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2천 년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야인이 되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이 댄스학원을 찾는 일이었는데
잠실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댄스학원,
한 달에 30만 원씩 내고 2년을 교습받았다.
그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게 하루의 운동량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원장이
"사장님, 이젠 실전을 해보셔야지욧."
"실전?, 그거 어디서 하는데요?"
"워커힐 아래에 무도장이 있어요, 거길 가보세요."
큰맘 먹고 거길 찾아가 두리번거리는데
어느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한 번 추실까요?"
순간 당황할 수밖에, 그래서
"아아 네, 저는 친구 만나러 왔어요!"
하고 황급히 거길 빠져나왔던 거다.
이 이야기를 원장에게 했더니
"아이구우, 사장님이 큰 결례를 했어요.
잡아드렸어야 지욧!"
그래서 뒷머리가 스멀거렸었다.
허나, 이게 기본기가 되어
카페에서 댄스 동호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 옛날이여 / 댄스
김 난 석
어제는 가족 나들이를 마치고 저녁 무렵
댄스 동호회 모임에 들려봤다.
얼마 전 탁구동호회 창단 1주년 기념일에
댄스동호회 회장과 총무 두 분이
모두 방을 비워놓고 왔다기에 하도 고마워서
답방을 겸한 나들이를 한 셈이다.
봄 가뭄을 풀어주는 듯 비가 오락가락하여
바짓가랑이가 젖어 추적거렸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발걸음은
그에 아랑곳할 것도 없이 무도장으로 내달았다.
플로어를 지나 회원들이 모여 있는 부츠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눈빛들이 선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동호회나
탁구동호회 모임에서 이미 뵈었던 분들이
대부분인 때문이었다.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버이를 사랑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이는 없다.
자라면서도 어머니 아버지요 커서도 어머니 아버지요
자식들을 다 여의고 나서 허리가 한참 휘어진 뒤에도
어머니요 아버지를 부르고 그리워하기에 말이다.
그런 우리들의 어머니요 아버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여기에 성성하게 모여든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내 어버이가 있음을 뜻하며
그 어버이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거룩한 존재다.
내 어버이만 그런 게 아니라
남의 어버이도 이치는 마찬가지다.
비록 검버섯에 주름살을 훈장처럼 새기고
손등은 솥뚜껑처럼 무뎌졌지만
우린 그런 얼굴과 손의 모습을 그리워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그들은 누구에게 의지할 것도 없이
서로 어울려 외로움을 달래며
그들의 어머니요 아버지를 떠올려보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고유의 춤은 허공을 향해 휘젓는
손끝에서 풍기는 아스라한 여운이 일품이다.
하지만 서양 춤인 댄스는 뭐니 뭐니 해도
손맛이 제일이라 한다.
잡아당기는 듯 밀어내고 밀어내는 듯 잡아당기되
가슴 사이로는 열정과 서늘한 바람이
함께 통하도록 길을 내놓는
이체(二體) 이심(二心)의 고추 섬 속에서
손끝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게 그것일 테다.
뒤집어 말하면 손맛은 역시 댄스라고 하는 이치다.
홀로 추면서 손끝으로 허공을 한껏 휘저어보기도 하고
둘이 추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손끝으로 느껴보는 것이라면
손으로 하는 재미가 그보다 더 좋기도 쉽지 않을 성싶다.
서툰 솜씨로 이손 저손을 잡아보면서
고왔을 시절도 상상해 보고
따뜻했을 시절도 상상해 보다가
때로는 그 손으로 하 많은 눈물도 훔쳐냈을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안내하고 돌아서니
비에 젖은 바짓가랑이도 열기를 받았던지
어느새 다 말라버렸다.
그러하매 누가 저들의 모습에서 꽃만을 보려 하는가.
저들의 뒤에 숨어있을 사랑과 헌신의 허공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불가(佛家)에는 염화미소라는 말이 전해온다.
영취산에서 석가가 설법을 하던 날, 그분은 설법 대신
들꽃 한 송이를 쳐들어 보였다고 한다.
많은 청중들은 석가의 손에 든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의아해했다지만
청중 가운데 제자 가섭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니
석가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한다.
염화미소는 이렇게 석가와 가섭이
미소의 대화를 한 것을 이름이요
이렇게 해서 석가와 가섭 사이에 진리를 소통하는
이심전심이 이루어진 셈이겠지만
그 둘 외에 석가가 꽃을 든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다.
다석(多夕) 유영모는
이 수수께끼 같은 불립문자의 뜻을 이렇게 설파한다.
