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훈 토마스 신부
사순 제3주간 월요일
2열왕기 5,1-15ㄷ 루카 4,24ㄴ-30
같은 학교에서 십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공부하고 생활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젊음의 열정을 함께 불태웠고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던 친구들입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합니다.
화려한 대도시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친구도 있고, 한적하고 조용하지만 인심 좋고 가족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친구도 있고, 기관에서 좀 더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삶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들의 삶이 부러울까요? 그냥 너무 행복해서 투정하는 소리 같이 들립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내가 그들보다 못난 것이 무엇일까?’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듭니다. 내 자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늘어납니다.
나를 이곳에 보낸 사람이 원망스럽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평과 불만, 원망과 짜증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라는 악의 씨앗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를 잡습니다.
그 악의 씨앗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가려 버립니다.
내가 받아 누리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 복음의 나자렛 사람들 마음에도 악마의 씨앗이 자리를 잡고 싹을 틔웁니다.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삶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늘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제 그들은 악마에게 마음을 빼앗겨 예수님뿐 아니라 자신들까지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아 버립니다. 어둠이 그들을 뒤덮어 버립니다.
악은 어둠처럼 조용히 찾아옵니다. 그 세력은 빠르게 마음을 잠식해 갑니다.
어둠을 없애는 방법은 빛을 밝히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그리스도의 삶과 가치를 고민하고 묵상할 때
우리는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시기심 때문에 악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 주지 마십시오.
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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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신부
사순 제3주간 월요일
2열왕기 5,1-15ㄷ 루카 4,24ㄴ-30
한국에서 교포사목으로 오신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10개월 정도 늦게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먼저 온 선배로서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영화대사 중에 ‘살아있네’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신부님은 눈빛이 살아 있었습니다.
마치 물을 만나 물고기 같았습니다. 거침이 없었고, 걱정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요리도 잘하고,
본당을 소개하면서 앞으로의 계획도 이야기하였습니다.
신부님과 대화를 하면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부님은 예전에 호주에서 5년 동안 현지인들을 위한 사목을 하였다고 합니다.
영어에 어려움이 없었고, 외국 생활에서의 적응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준비된 교포사목 신부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님과 신부님께서 함께 하실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저도 16년 전에 캐나다에서 3년 지냈었습니다. 그 경험이 미국에서의 생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캐나다의 제도와 문화는 미국과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포사목 신부님들은 준비가 덜 되었어도 주교님의 인사이동에 따라서
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파리 외방선교회 신부님들도 조선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먼 길을 기꺼이 떠나올 수 있었습니다. 외모가 달랐고, 언어가 달랐지만
신부님들은 열정적으로 사목하였고, 순교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비록 말이 서툴러도, 문화의 차이가 있어도,
음식이 맞지 않아도 대부분의 교포사목 신부님들은 잘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파리외방 전교회 신부님들이 그랬듯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토비야가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천사 라파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협조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하면 엉킨 매듭이 하나둘 풀리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늘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 주셨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십자가의 무게를 견길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갈등과 분란은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을 믿지 않았습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선행을 베풀었던 사렙타의 과부는 기근 중에서도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겸손했던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사순시기입니다. 신앙의 길도 멀고 험난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감사드리며,
기뻐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 길을 충실하게 걷다보면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느끼며, 세상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동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희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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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사순 제3주간 월요일
2열왕기 5,1-15ㄷ 루카 4,24ㄴ-30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복음 4장 24절-30절 참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복음 4장 24절)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자처하시면서,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그들은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습니다.”(루카 복음 4장 29절)
이는 예수님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받으실 배척을 예고해줍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성문 밖으로 내몰리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밖으로 당신 구원이 퍼져나가게 될 것을 예시해줍니다.
곧 완고한 이스라엘 대신 장차 당신을 맞아들이게 될 다른 민족들의 교회를 미리 가리켜줍니다.
그러나 그분을 죽이려는 그들의 음모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습니다.”(루카 복음 4장 30절)
이는 당신이 수난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당신이 고난을 받으실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까닭입니다.
때가 되면, 당신께서는 수난을 스스로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몸소 당신을 내어주실 것입니다.
실로 당신은 원하시면 붙잡히시고, 나무에 달리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덕 위 벼랑에까지
그분을 떨어뜨리려 내몰아갔지만, 그들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시는 그분을
그 누구도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수난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완고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고집부리는 사울을 꾸짖을 때,
사무엘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사무엘 역사서 상권 15장 23절)
그러기에,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고집할 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신의 피조물인 자신의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우상을 벗어나야,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지, 하느님을 자기의 좁은 지식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완고함이야말로 불신의 씨요, 믿음이야말로 하느님을 끌어당기는 자석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은 완고함과 고집으로 형제를 불신하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를 믿음에로의 초대입니다.
주님! 오늘 제가 결코 당신을 배척하지 않게 하소서!
저에게서 결코 당신을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제 형제를 배척하는 바람에 당신을 배척해버리는 일이 없게 하소서!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루카 복음 4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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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원하시어 붙잡히시고 원하시어 빠져나가신 당신께서는
원하시어 고난을 받으시고 원하시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벼랑에 내몰려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셔야 할 길을
유유히 가시는 당신을 따라 유유히 걷게 하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바를 저도 원하게 하시고,
당신이 원하시면 저도 따라 걷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