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만난 정순택 대주교 “이동권 예산 위해 목소리 높이자”
지난 2월, 종교 지도자들 “이동권 해결 위해 종교계 협력”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도 처참한 수준
다시 종교계에 호소한 전장연
천주교 첫 응답… “국민 공감대 함께 이뤄 나가자”
정순택 대주교가 면담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10일 오후 4시,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의 면담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보를 위해 “우리가 정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계와의 면담은 올해 2월, 국회의원 연구단체 ‘약자의 눈’을 통해 처음 이뤄졌다. 당시 전장연은 정순택 대주교(2월 24일),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3월 2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3월 15일)을 차례로 만나, 이동권 시위에 대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 자유로운 이동권을 위한 종교계의 협력 노력에 대해 뜻을 모았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정순택 대주교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그러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종교계와 장애계가 뜻을 모은 취지가 무색해진다.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예산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꼽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특별교통수단의 서비스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7월 19일부터 특별교통수단을 24시간 이용할 수 있고, 인접한 시·군을 넘나드는 광역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특별교통수단을 운전할 ‘기사님’이 없다. 시행령 개정 전부터도 운전원이 부족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평균 2~3시간 동안 대기해야 했다.
전장연은 현실이 법을 따라잡기 위해선 차량 1대당 16시간 운행(8시간 근무하는 운전원 2명)을 할 수 있도록 인건비를 포함한 3,350억 원의 예산이 내년에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운전원 인건비를 제외하고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일부만 반영된 470억 원이 내년도 예산안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올해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은 237억 원이었다.
시외이동권 예산도 지난 5년간 꾸준히 삭감되는 추세다.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한 버스를 도입하는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예산’은 2021년에는 10억 원, 2022년에는 2억 원으로 삭감되다가, 올해에는 5억 원으로 소폭 올랐다. 하지만 내년에 3억 5천만 원으로 다시 삭감됐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면담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이에 전장연은 지난달 25일, ‘제54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전개하고 다시 한번 종교계에 호소했다. 당시 전장연은 “우리는 뜻을 모았던 종교 지도자들을 다시 찾아가서 장애인 이동권 실현을 위한 종교계의 협력을 호소하고자 한다. 정순택 대주교님, 이영훈 목사님, 진우스님, 장애인 이동권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해 다시 협력해 달라”고 밝혔다.
이후 각 종교 지도자를 향해 면담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날 진행된 정순택 대주교와의 면담은 전장연 호소에 응답한 종교계 첫 번째 면담이다.
정순택 대주교(왼쪽)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하민지
면담에 참여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특별교통수단은 여전히 불편하다. 접수하는 데도 2시간 넘게 걸리고 연결하는 데도 2시간이 걸린다. (원활한 연결이 안 되니) 시·군끼리 전쟁이 나고 있다. 이동을 편안하게 하려고 법을 만들었는데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며 “차량을 8시간만 운행하고 나머지 시간엔 다 차고에 쌓아두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우리 대주교님의 목소리가 저희한테는 큰 힘이 될 것 같아서, 간곡히 요청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됐다”고 호소했다.
정순택 대주교는 “말씀하신 예산 편성안은 저도 미처 체크를 못 했던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라며 “자유로운 이동권은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의 지평을 함께 넓혀야 한다. 국회에서 예산을 심의할 때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국민 공감대를 이뤄나가는 작업을 함께 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협력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