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그녀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다가 환관들이 잘게 썰어준 뒤에야 두 갈래 금 포크로 우아하게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11세기경
페트루스 다미아누스 추기경이 쓴 '수녀의 지침'에 나오는 글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포크가 유럽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동로마(비잔티움) 제국(330~1453) 때였다.
비잔티움 제국의 귀부인 마리아 아르기로풀라이나가
베네치아에서 앙증맞은 금 포크를 사용한 이후 포크는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사 도구이자 서구 음식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리아의 금 포크는 비잔티움 제국이 서구 세계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신간 '비잔티움'(글항아리 펴냄)은 그동안 평가절하됐던 비잔티움의 역사를 재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비잔티움 역사 전문가인 주디스 헤린 영국 킹스칼리지 연구전담 교수.
저자는 "비잔티움은 중세 내내 지중해 동부, 발칸 반도, 서유럽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끼친 1천 년의 역사를 지닌 문명이자 기독교와 이교적 요소, 그리스와 로마적 요소, 고대와 중세적 요소를 고루 갖춘 문명이었다"고 말한다.
비잔티움의 문화와 예술적 특성이 오늘날 영원한 유산으로 인정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40여 년간 비잔티움의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베네치아와 포크, 성소피아 성당,
콘스탄티노플 등 28가지의 주제로 비잔티움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환관들의 이야기도 흥미를 자아낸다. 고대 로마에서 거세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으며 환관은 혐오의 대상이었던 반면 비잔티움 제국에서 환관은 황족과 관련된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책에 실려 있는 칼라 화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찬란했던 비잔티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순호 옮김. 672쪽. 3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