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조효열 장군 묘소와 후손가를 찾아서
2018.9.9
조효열 장군 후손이 사는 거창군 위천면 강동리 면동마을(면우실)을 안내하는 입석이 마을앞에 있다.
당진포 만호 조효열 장군 묘소앞의 묘전비에는 '당진 현감'으로 표기돼있다.100여년전, 후손분들이 세웠는데,자료 고증을 조금 더 신중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효열 장군 묘소 사진
조효열(趙孝悅.당진포 만호) 장군은 명량해전과 노량해전 참전했다,한양조씨 입향조 수오재 학의 아들로 서기1540년에 출생하였다. 자는 성원이요 호는 운재이다.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 출신이고 ,묘소는 월계리 월하마을 위 산23 지번에 있다.위천면 면동마을에 주손인 조대형씨가 살고 있다.
부친 조학(趙謔)은 1488년생인데 거창에 묘소가 있고,조부는 충북 충주에 묘소가 있다.조효열의 어머니는 함양에 거주하는 나주박씨 진사 蕃堂 朴訥의 女이고 조부는 생원 박교간(朴喬幹),외조부는 뇌계(㵢溪) 유호인(兪好仁,1445∼1494)이다.어머니 고향이 함양이므로 조부가 합천군수를 할 때 부친이 처가를 다니면서 적당한 곳을 물색해놓았다가 처향으로 입향한 것 같다.유호인은 김종직의 제자인데 손서중에 정율이 있다. 그 아들이 고대일록을 쓴 고대(孤臺) 정경운(鄭慶雲)이다.그래서 조효열 장군과 정경운은 6촌간이다.유호인을 기준으로 조효열은 외손녀의 아들이고,겅경운은 손녀의 아들이다.
조효열은 난중일기에 1596 -4/14(359,이은상본 난중일기 134) 처음 등장하여 기록은 6번 밖에 없다.하지만 충청수사 최호가 전사한 칠천량해전에 참전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경상우수사 배설과 거제현령 안위와 함께 후퇴하여 회령포에서 다시 3도수군 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과 합류하여 수군재건에 동참하였으며,그뒤 명량해전에 참전하였고 절이도해전과 순천왜교성을 공략하기 위한 묘도와 장도해전에 참전하였으며,노량해전에도 참전하여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노량해전 2일전에는 남해와 한산도 사이를 탐색정찰하는 복병장으로 활동한 전과에 대한 기록이 이순신 장군이 쓰신 난중일기 마지막날 기록에 있다.나는 이기록에 의하여 조효열 장군과 발포만호 소계남(蘇季男) 장군이 복병장으로 활약한 해전의 이름을 '미륵도앞바다해전(미륵전양해전)',또는 '한산앞바다해전(한산전양해전)'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조효열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이후 아마도 다시 관직에 나간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 충신 이순신을 잃은 좌절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고향(처향)으로 돌아가 은거한 것으로 보인다.위천면지와 족보에 의하면 서기1618년에 향년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조효열의 사촌형인 조효종(趙孝宗)은 고성(철성)이씨 안동입향조 이증(李增)의 증손서이다.조효종의 부친인 조당(趙讜,조효열의 백부)도 안동에 묘가 있는데 아마도 처가곳으로 낙향(입향)하게 된 것 같다.조당의 사위가 임청각을 지은 이명(李洺)의 넷째아들 이고(李股)이다.조효종의 사위가 학봉 김성일의 형 귀봉 김수일이다.그 아들이 난중일기에 체찰사 종사관으로 여러번 등장하는 운천 김용이다.조효종은 아들이 없어 후손이 끊어졌고 내앞의 의성김씨 귀봉가에서 500여년 가까이 장인과 장조부의 제사(외손봉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조당의 부인에 관한 내용이 족보에 없습니다.안동쪽 문중에 밝은 이한방 교수님이 보시고 나중에 좀 찾아 주시면 좋겟습니다.ㅎ
조효열 장군의 장인은 연안이씨 봉사 이소백(李小白)이고 조효열의 동서(同壻)가 거창신씨 신복진(愼復振)이다.신복진은 퇴계와 남명과 동시대의 인물인 갈천 임훈의 제자이다.신복진의 사위가 지산 조호익이 있다.
임란때, 유배지인 평안도 강동땅에서 제자들을 동원하여 의병을 일으켜서 의병장으로, 가례고증을 쓴 퇴계학파 인물로 유명한 영천출신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창녕조씨)의 둘째부인이 거창신씨 신복진(愼復振)의 女이다.
갈천 임훈 선생이 퇴계 이황 선생의 수승대를 제하는 글에 화답한 자료등도 진작에 알고있었고.그래서 다시한번 추적하여 달빛에 어린 역사가 깃든 수승대를 보고싶었고,완도 이순신 학술회의 참가하면서 답사를 완성했다.
조효열 장군의 주손 조대형 선생.
전에는 경운기도 들어왔었다고 하는데,현재 옆의 밭은 묵었다.아마도 시멘트로 포장을 하고 묘소도 좀 손을 대면 환경이 좀 나으리라.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 월화마을 안에 조효열 장군 생가터가 아직있다.생가터에 조효열 장군의 재사(齋舍)가 있다.
조대형 선생의 아들인 세무사 조성진씨가 2018년에 거창군수 선거에 무소속으로 도전했었다.
젊을 때는 바쁘겠지만,조효열 장군 공부도 좀하고 거창지역에서 조효열 장군의 이름이 역사에서 지워지지 말았으면 한다.
후손이 살고 있는 한옥의 뒤에는 이런 산이 있다.금원산 자락인 현성산이다.
자연을 정원으로 한 집이 나는 참 좋다고 생각한다.
조대형 선생의 부인과 한옥
한옥은 고령토로 구운 '고령기와'를 올렸다.
내가 하룻밤을 지낸 한옥의 황토방.
한옥의 내부출입문에 대리석을 사용했다.
첫댓글 조효종의 어머니(조당의 부인)가 누군지 족보에 없습니다.혹시 안동 문중의 족보를 보시다가 확인되면 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ㅎ
조효종(귀봉 김수일의 장인)과 조당(장조부)가 절손되어서 귀봉가에서 500년동안 외손봉사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영양남씨 같기도 하고 애매합니다.날 새면 사진찍어 보낼께요.
서주석 선생의 안동문화산책이란 책이 있습니까? 안동 인근의 웬만한
가문의 족보를 다 섭렵하여 요약 설명해 놓은 큰 업적입니다.
안동문화산책...없습니다.ㅎ
혹시 구할 방법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절판되어서 중고책 시장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언제 복사해서 드릴께요.
넵...감사합니다.
안동문화산책 복사해서받는방법 밖에없군요..박약회주소는어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