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평양록(兩朝平壤錄)》
옛 이별 《열조시집》에 이르기를, “허경번(許景樊)의 자는 난설(蘭雪)로,
조선 사람인데, 그의 오빠는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이다.” 하였다. [허매씨(許妹氏)]
윙윙대며 구르는 두 개의 수레바퀴 / 轔轔雙車輪
하루에도 천만 바퀴 돌아가누나 / 一日千萬轉
맘 같은데 수레 함께 타지 못하고 / 同心不同車
헤어진 지 세월 많이 바뀌었구나 / 別離時屢變
수레바퀴 자국 아직 남아 있건만 / 車輪尙有跡
님의 생각 떠올려도 아니 보이네 / 相思獨不見
《열조시집》
우연히 느낌이 있어서 짓다 3수(三首) [허매씨]
하늘대는 창가의 난초 잎들은 / 盈盈窓下蘭
어쩌면 저다지도 향기로울까 / 枝葉何芬芳
가을바람 어느 날 저녁에 불자 / 西風一夕起
슬프게도 찬 서리에 시들었구나 / 零落悲秋霜
빼어났던 그 자태는 시들었지만 / 秀色總消歇
맑은 향기 끝내 아니 사라졌구나 / 淸香終不死
그 모습 보노라니 나의 맘 아파 / 感物傷我心
흐른 눈물 옷소매를 적시는구나 / 流涕沾衣袂
옛집에는 대낮에도 사람이 없고 / 古屋晝無人
부엉이만 뽕나무서 홀로 우누나 / 桑樹鳴鵂鶹
섬돌에는 차가운 이끼 끼었고 / 蒼苔蔓玉砌
빈 다락엔 새들이 날아드누나 / 鳥雀飛空樓
그 옛날에 수레들이 몰려들던 곳 / 向來車馬地
지금에는 토끼 여우 사는 굴 됐네 / 今成狐兔丘
미덥구나 달관했던 사람들의 말 / 信哉達人言
근심 속에 다시 무얼 더 구하리오 / 慽慽復何求
오동나무 역산의 남쪽에 있어 / 梧桐生嶧陽
봉황새가 그 곁으로 날아들었네 / 鳳凰翔其傍
깃털에는 오색 빛깔 찬란도 하고 / 文章爛五色
울음 울며 천 길 높이 날아오르네 / 喈喈千仞岡
벼와 기장 그런 거는 안 쳐다보고 / 稻粱非所慕
대나무 열매만을 먹고 산다네 / 竹實迺其飧
그런데 어찌하여 오동나무에 / 奈何桐樹枝
올빼미와 소리개가 둥지 틀었나 / 棲彼鴟與鳶
《상동》
봉(篈) 오라버니에게 부치다 [허매씨]
개인 창엔 등불이 낮게 비추고 / 晴窓銀燈低
반딧불은 높은 누각 날아 넘누나 / 流螢度高閣
고요 속에 깊은 밤은 추워 가는데 / 悄悄深夜寒
쓸쓸하게 나뭇잎은 떨어지누나 / 蕭蕭秋葉落
산과 물이 가로막혀 소식 뜸하니 / 關河音信稀
깊은 시름 어떻게 풀 길이 없네 / 沈憂不可釋
청련궁에 계신 오빠 그리워할 제 / 遙想靑蓮宮
텅 빈 산속 담쟁이에 달빛만 밝네 / 山空蘿月白
《상동》
봉대곡(鳳臺曲) [허매씨]
진나라의 농옥과 소사 두 사람 / 秦女侶蕭史
아침저녁 봉대에서 퉁소 불었네 / 日夕吹參差
숭대에서 봉새 타고 멀리 떠나자 / 崇臺騎彩鳳
아득하여 쫓아갈 수가 없었네 / 渺渺不可追
하늘 땅과 더불어서 영원하리니 / 天地以永久
인간 세상 슬픔이야 어떻게 알리 / 那識人間悲
이내 몸이 눈물 참을 길이 없는 건 / 妾淚不可忍
그리운 이 영원토록 이별해서네 / 此生長別離
《상동》
망선요(望仙謠) 2수(二首) [허매씨]
구슬꽃은 흔들리고 푸른 새는 나는데 / 瑤花風細飛靑鳥
서왕모는 수레 타고 봉래도로 향해 가네 / 王母麟車向蓬島
난초 깃발 꽃 모자에 흰꿩 깃털 갖옷 입고 / 蘭旌蕊帔白雉裘
난간 기대 웃으면서 구슬풀을 뜯누나 / 笑倚紅欄拾瑤草
