으로도 수모상태인데 종교적으로도 박해를 받는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억압과 박해를 받는 동포를 사랑하고 로마를 포함한 이방인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갖는 것을 당연시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와 관련된 옛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마태오 복음 5장 43절)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오해를 받으실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오 복음 5장 44절)
이 한마디 말씀은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이웃 사랑에 대해 일침을 놓으십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오 복음 5장 46절-47절)
왜 세리를 들어서 말씀하셨을까요? 세리는 자기 공무원인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로마 뿐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잘 해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며 ‘매국노’라는 딱지가 붙기는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말씀이 꼭 이스라엘의 그 상황만 바라보시며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원수’라는 뜻에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그 뜻을 너 넓혀 가다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일 하는데, 반대하거나 훼방을 놓은 사람이라면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당신께서 복음 선포하시는 일에 간섭하고 반대하는 세력일 수도 있습니다.
크게는 종교지도자들도 있고 하느님 신앙에 박해를 하는 로마 인들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해석대로 그 뜻을 넓혀 가다보면 방해도 되지만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수의 반대는 나와 깊게 관련된 동포, 가족, 친지들과 포함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거기에는 세상 인심도 한 몫을 합니다.
자신에게 이롭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호의적인 것이 일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유교의 영향이 깊은 우리이다 보니 자신이나 식구들 챙기는 것에는 유별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다 법에 걸려
재판에 붙여지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태양과 비에 비유하십니다.
태양은 악인이나 선인에게 똑 같이 햇볕을 비추고, 마찬가지로 비도 누구에게나 골고루
뿌려주는 이치를 들어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오 복음 5장 45절)
주시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평등하게 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하느님을 본 받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 복음 5장 48절)
하느님 외에 사람이 완전할 수 있을까요? 결점이 없는 완전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통하여 너그럽고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하며 노력하는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완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본 받아 ‘완전함으로 나가는 사람’,
지금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함에 일치하려고 사람‘
’지금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완성된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완성으로 나아가려고 애쓰고 기도하며
희망을 가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사람이 되라.‘ 그리고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후원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사막에서 하느님께 반역하고 불순명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참아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불평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를 참아주시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기를 원하시며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듯이
부활하시어 하느님 오른 편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사랑의 묘약’이라고 할까요? 변하기 쉬운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을 죽음과 죄와 한결 같지 못하는 우리를 아름다운 삶으로 이끄십니다.
한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에 함께 했던 봉봉사중창단의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
노래가 생각납니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아무리 못생긴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사랑을 하면은 꽃이 피네 사랑을 하면은 꽃이 피네
아무리 호박꽃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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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의 마음을 다해서(ḇə·ḵāl-lə·ḇā·ḇə·ḵā)’,
‘그리고 너의 온 영혼을 다해서 ū·ḇə·ḵāl-nap̄·šə·ḵā)’,
‘그리고 너의 온 힘을 다해서(ū·ḇə·ḵāl. 너의 영혼을 다해서 nap̄·šə·ḵā mə·’ō·ḏe·ḵā)‘,
너의 야훼 하느님)’ 사랑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 영혼, 그리고 힘을 구분할 수 없는데 세 번 표현하는 것은
최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갔어도 변하지 않고 하느님을 사랑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2)
모세는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이 규정(ha·ḥuq·qîm)’과 ‘이 법규들ham·miš·pā·ṭîm’을 전한다.
그는 이어서 하느님을 “‘온 마음’, ‘온 영혼’,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신명기 6장 5절)
라고 표현대로 다시 ‘온 마음을 다해 (bə·ḵāl lə·ḇā·ḇə·ḵā)’,
‘그리고 온 영혼을 다해ū·ḇə·ḵāl nap̄·še·ḵā)’,
‘그것들(규정과 법규)들을 명심하여 실천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보면 ‘하느님’ 자리에 규정과 규범들이 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들의 가치와 구원관을 율법실천 쪽으로만 나가서 결국 ‘율법주의자’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율법적인 하느님 사랑과 율법의 정신을 회복하시려 했다.
신명기 신학에서 보여주는 하느님 사랑은 소외된 이들을 두둔하시는 데에서 드러나신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율법정신을 회복하시려 했으나
굳어버린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의 벽이 너무 두꺼웠다.
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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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준 롯젤로 신부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신명기 26,16-19 마태오 5,43-48
내 사랑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요?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마태오 복음 5장 43-48절)
허물어야 할 사랑의 경계
보편적 인류애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도 남의 자녀보다는 내 자녀를 위해 조금 더 많은
헌신을 할 것입니다. 이는 반려동물 같은 생명체나 집과 자동차 같은 물건에도 적용됩니다.
내 강아지가 더 소중하고 내 자동차가 더 귀한 법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나’라는 경계, ‘내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 넘지 못할 경계 때문에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형제들에게만 인사합니다.
만약 이런 경계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적용하신다면 나는 하느님께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야말로 그분의 사랑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그 덕에 비록 죄 앞에 쓰러지고 유혹 앞에 흔들리는 나도 햇볕을 쬐고 비를 맞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만든 모든 경계를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완전하신 아버지처럼 되는 길은 너무나 멀고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꼭 가야하는 길이지요.
그 길에 참행복이 있으니 말입니다.
대구대교구 여한준 롯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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