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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벌초/ 이홍섭
은하수 추천 0 조회 59 18.09.15 22: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벌초/ 이홍섭

 

벌초라는 말 참 이상한 말입디다. 글쎄 부랑무식한 제가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큰 집 조카들을 데리고 벌초를 하는데, 이 벌초라는 말이 자꾸만 벌받는 초입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원 참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무던히 속을 썩여드리긴 했지만......조카들이 신식 예초기를 가져왔지만 저는 끝까지 낫으로 벌초를 했어요, 낫으로 해야 부모님하고 좀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고, 뭐 살아 계실 적에는 서로 나누지 않던 얘기도 주고받게 되고, 허리도 더 잘 굽혀지고......앞으로 산소가 없어지면 벌받을 곳도 없어질 것 같네요, 벌받는 초입이 없어지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어요, 안 그래요, 형님

 

- 시집 터미널』(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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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묘에 어지럽게 나있는 잡풀을 정리하는 것이 벌초다. 조상 묘를 그냥 방치해두면 자손 된 도리와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벌초가 행해져왔다. 왕릉을 풀베기할 때는 사초(莎草)라 하고 사대부 집안에서는 금초(禁草)라 부른다. 지금도 양반 집안임을 은근히 내세우거나 일부 방귀깨나 뀐다는 집안에서는 벌초라 하지 않고 금초라는 용어를 쓰지만 일반 서민층에서는 널리 벌초(伐草)로 통용된다. 이 벌초를 한해만 걸러도 잡풀이 무성하여 볼썽사납고 봉분을 인식 못할 때가 있다.


지금의 우리 대에는 ‘벌 받는 초입’처럼 해오던 대로 이를 행한다 해도, 장차에는 어찌 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조성된 분묘를 우리 후손들이 언제까지 관리할 수 있을까? 지금도 전국적으로 2천여만기의 묘 가운데 무연고가 절반 쯤 된다고 한다. 현행법령은 개인이건 공동이건 묘지사용을 최장 60년으로 제한하고 있고, 화장의 보편화 추세를 감안하면 머잖아 벌초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벌초가 없는데 성묘가 지속될 리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한줌 흙으로 돌아가 대자연의 품에 안긴다는 섭리를 뒤늦게 인식해서가 아니라 성가시기 때문이다.


조상의 묘를 찾을 때면 죽음은 만인을 평등하게 하고 만물을 소통케 하는 절차임을 새삼 깨닫는다. 비로소 한줌 흙으로 돌아가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됨을 확인한다. 어제, 시간을 낸 작은애와 함께 벌초를 다녀왔다. 아버지와 조부모가 나란히 누운 성주 선산에 들렀다가 내친김에 어머니 유골이 봉안된 군위 가톨릭 묘원까지 다녀왔다. 사실상 벌초는 육촌들이 미리 예초기를 돌려 해놓은 상태고 삐죽 올라온 풀을 손으로 몇 개 뽑고서 술을 한 잔 올렸다. 요즘의 우울상태에서는 벌초고 뭐고 뒷전이겠으나 최소한의 벌은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살짝 면피한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조상들께 후손들 잘 보살펴달라고 빌지는 않았다. 그 옛날, 지맥이 좋은 곳에 조상 묘를 쓰면 자손 중에 큰 인물이 나온다는 속설에 따라 너도나도 명당자리를 탐했다는데, 내 조상 산소들이 그런지는 알지 못한다. 내세울만한 큰 인물이 없는 걸 보면 지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조선조까지만 해도 자기 조상 묘를 남의 명당 산소를 파헤쳐 투장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조상의 묘소를 가끔 살피러 가면서부터 성묘 문화가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상 묘를 살피러 갔다가 산소의 풀이 무성하니 그것을 베고 오기 시작한 것이 벌초의 기원인 것이다. 함부로 남의 묘 넘보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었다. 그런 벌초가 지금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기계적인 연례행사가 되었다. 옛날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어디 감히 조상님의 묘에 불경한 소리를 낼 수 있으며, 성의 없이 기계를 들이댄단 말인가. 점차 벌초에 참석하는 사람도 줄고 먼 곳에 있으면 대행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리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기복의 의미가 있다한들 성가신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좋은 것은 있다. 모처럼 아들과 고기를 구워 반주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 삶이 내 한 몸의 태어남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다시 느꼈다. 부귀공명과 입신양명이 아니어도 그것으로 복 하나는 건지지 않았는가. .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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