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의 추억>
오늘 뉴스 보니까 군부대에서 월동 준비한다고 그러더군요.
저도 월동준비용 고구마 몇 자루 사다가 습기 좀 말린다고 현관 전실에 헤쳐 놨더니
든든합니다.
고구마 ! 옛날엔 월동 준비에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어릴 적 10월 하순쯤이면 가을걷이 다하고 맨 나중에 김장 배추 한 150폭 절여서
김치에 동치미에 깍두기, 총각김치 대 여섯 독 담아서 부엌 뒷 겉에 땅 파고 석가래
엮어 세워 이영으로 가림 막을 씌워 김치 광에 묻어 놓고,
헛간에다 소먹이로 볏 집, 콩깍지, 고구마 줄기, 쌀겨 쌓아놓고
양지바른 봉당에 장작 패서 가지런히 보기 좋게 쌓아놓고, 불쏘시개로 소나무 삭정이
뒤뜰 쌓아놓고, 건너 방에 쑥대 통가리를 세우고 고구마 열 댓 가마 쟁여 놓으면....
월동준비 끝! 올 겨울은 등 따시고 배불리 먹겠다. 부자가 부럽지 않고 든든했지요.
그 중 고구마는 어린 우리의 참 좋은 먹 거리 이였어요. - 요즘 피자, 햄버거 저리가라죠
<그래서 전 그 당시 피자, 햄버거 한 번도 사 먹어본 일 없었지요-사실은 그런 게 있는 줄
도 몰랐지요.>
엄마 샘에 물 길러 간 사이 군불 때다 건너 방에 가서 고구마 자잘한 것 골라다가 아궁이
한옆에 넣어 구어 먹기도 하고 동지섣달 긴긴밤에 뭐 할게 있나요?
지금처럼 TV도 없고 인터넷은 더 더군다나 없고, 해가지면 일찌감치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 민요, 고춘자 장석팔의 만담, 연속 극, 전설 따라
삼천리 ...도 들으며 말며 어린 형제들이 무단히 싸우고 지지고 복고하며 또 한 옆에서는
숙제한다고 침침한 석유 등잔불 밑 소반 위에 엎드려 대충 끼적거리다가 이웃에서 마실 오신
어른들 하나마나한 얘기, 맨 날 한 얘기 또 하는 것 귀동냥도하고 그래도 시간은 아직도 초저녁,
심심하기도 하고 배도 출출 하니 이것저것 주전부리도 하고 윗목 한켠에 들여 놓은 놓은 화로
불에 고구마 몇 개를 구워먹지요
그런데 고구마를 화로에 한꺼번에 너무 많이 넣으면 화로 숯불이 금방 시들어서 어른들께
혼나기도 했어요.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 어릴 적엔 뉘 집이나 보통 애들이 대 여섯은 되니까
영양가나 몸에 좋고 나쁘고 는 따지지 않고 배불리 먹여 주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누에치는 걸 봤는데 누에가 성충에 되면 뽕나무를 가지채로 따다 주면 마치 소나기
오는 소리를 내며 정말 놀랍게 먹어치워 나무 가지만 남겨 놓는 것처럼 집에 있는 먹 거리는
남아나는 게 없지요.
방학이 되면 진종일 집에서 먹어야 되니까 엄마가 큰 가마솥에 고구마, 술 빵을 쪄서 양재기에
담아 놓으면 이놈 저놈 쥐 방구리 드나들듯 가져다가 먹고 ,목마르면 동치미 퍼다 먹기도 했어요.
동치미- 잘 익어서 약간 곱이 뜬 국물을 한 수저 입에 떠 넣으면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일품입니다.
좀 더 큰 고구마는 쭉쭉 옆으로 삐져서 석쇠에 올려놓고 타지 않게 뒤적거려 구우면 허옇고
노릇노릇하게 구어저서 먹을 때 손에 검은 재도 안 묻고 좀 더 고급스런 먹거리가 됐습니다.
때론 고구마를 눈에 파묻었다가(냉장고가 없었으니까) 날걸로 까서 먹어도 별미였죠.
그 당시 고구마,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처럼 호강스럽게 다이어트 식품이 아니고
사실 반양식이었죠.
겨우내 내 먹던 고구마, 좋아서 맨 날 먹었겠어요? 먹은 게 변변찮으니까 배가 출출해서
먹지요. 밥 말고 다른 것 뭐 먹을 게 있었나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 당시 보통 부모님들은 자식이 생기면 낳고 대책 없이 많은 자식
키울 걱정을 “저희들 먹을 것은 타고 나온다”고 에둘러 체념하셨지요.
고구마 감자가 됐든 깡 조밥, 꽁 보리밥이 됐든 배곯지 않게 하는 것만도 너무 벅찬 과제였습니다.
이런 시린(?)추억이 있는 고구마!
어릴 적 고구마는 돈 주고 사고파는 게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사람들은 너무 잘 먹어서 성인병이다 뭐다 하여 탈이라고 거꾸로 우리 어릴 적 할
수 없이 먹던 풀뿌리, 채소, 보리밥 등이 인기인데 그중 고구마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다고 하여
수요가 많으니 엄청 비쌉니다.
이 비싼 고구마를 전 어제 몇 박스 사놓았더니 그야말로 든든합니다.
그것도 그냥 고구마가 아니고 속이 노란 호박고구마 고구마는 제 아침밥이거든요.
벌써 몇 년 째 아침엔 멸치 육수에 묵을 말아서 고구마 두세 개, 사과 반쪽을 먹어요.
과체중에 콜레스테롤과 고지혈을 치유하고자 해서 시작했는데 습관이 되니까
맛도 좋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고구마 사다놓고 문득 생각나는 추억을 몇 자 적어봤습니다.
첫댓글 굿.....어쩌면 이리 글을....
잘 쓰셔요....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공감해주셔서감사합니다
오늘같이눈오는 날군붍땐 아궁이에고구마 구엉억으면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