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 알베르토 신부
성 요셉 대축일
2사무엘 7,4-5ㄴ.12-14ㄱ.16 로마 4,13.16-18.22 마태오 1,16.18-21.24ㄱ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삶에 나침반이 되어주십니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복음에는 요셉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의 요셉 이야기는
요셉이 주인공인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로 매우 중요합니다.
요셉이 어떤 인물일지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행동합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만약 제 꿈에 주님의 천사가 등장한다면
못 알아봤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꿈에서 천사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천사를 알아봤다고 해도 천사의 명령을 들은 다음날 ‘개꿈 아니었을까?’ 하며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요셉은 꿈에서 주님의 천사를 만나는 일에 익숙한 것 같고,
심지어 천사의 명령도 그대로 따릅니다. 마치 평소에도 종종 꿈에 주님의 천사를 만난다는 듯이,
또 종종 천사가 일러준 대로 삶의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린다는 듯이 말입니다.
아마도 요셉은 매일 밤 자기 전 하느님께 이런 기도를 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주님 저의 삶에 나침반이 되어주십시오. 제가 해야 할 바를 알려주시고, 제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깨닫게 해주소서.’
모든 것이 저의 상상이긴 하지만, 매일 잠들기 전 요셉처럼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좋은 기도처럼 느껴지시지 않나요?
서울대교구 박민우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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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 세례자요한 신부
성 요셉 대축일
2사무엘 7,4-5ㄴ.12-14ㄱ.16 로마 4,13.16-18.22 마태오 1,16.18-21.24ㄱ
요셉의 꿈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꿈에 관해 생각할 때면 동시에 구약 성경의 야곱의 아들 요셉의 꿈이
생각납니다. 구약 성경의 요셉은 이집트에서 파라오 왕의 꿈을 해몽함으로써 왕의 신뢰를 얻어
최고 통치자로서 영예를 누렸습니다.
또한 야곱 가족은 요셉 덕분에 흉년에도 잘 지낼 수 있었고
마침내 이집트에서 평안히 부를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의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약혼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을 알고 의심과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꿈에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입니다.
구약 성경의 요셉이 형들로 인해 미움과 시련을 겪고 그 후 하느님께서 꿈을 통해 이끌어주셨다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신앙의 시험을 거친 후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다양한 아픔과 갈등으로 인해 신앙의 위기를 겪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신앙의 위기를 맞을 때 쉽게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많은 일 때문에 염려하고 힘겨워하며 생활하고 있는 우리는 이제 인류 구원을 위해
성모님과 함께 충실히 살았던 요셉 성인의 믿음과 신앙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대전교구 김종기 세례자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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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성 요셉 대축일
2사무엘 7,4-5ㄴ.12-14ㄱ.16 로마 4,13.16-18.22 마태오 1,16.18-21.24ㄱ
요셉 성인의 삶을 본받자
오늘은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배필 성요셉 대축일입니다.
축일 이름이 무척 깁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으신 모든 분들께 축하드립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호주제를 폐지한다고 논란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니까 법이나 제도도 변해 가는가 봅니다.
가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니까 뭔가 허전할 수도 있겠지요.
권위적으로서의 가장이 아니라, 가정의 대소사에 책임을 지고 헌신하는
그런 가장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는 것 아닙니까?
오늘 축일을 지내는 요셉 성인도 예수님 가정의 가장이셨습니다.
아마 그 당시 이스라엘은 지금의 우리 못지 않게 남성중심적, 가부장적인 사회였으니까,
요셉 성인도 가장으로서 많은 역할을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만만찮은 아내와 아들을 두었으니 몸 고생,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지하고 상상해 봅니다.
복음서를 통틀어 요셉 성인에 대한 내용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 과묵한 성격에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요셉 성인은 천사가 시키는 말에 아무런 반론이나 저항도 없이
마리아와의 혼인을 수락합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순순히 내어맡긴 의롭고 믿음직스런 인물이었던 것만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내내 말씀드리듯이 적어도 이기적인 분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성모님 또한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신 분,
절대 이기적인 분이 아니었지요.
성 요셉과 성모님 못지 않게 우리나라의 부모님들도 자식을 키우는데
가희 눈물겨울 정도로 헌신적입니다.
자식들 학교에 학원에 보내고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 다 해주고 컴퓨터에, 휴대폰에
남들 부끄럽지 않도록 옷 입혀 줘야지. 등골이 쑥 빠집니다.
좀 여유가 있으면 조기유학에 해외 연수에, 그리고 나중에 결혼할 때 살림차려줘야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느나라 어느 부모님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헌신적입니다. 정말 헌신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기에 이기적이 아닌 것 같지만
그 또한 대단히 이기적인 것입니다. 가족이기주의입니다.
제 자식 잘 되고 나도 어깨 힘 좀 주고 다니고 나중에 자식덕 좀 보려나 하는 이기주의입니다.
입시철이 되면 수험생의 부모들은 속이 탑니다.
그리고 대학 떨어지면 성당에도 안 나옵니다.
그런 이기주의가 과도한 경쟁이 되고 너나 나나할 것 없이 모두 남들이 하는 것,
남의 자식이 가진 것, 다 해주고 갖추어 주다 보니까 부모 등골이 쑥 빠질 지경이 된 것입니다.
결국 자녀들의 삶의 태도 또한 이기적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독일의 스포츠 갑부인 미카엘 슈마허라는 사람은 자가용 비행기로 전 세계를 다닐 정도이면서도
자기 아들에게 한 주간 용돈이 겨우 2유로 삼천원 정도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 나라에서 그랬다간 아들이 기가막혀 졸도해 버렸을 것입니다.
아니면 가출하든가...
예수님도 가출을 하신 셈이지만 나이 서른이 되어서 하신 가출이지요.
의로우신 성 요셉, 그분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은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구세주를 이 땅에 오시게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구원과 기쁨과 빛을 참생명을 가져다주는 방법은 바로 요셉 성인의 모범을
본받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자기가 손해 볼 수도 있는 일, 귀찮은 일이라고 피해 버렸다면
성모님은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을 받았겠지요.
요셉 성인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교육시키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부부가 자신의 의지, 자신의 욕구와 기대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이경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