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숱이 줄면서 생긴 일들
머리가 벗겨지고 있다.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내게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올해로 75세가 되시지만 머리카락은 여전히 빽빽하다. 30년 전에 항암치료를 받으셨을 때도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내 머리가 점점 가벼워진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쯤,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다. 그의 모습이 바로 나의 운명인 것일까. 기와가 다 떨어진 지붕같이 머리카락이 떨어져 버린 나의 머리.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이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모발이 없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전에 이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과정이나마 점진적이었다면 지금처럼 겁에 질리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니 지난주 친구의 여자 친구가 술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공장소에서 누군가 나의 새로운 모습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나의 친구는 외국인이고 친구의 여자 친구는 한국인이다. 내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숱이 매우 적고 남은 모발마저도 성성하다. 그 자리에는 숱이 많고 미용실에 자주 가지 않는 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그를 보며 우리에게 숱을 좀 나눠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웃으며 계속 술을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였겠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 굳이 대머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줘야 했을까? 주말 내내 나는 그 말을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고 소심한 복수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타입은 아니다. 살이 많이 쪘다. 나이보다 많이 늙어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친구의 여자 친구는 솔직한 거고 나는 위선자일까? 그렇지 않다.
외모에 대한 언급은 한국 사람에게 관심의 표현이자 관계를 맺는 방식이라는 내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다소 어색하고 작은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보인다. 콜롬비아에서도 누군가 나에게 이런 농담을 했을까? 아마 그랬을 수도 있지만, 거기선 외모에 그렇게 집착하는 분위기가 아니므로 나도 다른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대머리 얘기로 돌아가서, 여느 나라처럼 콜롬비아에도 대머리인 배우들이 많다. 하물며 할리우드 같은 곳에도 수도 없이 많다. 개중에는 대스타이면서 존경을 받는 유명인도 많다. 내가 본 한국의 주연급 배우들은 대체로 머리카락이 수북하다. 요즘 등장하는 배우 중 머리가 벗겨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보통 머리를 심겠지만 예전에는 가발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발, 특히 천연 모발로 만든 가발은 나를 두렵게 한다.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쓰기 때문일까. 휴대전화나 자동차, 텔레비전 수출의 강대국이 되기 전 한국은 주요 가발 수출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저하게 된다. 친구의 여자 친구가 한 말 때문에 머리를 심어 볼까도 고민해 봤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발을 쓴다는 게 우습다고 생각했다. 내 콜롬비아 친구 중 가장 친한 친구 둘은 이미 예전부터 대머리가 되었고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니, 나처럼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도 그저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
나의 친동생은 약용 식물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생은 나에게 로즈메리를 달여서 이틀에 한 번 머리에 발라 보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 로즈메리를 달여서 쓰지 않으면 효능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로즈메리를 머리에 바른 첫날, 외부에 일이 있어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머리카락에서 로즈메리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부터 나는 그 냄새에 집착하게 됐다. 다른 약초처럼 고약하진 않지만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아내가 나를 진정시키며 나 외에는 아무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상한 냄새를 풍기느니 차라리 대머리가 되는 게 낫다는 아내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길 빈다. 어쩌면, 이제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리고서 품위 있게 패배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젊지 않다고. 삭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대 때 반항의 의미로 머리를 밀었고, 서른 살에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 삭발한 적이 있다. 그때 최저임금으로 6개월을 살았는데, 머리를 깎으면 미용실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한국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이상한 세력들이 나를 괴롭히는 걸 느끼면서도 맞서 싸울 용기가 나지 않는다. 대머리가 된 채 거리에 나가는 것도 겁이 난다.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평생 이걸 견디는 걸까.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