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시집
시간, 역사 그리고 길
이동재(시인·소설가)
― 중앙문화협회, 『해방기념시집解放記念詩集』(평화당인쇄부, 1945)
― 고희수, 『시간은 그림자를 두지 않는다』(시와산문사, 2023)
― 전종호,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중앙〥미래, 2023)
― 차주일, 『합자론合字論』(포지션, 2023)
1
시는 시대의 감탄사다.
1945년 12월, 중앙문화협회에서 발간한 『해방기념시집』에 실린 시들보다 이 말이 더 어울리는 시들을 찾아보긴 힘들 듯하다. 중앙문화협회는 해방 직후, 2~3일 만에 임화와 이원조·김남천 등 구카프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에 맞서서 과거의 해외문학파 회원들과 민족주의 문인들이 결집하여 만든 단체였다. 결과적으로 이후의 한국 문학사에선 이 두 단체를 이 시기 우익과 좌익을 대변하는 문화 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나, 양쪽이 모두 내건 명분이 민족문화 건설이었음을 고려할 때, 또한 모임을 주도한 몇몇 인물들을 제외한 상당수의 당시 문인이나 예술인들이 거리낌 없이 양쪽 단체에 동시에 가입했던 것으로 보아서 이 구분은 후대의 편의적인 구분이거나 정치·이념적인 구분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해방기념시집』은 해방 후 최초로 발간된 사화집이자 좌우를 망라한 시집으로써 의미가 크다. 이 시집엔 정인보·홍명희·안재홍·이극로·김기림·임화·김광균·정지용·이용악·김광섭·양주동·이병기·오장환·조지훈 등 24명의 시가 실려있다.
이 시집은 “박히고 박힌설음 금강석도 뚫을랏다/황포강 여윌적이 어제런대 삼십육년/〈넉〉응당 오섯스련만 바라아득 하고녀”(정인보, 「」), “아이도 뛰며 만세/어른도 뛰며 만세/개 짖는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만세 만세”(홍명희,「눈물섞인노래」), “피무든 네날개우에/찰난한 보람 동터오노나/잃어진 내것을 찾어/거리로가자 항구로가자/혁명이여”(김광균, 「날개」), “아 기쁘다/하늘아/더놉고 더크고 더푸르러라”(김광섭, 「과」), “누아냐/이제 너도 눈물을 거두고/열두폭 남치마를 입어보렴/하-얀 보선발이 그립고나야/눈을 드러 저 푸른하늘을 보라/땅은 왼통 둥둥울린다”(이헌구, 「한노래」), “아아 우리의 안식과근면의/영원한 별이여!”(임화, 「길-지금은없는전사에게」), “오호 삼십육년!/그대들 돌아오시니/피 흘리신 보람 찬연히 돌아오시니!”(정지용, 「그대들 돌아오시니」), “아아 이 아츰/시들은 피ㅅ줄의 굽이굽이로/사늘한 가슴의 한복판 까지/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조지훈, 「의노래」) 식으로 해방의 감격과 흥분으로 가득차 있다.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 출신 흉상의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내 철거 문제, 그리고 그 철거를 앞장서 주장하며, 그때는 그럴 만했다고 이완용을 두둔하던 인물의 국방부 장관 임용, 일본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앞장서 옹호하고 있는 듯한 정부의 행태 등, 일본사람이거나 적어도 친일파정권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다시 펴든 『해방기념시집』은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의 의미와 남북 분단, 그리고 우리 사회의 괴이한 분열과 균열 현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시란, 시인이란 또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2
시는 근무일지다.
내게 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 일상적 삶의 근무일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은 인구의 17.5%가 65세 이상의 노인으로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으며, 2025년엔 인구의 20.6%가 노인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 2023년에 발표된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2021년 기준)로써 OECD 평균인 80.3세를 웃돌고 있다.