' 여기 이 꽃은 꽃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꽃 밖의 허공을 보라는 것이다.
꽃과 허공이 마주치는 아름다운 곡선을 보고도
꽃만 보고 허공은 못 보았다고 한다.
꽃 테두리 겉인 허공에는 눈길조차 주려하지 않는다.
꽃을 있게 하는 건 허공이다.
꽃이 있는 것은 허공을 드러내 뵈자는 것이다.
요즘에는 허공이야말로 가장 다정하게 느껴진다.
허공을 모르고 하는 건 모두가 거짓이다.
허공은 참이다.
절대자 하느님이다.
무한대한 허공이나 마음속의 얼은 결국 하나이다.'
(‘다석 어록’ 중에서)
흔히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려 한다고 나무란다.
총명함이 그러할진대 어찌 달 뒤의 허공을 볼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남성에겐 여성이 꽃이요
어제는 꽃구경을 많이도 했으니
이번 보름날엔 한적한 교외로 나가
누가 가리키는 것을 따라 할 것도 없이
잠시라도 꽃 뒤의 먼 허공을 바라보아야겠다.
(2007년 봄날에)
이번엔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라
댄스동호회 회장 소리 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거다.
그네는 우리 카페 초창기에 용띠방 방장을 오래 했다.
그러다가 댄스방 방장을 오래 하고 있는데
어느 겨울비 오는 날 댄스방 창립 기념식을 한다기에
찾아가 봤다.
영등포 시장 어디라던데
영등포 시장까지 찾아가 와인 두 병을 사 들고
물어 물어 댄스홀에 들어갔던 것이다.
반가이 맞아주기에 와인 두 병을 선물하고,
덕담을 들려달라기에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여러분, 역사는 참여하는 자의 몫이요
댄스는 둘이 손 잡고 추는 자의 것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많이 즐기시기 바랍니다."
나는 소리 여사와 댄스방에서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다만 카페 초창기에 나는 운영자를 했고
소리 님은 카페전체행사에서 사회를 도맡아서 했는데
행사를 미끄럽게 진행했기에 마음에 들었을 뿐 아니라
행사 때마다 새 한복을 차려입고 나섰으니
그 옷값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게 궁금했던 거다.
카페 행사비 정산내역에 사회자 옷값으로 들어간 게 없고
필시 개인이 부담한 게 틀림없으니
그래서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 터에
댄스방 창립일 축하장에 찾아봤던 거다.
남성 휴게실의 신사님들 이시여!
카페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가집시다.
* 포스팅은 사회자로 나선 모습의 소리 님이다.
첫댓글 사진의 맨 왼쪽에
마이크를 들고 계시는소리님은
지금도 열심히 활동 잘하고 계시는데
꽃다발을 받고 계시는 조약돌님은 카페를 떠나셨고
이미 꽃다발을 받으신 진주사랑님은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 뒤로 복수초님과 지인님 얼굴이 보이고 조약돌님 뒤에 저도 있네요.
언제 사진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진주사랑님의 모습이 있는걸로 봐서 5~6년은 되지 않았나 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잠시지만 옛날로 시간 여행을 했습니다. 소리 방장님과의 좋은 인연 오래 오래 이어 가세요..
남성휴게실인고로 주인공 소리 님 외에 산애 님에게 포커스를 맞춰 캡쳐 한 사진인데
반가운 모습들입니다.
석촌님의 여성편력으로 불리우는 짝사랑은 언제 까지나~ㅎㅎ
짝사랑이라기보다 어울림인데,
카페에 남아있는 동안만이겠지요.ㅎ
이번에는 댄스장에서 만난 여성편력 이군요 ㅎ
저는 댄스 배울 기회도 없었고 또 워낙 몸치라 남들이 추는 거 볼때면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석촌님은 댄스의 묘미를 적 나라 하게 묘사 하였습니다
저도 시늉만 냅니다.
제가 젤 부러운 사람이 춤 잘 추는 남자입니다.
이유는
1. 키크고 잘 생겼다.
2. 여성에게 매너있다.
3. 예쁜 여자 선택한다.
4. 맛있는 요리와 고급 술을 품격스럽게 즐긴다.
5. 돈 있다. 없으면 생길 것 같다.
6.세상 걱정없고 짜증 내지 않는다.
7. 언제나 즐거운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어간다.
아 ㅡ 그런 사람 너무 부럽다......
그런게 남성들의 로망이겠네요.
저와는 많이 빗나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