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8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마태오 9,14-17
청바지 차림의 한 신사가 은행의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는 사업상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은행에서 의논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마침 담당 직원이 외근 중이라서 만날 수가 없었고, 해당 부서에 상담해 줄 지점장도 제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앉아서 기다렸지만, 여전히 상담해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다시 오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이야기 하는 여직원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일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여직원에게 자동차 주차권 확인 도장을 좀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탁을 했는데, 여직원은 정중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와서 저금을 한 것도 아니고 인출 한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하신 일이 없기 때문이 찍어 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은행의 방침이고 규칙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 신사는 아주 불쾌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와서 150만 불을 모두 인출 해 갔습니다.
그는 IBM회장이었던 존 에이커스라고 하는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융통성이 없고 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은행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은행 여직원은 회사의 방침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회사에 커다란 손해를 주었습니다.
만약 이 직원이 진정 회사를 위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방침대로만 했을까요?
회사의 고객을 위해서 더 친절하고 융통성 있게 주차도장을 찍어주지 않았을까요?
사실 회사의 방침보다도 더 소중히 생각해야 했던 것은 고객이었습니다.
회사법을 잘 지킨다고는 하였지만 회사법은 모두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다면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일 저녁미사를 하는데 청년미사시에 옆 사람과 손을 잡고 하기도 하고 손을 위로 올리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로 할 때 지금까지는 손을 잡고만 했는데 저의 허락도 없이 사회자 청년이
“옆 사람들과 손을 잡고 위로 올려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놀랐고 신자들도 약간은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그 말에 따랐고 신자들도 따랐습니다.
그 청년 자매는 끝나고 나서 그 멘트를 아예 써 놓아 다음 미사 때부터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그 청년이 매우 예쁘게 보였습니다.
성당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창의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미사를 사랑하기에 사제의 허락까지도 물어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도 오늘 미사에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만약 주일미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시어머니가 배가 좀 아프니 병원에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주일미사에 빠지는 것은 대죄이기 때문에 먼저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하며 성당에 다녀와서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고 합니다.
사실 이 며느리는 교회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사를 하는 이유가 미사를 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사를 통해 배운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데 그 최종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계명은 미사에 나오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라고 하신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삶이든 신앙이든 경직되는 이유는 핵심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단식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예수님과 함께 있다면 혼인잔치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단식이 좋다고 명절에 단식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 이유는 모든 핵심이 바로 사랑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발효가 되면서 가스가 나옵니다.
따라서 헌 포도주 부대에 넣으면 터져버리거나 맛이 없어집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가스도 빠지지 않으면서 터지지도 않아 맛있는 포도주가 됩니다.
그렇게 말랑말랑 부풀어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안에 들어오는 포도주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의자 디자이너는 수많은 의자의 디자인을 해서 상을 받았습니다.
기자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의자의 디자인이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느냐고 놀라워하였습니다.
그 때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의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앉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결국엔 의자가 만들어지지만, 생각부터 유연했던 것입니다.
경직된 사람들은 초보입니다.
핵심을 이해합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할 때 단 하나의 핵심만을 머리에 넣어두면 나머지 작은 규칙들은 무시하고 살아도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니 하나만 알면 나머지까지 다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 즉 모든 것은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말랑말랑해 지는 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7월8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마태오 9,14-17
하수(下手)에게는 인생 자체가 고해(苦海)겠지만 고수(高手)에게는 삶이 온통 호기심 천국입니다!
가끔 피정객들을 위한 요리를 하면서, 정말 기분 좋을 때가 있습니다.
피정 오신 분들께서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입니다.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칭찬하고 정말 잘 먹었노라고 감사를 표할 때입니다.
차린 음식을 잘 먹어주는 것도 큰 사랑의 실천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반대로 숱한 고민을 하면서 정성껏 식단을 짜고, 허리 휘도록 움직여서 이런저런 음식을 잔뜩 차려놓았는데, 깨작깨작 먹는다든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젓가락으로 뒤적뒤적 거린다면, 음식을 준비한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속상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육화 강생은 어쩌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인간 각자를 향해 준비한 산해진미로 가득한
풍성한 잔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도래로 인해 이제 구약시대는 종결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신약시대는 한 마디로 잔치의 순간입니다.
축제와 환희의 기간입니다.
이토록 흥겨운 순간, 보속과 단식, 눈물과 통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토록 은혜로운 기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잔치를 만끽하는 것입니다.
흥겹게 춤추며 잔치를 즐길 일입니다.
이런 전후 사정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오늘 복음에서 지금은 단식할 때가 아니다,
언젠가 그럴 때가 올 것이니, 그때 가서 단식하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잔치를 즐기고 축제를 만끽하라는데 즐길 구석이라고는 쥐뿔도 없는데
뭘 즐기라는 거냐?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많은 즐길 거리로 가득 차 있는지 모릅니다.
하수(下手)에게는 인생 자체가 고해(苦海)겠지만 고수(高手)에게는 삶이 온통 호기심 천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새 포도주이자 새로움 중의 새로움이신 예수님, 너무나 특별하신 예수님이시기에 그분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한다면 가급적 많이 비워내야만 합니다.
기존의 인생관, 과거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들,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인간적 가치들, 변화무쌍한,
그래서 세월의 흐름 앞에 어쩔 수 없이 빛을 바래가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이탈시키면 시킬수록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께서 더 많이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결국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더 크게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지금보다 자세를 훨씬 더 많이 낮춰야만 합니다.
더 큰 겸손의 덕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있을 때 잘 해요>
2023. 07. 08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마태오 9,14-17 (단식 논쟁 - 새것과 헌 것)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있을 때 잘 해요>
지나간
사람에게
헛되이
매이지 말고
다가올
사람에게
뿌연 꿈
두지 말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온 몸 온 맘을
쏟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해야만
삶 가운데에서
함께 하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기꺼이
될 수 있답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