1936년 경성제대 위생학 예방의학 교실에서 작성한 민족별 평균수명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36.4세/여자 38.5세로, 독일 남자의 평균수명인 59.8세/여자 62.6세, 미국 남자의 평균수명인 남자 55.3세/여자 57.5세, 일본 남자 44.8세/여자 46.5세와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1934년 사망 당시 32살이었던 김소월은 평균수명보다 적게 살았으니 단명인 셈이었고, 1935년에 40살의 나이로 죽은 성해星海 이익상의 경우엔 장수였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평균수명이 83.6세인 시절에 80살을 미처 다 채우지 못하고 지난봄에 돌아가신 오탁번 시인의 경우도 요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초고령 사회를 1~2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 사회답게 문단에도 노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요절과 단명으로 생을 마감했던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 작가들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옆 침대 할머니
‘똥마려워똥마려워’ 소리가 병실에 울린다
구순의 세월이
제 몸에
부끄러움도
체면도 다 비운 듯
천진한 아이처럼 당당하다.
― 고희수, 「노을이 지는 시간」 부분
어지간히 나이 들어가는 시인의 시를 따라 읽고 있으면 어쩐지 씁쓸하다. “먼 산비탈/할아버지의 유택/평생 즐겨 신던 흰고무신처럼 국화 놓여 있다”(「향기를 신다」)와 같이 한 폭의 그림 같은 구절도 만나지만, 결국 “여자는 자신은 무연고 죽음이 될 거라고 한다.”(「미래를 보는 여자」)는 식의 우울한 예언을 만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났을 리가 없는 시골 마을에도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는 것이 요양원이고 양로원이다. 그러한 시대에 고희수의 시집 『시간은 그림자를 두지 않는다』에 실린 시들은 너의 주변과 노년이나 말년은 안녕하냐고 묻는 듯하다.
전종호 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난 후 임진강 가에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려는지 최근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여름 시집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에 이어서 곧바로 시산문집 『히말라야 팡세』를 출간했다. 둘 다 그가 평생을 몸담았던 교단이 아니라 교단 밖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아서 의외일 수 있다. 이전 시집에서 교직 생활의 편린이 담겨있는 시들로부터 좋은 느낌을 받았던 나로서는 살짝 아쉬움이 있으나, 자신이 몸담았던 울타리를 벗어나 한동안 다른 세상을 더듬고 다니고 싶은 충동과 그 필요성도 인정한다.
“산이 막고 물이 들이민다 해도/사람의 길은 언제나 다소곳이 열리고/올 사랑은 마침내 오고야 만다는 걸/숨 고르며 하루씩 빼기 하는 사람 중에서/산막이옛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산막이옛길」)는 시인이니 별걱정은 하지 않는다
풀씨처럼 가볍게 떨어져
바위보다 억센 목숨으로
안개 속을 뚫고 우리는
각자 자기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길은 보이지 않고
세상은 적막 속에 쌓여 있다
곁에 손 뻗어 잡을 벗 하나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외로움만이 벗이 되리라
― 전종호, 「길을 찾아서」 부분
오랜 공백기를 거쳐 다시 시를 쓰다 보니 ‘언제, 어디로 등단했냐?’는 식의 질문을 시인은 주위에서 자주 받나 보다. 그런 말은 놀라움의 표현일 수도 있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하는 호사객들의 객쩍은 질문일 수도 있지만, 과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등단지와 등단 연도를 넘어서 ‘당신은 순수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냐?’는 이상한 질문을 받기도 하는 것이 문단이니 말이다.
“스스로 혹시 남들에게 한 마디 또는 한 줄/마음을 적시는 시 한 줄 쓰면서”(「시인이라는 짓」) 사는 것이 시인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는 알고서 하신 건지 모르겠다. ㅋㅋ 절대 겸양으로써 할 말은 아니다. 시인은 결국 시 한 구절로 남는 사람이다. 그것도 좀 괜찮은 시인이나 가능한 일이다.
