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 19-22
라멕이 두 아내를
사람들이 자기들의 사정을 합리화 시켜보려는 시도를 할 때에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문맥에서 논리를 전개하여 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철저하게 저주받은 자들의 문맥에서 그들의 죄를 찾아내고 또 자신들의 죄악성을 함께 발견하여 회개에 이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성뿐 아니라 고대로부터 여성들도 많은 남성을 역으로 거느리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여왕이나 여신이 된 것처럼 여기는 족속들도 있었고 그렇게 신격화하여 부추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계도처에 그렇게 여신상이 많은 것입니다.
1. 본문 19절은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입니다.
여기서 왜곡되고 타락한 인종들에게서 일부다처제가 기원되고 있습니다. 그 죄를 최초로 저지른 사람은 잔인한 사람이며 모든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는 자였습니다. 자기 가족을 증대시키려는 욕심으로 마치 교만한 사람들이 흔히 하고 싶어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했는지 또는 단순한 정욕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사소한 문제입니다. 그 두 가지 방법으로 그가 신성한 결혼의 법칙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지극히 필연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법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기를 “그들 두 사람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자연의 항구적인 질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잔인하게 있는 라멕은 자연의 법칙을 망쳐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의도하시기를 정당한 결혼의 부패는 가인의 집과 라멕의 인격에서 유래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일부 다처자들로 수치스러운 꼴을 당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2. 본문 20-22절은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입니다.
1) 이제 모세는 가인의 가문에서 발생한 악한 자들과 함께 몇몇 선한 사람들도 함께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술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 일상생활에 현저한 다른 물건들을 발명한 것은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능의 발굴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절대로 멸시해서는 안 되는 귀한 것입니다. 완전무결한 데서 가장 치명적으로 타락해 버린 이 인종이 희귀한 재능들 면에서 아담의 나머지 후손들보다 월등했다는 사실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세가 이런 예술들에 관해서는 가인의 가문에서 발명된 것으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가인이 여호와로부터 그다지 심히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고 아직도 그의 후손들 가운데는 몇몇 가지의 무수한 은사들이 흩어져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제시하기 위하여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고 우리는 이해합니다. 다른 사람의 재질은 그 동안에는 작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자손들 가운데는 기술과 재주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술과 예술을 계발하고 발명하는 데에 열심을 쏟았습니다.
모세는 그 인종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남아 있는 것을 두드러지게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지 않으면 그 남은 복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텅 비어 있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것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가인의 아이들이 비록 중생케 하시는 성령은 박탈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다지 비천하지 않은 하나님의 은사들을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서 경험해 온 것들을 얼마나 폭넓게 하나님의 빛의 광선이 현재의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유익하도록 불신앙의 민족들에게도 비춰주고 계신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성령의 탁월한 은사가 전체 인류에게 뿌려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예술과 과학들이 바로 이방인들에게서 전수되어 왔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천문학과 그리고 철학의 다른 분야들과 의학과 다른 정치제도의 질서 등을 모두 그들에게서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그들에게 놀라운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그들이 대체적으로 풍요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불신앙이 변명의 여지가 없게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풍요함을 감탄하는 반면에 또한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특이한 방법으로 성화시키는 그분의 놀라운 중생의 은혜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으며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이제 비록 현금과 퉁소 같은 악기를 발명한 것이 우리의 필요성보다는 우리의 쾌락에 기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 자체로서는 그다지 정죄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쾌락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인류 사회의 공통적인 유익과 잘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죄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음악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종교적인 목적에 채용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바람직하게 이용될 수가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사악한 도취에서 탈피될 때에 그리고 그 악기로 인하여 어리석은 기쁨을 추구하다가 결국에는 보다 건전한 이용에서 완전히 무가치한 허영심으로 사람들을 도취시키는 데서 해방되기만 하면 그런 보람 있는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런 현금 같은 악기가 발명된 것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지 않더라도 그것들이 그 당시에 목수의 정교한 기술의 이용도(利用度)가 얼마나 멀리 그리고 얼마나 폭넓게 뻗어나가고 있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그 인종이 다양하고 월등한 재주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의도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두 가지 사실이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장 객관성 있는 증거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장막에 거하는 자의 조상”이라고 하는 이름은 최초로 그런 편리한 것을 발명해낸 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모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편 인류에게 주신 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은혜의 혜택을 어느 정도 누리게 하신데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