바람 불어 푸른 노을 치마는 나풀대고 / 天風吹擘翠霞裳
옥 가락지 금 노리개 낭랑한 소리 내네 / 玉環金佩聲琅琅
선녀들은 짝을 지어 옥 거문고 줄을 뜯고 / 素娥兩兩鼓瑤瑟
삼화수 나무 위엔 봄구름이 향기롭네 / 三花珠樹春雲香
동틀 무렵 부용각의 잔치가 다 끝나자 / 平明宴罷芙蓉閣
푸른 바다 청동이 흰 학을 타고 오네 / 碧海靑童來白鶴
옥퉁소 소리 속에 오색구름 피어나자 / 紫簫聲裏彩雲飛
이슬 젖은 은하수엔 새벽별이 떨어지네 / 露濕銀河曉星落
《상동》
왕교가 나를 불러 놀자고 하여 / 王喬招我游
곤륜산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네 / 期我崑崙墟
아침 나절 현포 꼭대기 올라 / 朝登玄圃峯
저 멀리 자색 구름 수레를 보네 / 遙望紫雲車
구름 수레 어쩜 그리 빛이 나는가 / 雲車何煌煌
현포로 가는 길은 아득만 하네 / 玄圃路茫茫
어느 사이 은하수를 날아 넘어서 / 倐忽凌天漢
해 뜨는 곳 부상 향해 날아가누나 / 飜飛向扶桑
부상은 몇천 리나 먼 곳이런가 / 扶桑幾千里
풍파가 길을 막아 멀기만 하네 / 風波路阻長
어려울 길 가고 싶지 않긴 하지만 / 吾欲捨此去
이처럼 좋은 기회 어찌 놓치랴 / 佳期安可忘
그대 맘이 어딨는 줄 알고 있기에 / 君心知何許
소첩 맘은 슬프기만 할 뿐이라오 / 賤妾徒悲傷
《명시종》 ○ 살펴보건대, 이 시는 《난설집(蘭雪集)》에는 실려 있지 않다.
상현곡(湘絃曲) [허매씨]
향기론 꽃 이슬 젖은 상강의 물굽이에 / 薰花泣露湘江曲
드문드문 가을 연기 하늘 밖에 푸르르네 / 點點秋煙天外綠
수부에 물결 차서 용은 밤에 우는데 / 水府涼波龍夜吟
젊은 처자 영롱한 옥 가볍게 두드리네 / 蠻娘輕戞玲瓏玉
난새 봉새 떠나가서 창오와 격했는데 / 離鸞別鳳隔蒼梧
빗기운 강에 스며 아침 해 흐릿하네 / 雨氣浸江迷曉珠
악기 소리 사라지자 돌이끼는 차가운데 / 神絃聲徹石苔冷
운무 같은 머리카락 강녀가 우는구나 / 雲鬟霧鬢啼江姝
허공 걸린 은하수는 높다라서 아득한데 / 瑤空星漢高超忽
금장식 단 깃털 가마 구름 사이 사라지네 / 羽蓋金支五雲沒
문밖에선 어부가 죽지가를 부르는데 / 門外漁郞唱竹枝
은 연못엔 님 그리는 달이 반쯤 걸려 있네 / 銀潭半掛相思月
《열조시집》
사시가(四時歌) 4수(四首) ○ 살펴보건대,
이 시는 《난설집》의 본문과는 전혀 다르니, 의심스럽다. [허매씨]
뜨락은 고요한데 살구꽃엔 비 내리고 / 院落深深杏花雨
백목련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누나 / 鸎聲啼遍辛夷塢
술 늘어진 깁 휘장에 봄추위 스며들고 / 流蘇羅幕春尙寒
향로에선 한 오라기 향연기가 피어나네 / 博山輕飄香一縷
거울 앞서 빗질하니 봄구름은 기나길고 / 鸞鏡曉梳春雲長
옥비녀에 트레머리 원앙새가 서려 있네 / 玉釵寶髻蟠鴛鴦
주렴은 반쯤 걷고 비취 휘장 내렸는데 / 斜捲重簾帖翡翠
금 굴레에 멋진 안장 님 어디로 가시었나 / 金勒雕鞍歎何處
뉘 집의 연못가서 생황 소리 울리는가 / 誰家池館咽笙歌
맑은 술 금 술잔에 달빛 내려 비치네 / 月照淸尊金叵羅
시름 많은 사람 홀로 밤잠을 못 이루니 / 愁人獨坐不成寐
깁 수건엔 날 밝은 뒤 눈물 자국 가득하리 / 絞綃曉起看紅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