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2020.8월호 70쪽 ~71쪽
동아줄
황지민 님(가명 ) 경기도 남양주시
한참 일할 나이인 사십 대에 등 떠밀리듯 회사에서 나왔다.
권고 사직 이었지만 실상은 일방적인 해고 통지였다.
그간 회사는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각종 수당이 반 토막 나고 퇴직이 빈번했다.
책임감이 강한 나는 일중독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실하게 일했다. 주말도 없는 삶이었지만 번듯한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었다. 밀려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십수 년 회사 생활의 끝이 이렇다니!
지난 삶을 부정당하는 듯 했다. 회사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순간순간 가슴에 울화가 치밀었다.
내 낯빛이 어두웠는지 아내가 몇 번이나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털어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내와는 중매로 만났다. 아내의 온화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아내 역시 적잖은 연봉을 주는 내 직장이 싫진 않았을 것이다
그간 우리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했다.
하지만 퇴사로 우리 사이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불안 요소가 생겼다.
빨리 다시 취업해서 아내에게 '나를 더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옮겼다 '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능력이 부족해 권고사직을 당한듯
보이고 싶진 않았다.
퇴직한 후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퇴직금과 위로금으로 매달 월급 날에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었다.
처음 한동안은 카페에서 구직 활동에 전념했다. 나이 때문인지 퇴직 때문인지,
금방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현실은 냉담했다.
반년이 지나도 취업이 안 되자 장사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직장에만 다닌 지라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자신이 없었다. 실직 상태가 계속 되면서 자신감이
줄고 스트레스와 압박은 커졌다. 퇴직금이 줄어드는 걸 보며 피가 바짝바짝 말라갔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속마음과는 달리 짜증과 화를 내는 일이 늘었다.
어느 주말에 아들이 놀이동산에 가자고 유난히 졸랐다. 지금껏 일이 바빠 함께해 주지 못해
미안한 터라 선뜻 그러자고 했다. 한데 아내가 어쩐 일인지 아들의 부탁을 단칼에 잘랐다.
가겠다는 나와 다음에 가겠다는 아내 의견이 맞부딪혔다,
평소 내 의견을 존중해 주는 아내가 그날은 고집스러웠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아내에게
잔뜩 성질을 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간 감정을 가라앉히고 거실로 나가니 아내가 방에서 아들을 타이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요즘 많이 힘들어요 . 마음도 좀 아프고 , 놀이동산은 아빠 마음이 낳은 뒤에 가면 어떨까?"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다 알고 있었구나! 언제부턴가 아내가 출근한다며 집을 나서는 내 손을 무심히 몇 번 잡아 주었다.
외식하자던 평소와 달리 '당신이 좋아하는 꽃게 찌개 해 놓을 테니 일찍 들어와 ' 라는 말도 자주했다.
그날 밤 아내를 밖으로 불러냈다. '나 퇴직한 거 알고 있었지? 아내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말 못해서 미안해 ' '아니야 당신이 더 힘들었을 텐데. 얘기 해줘서 고마워. 앞으로 취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시간에 쫒기지 말고 천천히 알아봐. 당분간은 내가 버는 걸로 생활하면 되잖아.
그동안 힘든 회사 생활하느라 고생 많았어' 회사에서 내게 온 우편물을 모아 집으로 보내 주었단다.
그걸 받고 눈치챘다고 . 아내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 아내는 내 상황이 바뀌어도 계속 믿고 기다려주었는데
,나는 아내가 나를 선택한 이유를 '좋은 직장' 이라고 만 여긴 것이다. 퇴사로 우리 관계가 흔들리면 어쩌나
고민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늘부터는 아빠가 회사 쉬니까 재밌게 놀아 달라고 하자. ' 다음날 아침, 꿈결처럼 들리는 아내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아들이 신 나서 폴짝거렸다. 아내와 아들을 부둥켜 안으니 끝까지 나를 믿고 응원할 든든한 동아줄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