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지에 있는 동안 가장 오래 출석했던 한인교회의 담임목사는 주일예배 입례송으로 새찬송가 620장을 불렀다. 가사가 매우 은혜롭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도 매우 좋아했고 나 역시도 좋아했다. 그런데 그 교회가 13년전 갑자기 교회에 분란이 발생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담임목사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천여명되는 출석교인들을 통제와 조절을 적절히 하는 능력자였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결국은 일부 신자들을 은혜로 이끌지 못하고 분노심을 심어주고 말았다. 교회는 언제나 시험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교회가 평안하려면 지도자들의 끝없는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는 희생에 약한 단점이 있다.
한국에서 스스로 개척해 20년 가까이 목회를 하던 나로서는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살벌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파악된 바로는 담임목사의 리더십이 너무 강하다보니 발생한 터이라 담임목사가 조금만 양보하면 수습될 문제라 생각됐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강한 자들의 단점은 절대로 자신의 강력함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주 입례송으로 부르던 "여기에 모인우리"의 가사가 무기력하게만 보여지는 현실이었다.
여기에 모인우리 주의 은총받은자여라
주께서 이자리에 함께 계심을 아노라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따라가리니
시험을 당할때도 함께 계심을 믿노라
후렴1,2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어둔밤에도 주의 밝은빛 인도 하여주신다.
안타깝지만 신자들이 시험을 당하면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사역기간중 잠시 담임을 했던 교회역시 기존 신자들과 새로 전입한 신자들 사이의 알력이 발생했고 그 원망이 담임목사에게 향하는 경험앞에서 나로서는 중립을 지켜야 했고 그러한 태도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별도로 자기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지금와 생각하면 내가 더 내려놓지 못했음을 숨길수 없다.
그때는 나는 죽고 오직 주님만 살아야 한다는 실천신학을 터득하지 못할 때 였다. 어쩌면 지나온 세월에서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 때가 됐을 때 나에게 들려진 "내가 죽으면 내안에 예수가 산다"는 진리가 빛을 발할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오랫만에 성가대가 찬양하는 여기에 모인 우리 찬양을 들으며 십수년전의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