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시원한 여수해변에서 주말을..
2010년 7월의 한여름 주말, 7월24일 아침에 오늘은 무얼할까 궁리(?)하면서 책상머리에 앉았다가 여수시에서 주말엔 진남관을 찾은 관광객에게 문화해설을 해준다더 라는 말이 떠올랐고,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때두 나도 한번 그 해설을 들어봐야지 생각했었던 터라,젠틀맨은 망설임없이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들고, 소주 그리고 생수 두 병과 김밥 한 줄을 사구 진남관으로 향했다.
진남관으로 가면서, 오늘은 진남관 à이순신광장 à자산공원 둘러보고, 스포렉스와서 사우나하구 일곱시 前에 집에 가면 되겠다 생각.. 그 시간이 오전 10시 조금 넘어서다.
Ⅰ. 여수 진남관
여수 진남관은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된 건물로 2001년 4월, 국보 304 호로 지정되었다. 진남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조선수군 중심 기지라는 역사성과 동시에 1718년(숙종44)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창한 당시의 건축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건축사적 가치가 보존된 건축물이다. 진남관은 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최대규모 지방관아 건물이다.
그 진남관을 차 타구 오가면서는 수 백 번도 더 봤지만, 또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어 방문을 해보니 또 다른 색다른 감회가 있다. 주말이고 또 여름방학 기간이어서인지 몰라도 학생 방문단으로 보이는 학습단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그룹 두 단체가 보였다.
진남관 안내소 입구에 가서 보니, 간단한 유인물이 놓여져 있고 그 안내문 옆에 전라남도 문화관광해설사 윤태영님과 조미선님의 전화연락처가 안내돼 있다. 안내를 받고픈 사람은 전화를 바란다는 글과 안내소안에 사람이 안보여 조미선 관광해설사께 전화하였다, 지금 위에서 해설 중이니, 진남관 이곳으로 올라오라 안내를 해 주신다. [윤태영 관광해설사 HP 010-6770-1616 / 조미선 관광해설사 HP011-614-8482]
진남관 첫 관문인 이층누각 망해루를 지나오르다 보면, 고을 수령들의 공적비들을 만나고, 다시 진남관을 들어갈 때 통과해야만 하는 통제문을 지나면 비로소 진남관 앞에 서게 된다.
진남관 경내에에는 1497년 전라좌수사 이량이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장군도와 돌산도 사이에 쌓은 방왜축제(수중성)를 기리기 위하여 1710년 후손들이 건립한 '이량장군 방왜축제비'와 충무공 이순신이 휘하 수군들의 야간 훈련을 위해 만든 석주화대 (총 4개의 석주화대가 있었다 하나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인전술'을 위해 만들었다는 2m 크기의 '여수 석인상' (총 7구를 만들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1구만 남아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렇게 조미선 관광해설사님의 설명을 십여분 넘게 들었고 설명을 듣고 나니, 확실히 진남관에 대하여 예전보다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설명이 채 끝나기전에, 뒷 방문팀에게 해설을 해줘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게 안내를 못받고 해설을 마쳐야만 하는 점.. 에궁~ 그렇다 해도 감사.
지금의 진남관 터는 조선시대 4백년간 조선 수군의 본거지로 이용되었던 현장이다. 이곳은 원래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로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해인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진해루 터에 75칸의 대규모 객사를 세우고,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鎭南館' 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
진남관은 1664년 절도사 이도빈이 재건하였고, 171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이제면 수사가 다시 지었으며, 이후 크고 작은 수리를 거쳤으나 1718년 이제면 수사가 중창한 건물이 오늘날 여수시 진남관 건물의 뼈대다. 진남관은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전라좌수영성의 유일한 건축물로 정면 15칸(54.5m), 측면 5칸(14.0m), 면적240평의 대형 건물로 합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과 함께 몇 안 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이다.
직사각형 땅에 사괴석(四塊石)과 장대석(長臺石)을 섞어 2줄로 반듯하게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막돌로 주춧돌을 놓았다. 가장자리는 직사각형 다듬돌로 돌렸으며, 막돌 주춧돌 위에 민흘림의 원형 기둥 68개를 세웠는데, 막돌 주춧돌에 맞게 기둥뿌리의 밑둥 다듬어 기둥을 단단하게 유지시키려는 고급 기술이라는 그랭이 수법이 사용되었다 한다.
근세에 들어서 진남관은 순종 5년(1911) 여수공립보통학교로, 일제 강점기에는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교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3년 진남관 보수공사 도중 진남관 천정에서 1718년 이제면 수사가 쓴 현판이 발견되었으며, 그 현판은 현재 여수교육청에 보관되어 있다.
