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3, 요한복음 1:14, 요한복음 6:6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서론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사람의 말은 우리를 위로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어떤 말은 잠시 기억되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잊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보나 교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서 창조하고, 구원하고,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세 단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다바르(Davar)와 헬라어 로고스(Logos)그리고 레마(Rhema)입니다.
다바르는 사건이 되는 말씀입니다. 로고스는 사람이 되신 말씀입니다. 레마는 생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세 종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한 말씀이 창조와 역사 속에서 사건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며, 성령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세 가지 차원을 보여줍니다.
첫째, 다바르는 사건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씀’이라는 뜻과 함께 ‘일’과 ‘사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단순한 소리로 끝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바르’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여기서 ‘창조하시니라’에 해당하는 말이 ‘바라’입니다. 성경에서 ‘바라’의 주어는 하나님이며,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창조 행위를 나타냅니다.
‘바라’는 우주의 시작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일에도 사용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죄로 무너진 마음을 새롭게 하고, 절망 가운데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까지 나타냅니다.
바라는 오직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바르’로 ‘바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빛을 설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빛을 창조한 것입니다.
사람은 일어난 사건을 보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심으로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사람의 말은 현실을 설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현실을 창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자 새로운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시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자 민족과 나라의 역사가 움직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혼돈과 공허와 어둠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길이 보이지 않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 부르던 찬양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대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거친 파도가 잠잠해졌다네.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동심으로 돌아가서 다 같이 불러 보겠습니다.
둘째, 로고스는 사람이 되신 말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느라”
여기에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넣어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와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는 다릅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조 이전의 영원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입니다.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최초로 번역한 칠십인역에서는 ‘다바르’를 ‘로고스’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사건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은 영원하신 분이 시간 속으로,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세상으로, 거룩하신 분이 죄인들 가운데로 오신 것입니다. 성육신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말이 아니라 삶과 사건이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의 육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우리가 자력으로 올라갈 수 없기에 하나님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죄인이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3일 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 줄로 믿습니다.
원래 Logos란 단어는 헬라 철학에서는 ‘이성’이란 뜻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이토스(Ethos)입니다. 로고스가 부족하면 설득력을 잃고, 파토스가 부족하면 공감력이 없고, 이토스가 부족하면 아무리 옳고 감동적인 말이라도 신뢰받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먼저 “이 말이 논리적인가?”보다 “이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먼저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설득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 레마는 생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Rhema)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레마는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어떤 말씀이 갑자기 마음 깊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 번 읽었던 말씀인데도 어느 날 새롭게 들립니다. 그 말씀이 나를 위로하고, 책망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줍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하셔서 오늘 나에게 영과 생명이 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조명’이란 기록된 성경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삶에 적용하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셔서 그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하십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말씀이 마음에 들리게 하시고, 과거의 기록된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게 하십니다. 또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위로와 소망을 주시며, 깨달은 말씀에 순종할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말씀 없는 성령 체험은 주관적인 감정으로 흐르기 쉽고, 성령의 조명 없는 말씀은 지식에 머물기 쉽습니다. 성령께서는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일하시며, 그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서 생명과 능력이 되게 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의 조명을 받을 때 올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은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기 전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 말씀을 밝히 비추어 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믿고 순종하여 삶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두려움에 빠진 사람에게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명이 됩니다. 죄책감에 눌린 사람에게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이 자유가 됩니다. 지친 사람에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안식이 됩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이 방향이 됩니다.
에스겔 골짜기 사건은 에스겔 37장에 기록된 ‘마른 뼈들의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뼈들은 매우 많았고 심히 말라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겔 37:3)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서로 맞춰지고 그 위에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안에는 생기가 없었습니다. 에스겔이 다시 생기를 향해 대언하자 생기가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살아나 일어나서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죽은 영혼을 살리고, 무너진 믿음을 회복하며, 메마른 심령을 새롭게 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레마는 성령을 통하여 오늘 우리 안에 들어와 믿음을 일으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이지만, 우리에게 세 가지 차원으로 다가옵니다.
첫째, 다바르는 사건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어둠 속에 빛이 생기고 혼돈 속에 질서가 세워집니다.
둘째, 로고스는 사람이 되신 말씀입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셋째, 레마는 생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하실 때 그 말씀은 오늘 우리를 살리고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 속에서 사건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었으며, 성령을 통하여 오늘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사건이 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데서 끝내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어둠에 빛이 되고, 우리의 방황에 길이 되며, 메마른 영혼에 생명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혼돈과 어둠을 향하여 다시 말씀하여 주옵소서. “빛이 있으라”고 하신 창조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사건이 되게 하옵소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며 따르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와 진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성령님, 기록된 말씀을 밝히 깨닫게 하시며,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영과 생명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기만 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게 하시며,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삶이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사건이 되는 말씀, 사람이 되신 말씀, 생명이 되는 말씀으로 우리를 날마다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