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하여 칠레 산티아고와 페루 리마를 거쳐 쿠스코에 도착하니 다음날 아침 07:00다. 일정을 짧게 잡느라 비행기를 세번 갈아탔다. 리마 공항에서 쿠스코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4시간(00:30~05:00) 동안은 공항안이 냉방이 너무 잘 되어서 으스스한 한기를 느낀다. 여름 반팔 티셔츠만 입었으니... 아르마스 광장 근처 호스텔에 여장을 푼다. 잉카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풍의 옛날씩 건물이다.
잉카 제국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도시 쿠스코(Cusco), 케츄아어로 배꼽(또는 중앙)을 의미하는 꾸스코는 3,400m의 안데스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 인구 26만 명의 도시로 잉카문명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남미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이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신이 자신의 아들과 딸을 티티카카 호수에 내려보내며 황금 지팡이가 꽂히는 곳에 정착하라고 하는데 그들이 쿠스코에 지팡이를 박고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쿠스코의 건물들은 스페인풍의 건물등이 주류를 이루는데 잉카를 정복할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의 건물들은 무너뜨리고 그 기초석 위에다가 스페인식의 건물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건물의 밑부분은 잉카시대의 것들이다. 잉카시대의 건물들은 일반사람들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데 돌을 쌓은 모양을 살펴보면 잉카의 벽돌들은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1533년 피사로를 비롯한 에스파냐인들에게 정복되었으나, 번영의 절정기를 맞이하였던 당시의 쿠스코는 정연한 시가지, 아름다운 건물, 거대한 신전 등으로 정복자를 놀라게 하였다. 잉카인들은 하늘은 독수리,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반영하듯 꾸스꼬는 도시 전체가 퓨마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머리부분에는 삭사이와만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 보면 한때 1백만명이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잉카의 자손인 인디오이다.
"잉카"는 케추아어로 "태양의 아들"이란 뜻이다. 아득히 먼 옛날 유럽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기 오래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은 아메리칸 원주민이 살던 땅이었다. 그들은 독자적인 문명 사회를 구축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명을 존중하면서 살아왔다.
잉카제국 이전에도 많은 문명들이 존재했으나 그들 문명과 잉카제국은
아르마스 광장 정면 중앙에 위치한 대성당(Cathedral)은 잉카 제국의 '바라코챠'신전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이 성당 지붕에는 40km 떨어진 곳에서도 소리가 들리는 1659년에 제작된 남미에서 가장 큰 종이 있다. 대성당안에는 지진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갈색 살색의 예수상이 모셔져있다. 라꼼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잉카 제국의 11대 황제 '와이나키팟쿠' 궁전 터에 세워진것이다. 지금 교회는 1650년대 대지진후에 재건, 쿠스코의 화가 마르코스 사파타가 그린 훌륭한 벽화와 멋진 제단이 유명하다
-태양의 축제가 열리는 삭사이만-
잉카 인의 세계관은 우주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다. 하늘은 독수리가, 지상은 퓨마가, 지하는 뱀이 제각각 상징물이다. 쿠스코가 지구의 중심이기에 이 도시를 퓨마로, 그리고 '삭사이와만'은 퓨마의 머리에 해당된다고 믿었다. 이 같은 세계관에 따라 유적 뒤쪽의 커다란 자연석 아래에는 쿠스코 중심인 대성당에 이르는 미로가 연결됐다고 여겼다. 석 벽 앞에는 넓은 잔디밭을 조성했고, 이곳에서는 매년 6월 24일 '태양의 축제(Inti Raimi)'가 열려 잉카시대 의식을 재현한다. 이 축제는 브라질 '리오 카니발'과 볼리비아의 '오르로'와 함께 남미대륙 3대 축제행사의 하나로 꼽힌다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이라"는 뜻을 지닌 삭사이와만, 푸마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삭사이와만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방어하는 성으로 만든 요새이다. 삭사이와만의 건축은 제 9대 황제 파차쿠티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거석을 3층으로 쌓아올려서 만든 돌벽은 22회의 구불구불함(지그재그)을 그리면서 360m에 걸쳐서 이어진다 . 석조 기술은 잉카의 석조처럼 빈틈없으며 돌의 표면은 둥그스름하게 다듬었고 돌과 돌 사이는 완전히 밀착되어 있다. 내부에는 석탑, 황제의 거소, 일반가옥, 병사, 무기나 식량의 창고, 저수조 등이 있고 곳곳을 연결시키는 지하도가 있다. 또 정상에는 거대한 해시계를 설치했다. 당시 주요 농작물이던 감자, 옥수수의 재배나 수확시기를 가늠하기 위한 시계라는 것이다. 사용한돌은 근교의 것뿐만 아니라 멀리 올란타이탐보에서도 운반 하루에 3만명을 동원하여 약 80년이 걸려서 제10대 황제 잉카유팡키가 축조하였다 한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의 분지라 그런지 걸어다니는데도 숨이 찬다.
배낭여행때는 어디를 가나 꼭 재래시장을 찾아본다. 이곳 시장도 사람들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늬 시장과 마찬가지로 옷가게, 식품가게 등 생활용품들이 즐비하게 보인다. 상가옆 한쪽 귀퉁이에서 펴 놓은 노점 모습들에서 가난하나 억척스러움을 볼수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시장보러 나온 사람들이나 모두들 인디오 전통 의상들이다. 하나같이 모자를 쓰고 무지게 컬러의 담요로 아이를 업고있거나 그걸로 짐을싸서 메고 다닌다. 소변 보러 변소를 물어물어 찾아가니 돈을 달라기에 없다는 표시로 양손을 벌리니 그냥 누고 가란다. 한국의 50~60년대 시장 공중변소 보다 더 ......
시장안에 있는 음식점이 성시를 이룬다. 점심때가 되어 출출하던 차에 쉐비체(Chevice)를 파는 음식점에서 인디오들과 같이 앉아 먹는다. 민물고기회와 야채, 양파, 콩(땅콩?)등을 섞은 음식인데 한국의 횟밥 같다고나 할까... 민물회는 약간 숙성을 시켰는지 시큼한 맛이 나길레 혹시나 배탈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한편으로는 맛있게 먹는다.
알파카
삭사이만 언덕위에 세워놓은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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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aster 원문보기 글쓴이: master
첫댓글 덕분에 잉카문명이 남아있는 숨결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꼭 가보고 싶은 남미... 우리 마스터님과 박우물님 덕분에 아조 생생하게 구경 잘 하고 있습니다...ㄳ합니다.....
상단 사진에 낮익은 한국산 차량들이 많이 보이네요....*^^*
대우 티코가 택시로 달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