시가 돈이 되거나 더 이상 명예가 되는 시절도 아니지만, “물러나거나 멈추어도 죽는 길”(「멈추어야 할 때」)일지언정 차 한잔 할 동안만이라도 그간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세상의 온갖 허위와 더러움을 게워낼 수 있는 ‘마음속 암자’의 구실을 시가, 그가 쓰는 시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차주일 시인은 지난여름 시집 『합자론』과 산문집 『출장보고서』(포지션, 2023)를 동시에 출간했다. 산문집이라고 했지만, 산문시에 가깝다.
차주일은 상형문자를 처음 만든 사람이 사물이나 현상의 핵심을 꼼꼼히 들여다보듯이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데 공을 들이는 시인이다.
의 두 번째 획을 걸어 본 사람은 알았을까
움막에서 고인돌까지가 한 획인 것을.
큰길을 중심으로
지붕을 모으고 무덤을 모은 것이 문명이 아니던가.
심방과 심실을 점으로 기호화한 사람은 알았을까
한 점으로 오므린 내 손끝의 높이가 달라
사람의 노래마다 음높이가 다름을
한 송이 꽃잎마다 지는 날이 다름을
오므렸던 손가락을 편다.
마음을 거쳐간 모든 게 씨앗으로 여물었다.
― 차주일, 「」 부분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여 글자화 하는 상형, 그리고 상상력을 확장하여 회의와 형성으로 이어지는 한자의 형성 과정은 그 자체가 시인의 작업이라 할 만큼 닮은 데가 있다. 시인은 한자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했을 법한 행동을 역순으로 풀어가고 있다.
시인은 곳곳에서 상형문자를 해부하듯 시어를 고르고 다듬어 뼈에 새기듯이 옮겨놓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모든 걸 한 획으로 마무리하려는 듯 보인다. 사실 무기물에서 유기물까지가 한 획이고,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까지도 한 획이다. 윤석열을 찍은 손가락과 윤석열을 찍어낼 손가락까지도 따지고 보면 한 획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사고나 의식의 과잉이다. 이미 시인은 “평소 떠오르지 않던 모티프가 육체노동을 하면서 밀려든다. 이 철없는 축복은 리얼리티가 부족한 나의 정신노동이 특별하지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라고 한 것처럼 스스로 그 문제점을 알고 있다. “내 손은 삶과 너무 먼 곳을 더듬고 있다.”(「손의 미늘」)는 사실을.
3
시는 역사다.
시는 서사인 역사가 아니나 점이 모이면 선이 되듯이 시가 모이면 역사가 된다. 시인 개인의 역사도 되고 한 사회의 역사도 된다.
시인은 사소한 자신의 일상과 그 일상에서 건져 올린 몇 구절의 말을 한 시대의 상징으로 밀어 올릴 수 있는 희유의 존재다. 해방공간에서 어렵게 빛을 본 육사와 동주의 유고 시집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 몇 구절을 감당할 수 있는 그 개인의 진정한 서사가 없이는 시가 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해방기념시집』에 실린 시에서 홍명희는 해방 직후 개 짖는 소리도, 닭 우는 소리도 모두 만세 소리로 들렸다고 했다. 나는 요즘 대통령이 하는 소리도, 국무총리나 일국의 장관들이 하는 소리도, 사욕에 눈이 먼 국회의원들이나 판검사,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 나와 뭐라 떠들어대는 교수나 백수 년을 살았다는 왕년의 노철학자, 그리고 기레기들이 하는 소리도 다 개소리로 들린다. 고로 요즘 내가 쓰는 시나 글은 모두 개소리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그 속에 인간이 걸어온 길이 있고, 또 걸어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그 안에 있을지 모른다.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이 펼치고 있는 광란의 춤판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시가 그런 인간들에게 지금 일침을 가하지 못한다면 그런 시를 써서 뭐할 것인가?
시가 단순한 개인의 신변잡사나 쓸데없는 사고의 과잉에 불과하다면, ‘시나 소설 따위를 읽어서 뭐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시인이나 작가들은 뭐라 대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