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중국 조선족, [1945년 이후 중국 조선족,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17]
조선인들은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거류민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국공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 먼저 정권이 수립됨에 따라 조선인들은 북한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동북지역에 남을 것인지로 심적인 동요가 컸다.
신분문제는 정치적인 것 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와도 직결됐다. 중국공산당은 조선인들이 북한 국적자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중국 공민이라는 이중국적자의 지위를 부여해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조선인들이 국공내전에 참전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소속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중국공민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조선인들이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을 부인함으로써 이들의 감정을 자극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조선인은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의 일원인 조선족이 됐으며 중국 국적자가 됐다.
하지만 정부 수립 후 조선족 명칭이 공식화되는데 수년이 걸린 것처럼 조선족동포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완전한 국적자가 되는 데도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동북지역 조선종동포들이 전쟁에 참전하는 과정에서 다시 이중국적 문제가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는데 조선족을 위한 제도적 조치가 이루어지고 이를 구체화하는 행정조치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자치구 설립 후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들은 거류민증을 반납하고 일률적으로 중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치구 밖의 조선족동포들은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심양 등 동북지역 서부권의 국민당정부가 관할하던 수복구의 경우 조선인들은 1953년 말 경에 이르러 국적이 부여됐다.
중국공산당의 영향 하에 있던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해방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들에게 해방은 민족적 측면에서 일제의 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일반적 의미와 함께 반제반봉건적 생산관계로부터의 해방, 즉 소작농이라는 피착취계급에서 벗어나 토지를 소유한 생산주체로서 당당한 노동계급이 된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연변지역 등 중국공산당의 영향 하에 있던 조선인들은 해방 직후 중국공산당이 공유지에 이어 토지까지 분배한데 대해 크게 환영하고 나섰다. 중국공산당의 무상 토지분배 정책은 특히 국민당정부의 정책과 비교되어 조선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연변지역 등 해방 초기부터 중국공산당이 관할한 지역의 조선인들이 한반도로 귀환한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낮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고국에서는 물론 일제 치하에서, 그리고 땅을 찾아 이주한 중국 동북지역에서도 자기 소유의 토지를 갖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왔으나 해방 후 어엿한 토지의 주인이 됐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토지에 대한 개별소유를 집단소유 형태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조선족(인)이 토지 소유권을 부여받은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950년대 중반 중국공산당이 농업합작사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조선족동포들은 개개인이 소유한 토지를 합작사에 넘겨야했다.
토지를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형태를 바꾸기 위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추구함에 따라 농민들이 무상으로 분배받은 개인 소유의 토지를 수용해 공동 소유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해방된 후 한반도와 중국에 실체적이고 합법적인 정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조국문제가 단지 마음 속에 있는 그리움 같은 막연한 것이었지만 정권이 수립됨으로써 상황이 달라졌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과도기에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허용했지만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국가주의에 따라 국가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중국적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체제안정이 이루어진 195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조선족의 조국관 문제는 핵심 쟁점의 하나로 부각됐다.
참고서적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지음, 인간사랑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