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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여왕 그리고 젊은 하인의 관계에 대해 지금의 역사가들도 뭐라 규정짓기 어려워합니다. 여왕이 서거한 후 왕실 사람들은 두 사람 관계를 밝힐 만한 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으니까요. 그러나 여왕에게 그는 친구이자 연인이며 때로는 아들 노릇을 하던 소중한 존재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압둘 카림은 1863년 북인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여느 인도 부모처럼 교육열이 뜨거웠죠. 다양한 언어를 배우게 하고 북인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여행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합니다. 압둘 카림은 아그라 감옥을 관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가 곧 영국 여왕과 운명적인 만남을 할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죠.
빅토리아 여왕은 1887년 식민지인 인도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여왕은 인도 문화나 종교에 큰 호기심을 품고 있었고 즉위 50주년을 기리는 황금 주년 연회를 맞아 인도인에게 서빙을 하도록 지시합니다. 아마 자신이 만든 식민지에 대한 과시욕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날을 위해 간택된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인도인 하인, 압둘 카림입니다.
1887년 6월 23일 영국 윈저성에서 두 사람이 만납니다. 압둘 카림의 성실하고 침착한 태도에 흡족한 마음이 든 여왕은 카림과 대화하기 위해 힌두어를 배워보기로 결심까지 합니다. 인도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면 그들의 언어로 인사하는 호의를 베풀고 싶었던 겁니다. 압둘 카림은 영어를 배우는 동시에 여왕에게 인도어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여왕과 친밀해진 압둘 카림은 여왕의 개인 비서 자격을 얻으면서 궁정의 하인 중에서도 지위가 오르기 시작합니다.
여왕의 고문이자 역사학자였던 수실라 아난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기술합니다.
“여왕은 카림을 다른 인도 하인들의 상사로 지명했다. 그녀는 일기에 카림을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지속적인 칭찬의 글을 썼다. 심지어 압둘을 두고 ‘나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단 하루도 비서 없이는 지낼 수 없는 그런 소중한 사이가 됐다.”
그렇지만 여왕과 식민지 하인과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왕실 구성원들은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합니다. 여왕이 순수한 마음으로 인도인 하인을 곁에 두었더라 하더라도 노년의 여왕과 젊은 인도인 하인은 추문이 일어나기 좋은 관계였던 겁니다. 실제로 나라 안팎에서는 여왕이 노년에 치매로 40세나 어린 하인에게 반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여왕은 이런 소문에도 개의치 않고 모든 공식 여행과 휴가에 압둘을 동행시킵니다. 게다가 여왕은 압둘에게 그의 고향인 인도에 넓은 땅도 하사합니다.
<빅토리아와 압둘: 여왕의 가장 가까운 남자 이야기>의 저자인 샤라버니 바수는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확실히 단 한 번의 밤은 함께 보냈을 것”이라며 “그 일은 스코틀랜드 휴가 중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두 사람이 보통의 남녀 간 사랑은 아닐 거라 선을 긋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같은 유대관계에 플라토닉한 사랑이 한 방울 첨가됐을 거라는 묘한 추측을 내립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죽기 직전까지 압둘에게 의지합니다. 그녀의 장례식에 그를 주요 애도자로 내세우죠. 애도자란 영국 군주의 장례식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입니다. 이런 영광은 일반적으로 왕실 가족이나 귀족 중 친구에게만 주어집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압둘에게는 곧 비극이 닥칩니다. 왕실 구성원들은 가차 없이 그를 윈저궁에서 쫓아냅니다. 게다가 경비병들을 시켜 그의 집에 여왕과 압둘이 나눈 서신들을 찾아내 즉시 불태우게 합니다. 편지를 불태운 후 압둘의 가족들에게 즉시 잉글랜드 땅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여왕과의 관련된 일을 발설할 시 그의 가족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을 하죠.
압둘 카림은 아내와 함께 인도로 떠나 빅토리아 여왕이 하사한 아그라 근처 땅에 정착합니다. 그러나 여왕이라는 큰 존재를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얼마 있지 않아 46세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여왕과 나눈 편지나 기록을 없애고 평생 입막음을 했으니 123년 전 대영제국의 통치자 빅토리아 여왕과 인도에서 온 하인 압둘의 이야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신분과 인종 그리고 나이를 넘어선, 사랑과 우정 사이 같은 이야기는 2017년도 영화 <빅토리아 & 압둘> 같은 동화로만 남게 됩니다.
-펌글
첫댓글 귀한 자료 감사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자'로 보이는 곳이 있어서 남들 몰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983년"은 "1837년"이 아닌지 확인해 보셔요.
예~ 1837이 잘못되었었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