진남관은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 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그 중요성과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보 제 304호로 지정되었다.
그렇게 진남관 안내를 받고난 후,
나는 진남관 바로 옆 바닷가 공터에 만들어진 이순신광장을 가 보았다.
Ⅱ. 그리고 이순신광장을 둘러보기..
↗ 진남관아래, 여수시 중앙동로터리 옆
2010년3월27일(토요일) 준공된 이순신 광장에서...
환영의 분수(워터 스크린)
ㅇ. 커튼 형태로 연출되는 수경시설로 노즐 개별제어를 통해 문자, 패턴, 도상 등을 수막에 표현한다.
ㅇ. 테마를 표현하는 간단한 문장으로 여수시 홍보 및 행사안내 등을 표시해준다.
▲ 이순신광장 뒷편으로 국보 제304호 진남관이 보이고, 그 뒤로 서 있는 산이 종.고.산.(鐘鼓山)
전시가벽
[이순신장군에 관한 각종 기록을 알리기 위한 전시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그렇게 광장을 천천히 둘러보구 나니,
점심때가 지났는지 시장기가 올라온다. 자산공원에서 맥주에 점심을 할 요량으로
광장 바로 옆 하멜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멜공원을 지나야 자산공원으로 갈 수가 있기에...
걸으면서 재삼 느낀 점이지만, 여수해변의 평화로운 풍광은 세계 그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멋지고 아름다운 곳,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뷰티풀 여수 ㅡ
Ⅲ. 자산공원
자산공원 입구에는 국궁장, 활터_횔쏘기 연습장이 있었다.
현재 건설되고 있는 제2 돌산대교가 바로 밑에 있기에 기념사진 한 장을 담았다. 이제 대교 상판,
한 장만을 달랑(?) 남겨둔 상태..
그렇게 활터를 둘러보구,
오늘 주말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자산공원 일출정으로 나갔다.
일출정은 오동도를 들어갈 때 들어가기 첫지점인 방파제가 시작되는 곳에서 오른쪽 위로 보이는 정자이다. 오동도를 가본 사람들은 한번쯤 보게 되는 정자.
정작 이렇게 일출정만을 관광키 위하여 시간을 따로 내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라구,
생각하며 정자에 올랐다. 정자에 올라 잠시 풍광을 구경하고 갖고 온 캔맥주와 소주를 내놓구 막 한잔 하려던 찰나 문자 하나가 들어온다.
고향친구인 000 상 부고이다.
소식적 친구이니 또 주말이니 당연 가봐야지..
그렇게 주말을 정리(?)하고, 전주를 다녀왔다. 간만에, 어머님도 뵙고 하려고 챙겨서 사우나탕으로 간다.
↗ 해변 여수의 자산공원에 있는 日出亭.
그렇게 돌아와,
안해에게 어머님 용돈도 받구, 부조금 챙겨 전주갔다가 일요일 밤 아홉시 기차로
자시 다 되어서야 여수에 돌아왔다.
그렇게, 2010년7월24일, 한여름의 주말을 보냈다.
감사해요.
여수해변의 젠틀맨 拜
그렇게 2010년 한여름 의미로운 주말을...
감사합니다.
첫댓글 역시 살아가는 방법을 아름답게 꾸며가는 젠틀맨 아우님 ! 왜 젠틀맨인지 이제 알것같아요 ~시간을 곧 돈이다 돈보다 귀한것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값지게 쓰는것이 지혜인지 일깨워 주시 듯 관심과 세심함으로 지척에 두고도 문화재를 가보지 못하고 사는 제가 경종을 울리는 글입니다 ^-^ 35년이 넘은 세월 많이 변했을 여수시 돌산도 다리를 놓고 했으니 강산이 몇번 변했는지 가보고 싶네요 금요일 토요일 이틀동안 전남 장흥 물축제 기간 장흥군수님 초대로 현대시인협회 100명의 문인들이 갔다왔어요 넓은 땅이 어쩜 그리도 깨끗하게 정리가 잘되어 있는지 농촌의 풍경이 절 감동시키던군요 ! 여수가 가깝다면 한번 들려보고 싶었는데
그러셨군요,심향누이님.. 이제 은근슬쩍 젠틀맨, 겁이 나는걸요.누이 여수오심, 그 무게를 젠틀맨 어찌 감당할지 은근히.. 하하 더욱,행복하세요. 심향누이..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