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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사(1975년 제 5판)
322p~328p
지친 民族
이때 역사의 요청은 한 마디로 깨는 데 있었다. 민족으로 깨고, 세계에 깨고, 시대에 깨야 한다. 기차-기선이 나오고, 전신-전화가 생기고 이제부터 세계역사는 급 템포로 달리게 된다. 전에 보던 대국 사람이나 되놈이나 왜놈만이 아니고, 가지가지의 얼굴과 말과 글을 가진 양고자놈들이 온다. 영국, 미국, 덕국, 법국, 아라사, 화란. 전에 못 보던 여러 가지 기계가 나온다. 총, 육혈포, 자명종, 천리경, 인쇄기. 이러므로 옛날 생각과 제도와 정치를 가지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각 민족이 제 각기 생존 경쟁, 약육강식, 부국강병을 부르짖으며 서로 씨름을 한다. 일이 급해졌다. 어제까지 우리가 바다 가운데 왜놈이라고 업신여기던 일본이 명치유신을 하여 봉건 시대의 막부를 집어치우고, 근대식의 나라를 세우고 임금을 천황이라 하고, 나라를 열어 세계 모든 열국과 교통을 하며 우리더러도 나라를 열라고 트집을 하여 온다. 일찍이 이런 세상을 보지 못아였다. 이것 사서삼경에서도 못 보는 것이요 팔만대장경에서도 못 듣던 일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김씨고 이씨고 자랑하고 있을 수도 없고, 양반이요 상놈이요 뽐낼 수도 없다. 노론이요 소론이요 문제가 아니 된다. 여태껏 그 이상은 없는 줄 알던 중국이 양고자 한데 꼼짝을 못하여 땅을 빼앗기고 배상을 물지 않나? 이 때에 살려거든 우리도 한민족으로 깨어 말을 같이 하고 도덕 풍속을 같이 하는 우리는 한 핏줄로 된 운명을 같이 하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한 덩어리인 줄을 알아 힘을 모아 새로 한 나라를 세우고 낡은 생각을 버리고 나날이 발달하여 가는 새 지식-기술을 배워 세계의 여러 나라와 어깨를 겨누고 나갈 결심을 하였어야 할 것이었다. 시급히 한 큰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었다.
그것을 하자고 실학이었는데 실학파가 그것을 못하고 낡은 책장만 뒤집다 말았지 민심을 뒤집지 못하였다. 그래서 천주교였는데 천주교 또 천당-지옥만 찾다 말았다. 그래 안되었다 하여서 한번 큰 청소를 하라고 홍경래를 세웠건만 그가 비만 들었다가 말고 쓸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밑에서부터 속에서부터 고치라고 그때 벌써 서양서는 역사를 뒤집어 높은 개신교이므로, 그 젊은 투사를 태평양 물결을 끊고 보냈건만, 그리하여 한 때 큰 바람을 일으켰건만 그것으로도 되지 않았다. 이 때에 이 자유사상으로 이 저으이와 경간과 희생-봉사의 새 종교로 민중의 가슴에 불을 붙여 한번 근본적인 혁명을 하였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못하였다.
왜 못하였나? 사회적으로 하면 중산계층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사회가 발전하는 힘은 중산 계급에 있다. 그들은 밑의 가난한 층 같이 지나친 고역에 힘이 빠진 것도 아니요, 위의 특권층 같이 썩어진 것도 아니요, 생활의 여유를 가져 사상할 자유가 있고, 일을 할 경제적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래 계급에 대하여는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고, 지배 계급에 대하여는 억제하고 싸우는 작용을 하여,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극단으로 나빠지지 않도록 하며, 사회를 움직여 나간다. 정치가 비교적 바로 되는 사회면 이 중류 계급이 발달하고 학정이 심하면 그것이 없어지고 따라서 민중이 극도의 피폐에 빠져 나가라 온통 망하게 된다.
같은 동양의 옛 사회로서 일본은 새 문명을 받아 혁명하는 데 성공을 하고 우리는 못하여 망국의 슬픔을 당하게 된 것은, 그들은 덕천가강 3백년에 튼튼한 중산계급을 발달시킬 수 있었고, 우리는 임진-병자 두 난리에 나라가 여지없이 파괴를 당하였는데, 지배자인 양반 계급이 조금도 그것을 거름 주어 북돋아 줄 생각은 아니 하고 짜 먹기만 했기 때문에 그만 사회의 근본 밑 힘이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虛脫이 된 민중은 반항조차도 못한다. 그러나 민중이 그렇게 되면 그것을 짜 먹고 살던 지배계급도 망하고야 만다. 그것을 모른데가 우리나라 양반의 미운 점이다.
그러나 이것을 뜻을 붙여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노했다고 하는 수 밖에 없다. 역사에는 그래도 신운-시운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일본이 미국의 페리 제독의 강권을 입어 나라를 열게 된 것 같은 것은 참 운이 좋았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회가 있으려면 몇 번 있을 수 있었는데 종시 다 그저 지나가고 이 게으름뱅이 민족을 깨워 주지 못하였다. 하멜의 일행이 몇 십년을 있었건만 서양 소개를 못하고, 병인양요에 불란서가 물러간 것은 저희 나라 일 때문이건만 이쪽에서는 우리 세력이 세서 됐거니 생각하여 점점 더 문을 닫게만 되고, 대동강에 쉬만호가 들어온즉 때 아닌 홍수에 속아 실패하게 되고, 일이 모두 이런 식이어서 그 뒤에 일부러 하는 손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이 치우친 악의는 가질 리는 없다. 노하였다면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요,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역사의 근본 법칙을 그렇게 무시하고는 나라가 아니 된다는 말이다.
마지막 幕
그 때 우리나라 꼴은 무엇보다도 전주 이씨네 집안에 잘 나타나 있다. 하필이면 대원군이요, 민비인가? 이것이 다 마지막 亡國劇을 하기 위해 준비된 배우들이었다. 당파 싸움을 하다 하다 외척이 전권을 세도를 하다 하다, 끝마무름이 그 궁중의 싸움이었다.
5 백년 고난의 골목인 서울 길거리에 연 날리는 열 두 살 소년을 안아다가 임금 자리에 앉힐 때 영화를 길이 누리자는 생각이었지, 그 운명이 그 아이의 손에 잡혀 있던 연줄처럼 끊어져 나갈 것인 줄은 몰랐다. 양반 집 사랑으로 다니며 술잔이나 얻어먹는 그 아비가 대원군이 될 줄은 꿈도 못 꾸었고, 그 어린 임금의 왕후를 구하는 데 고르고 골라 말썽 없을 만한 민씨 집 딸을 데려올 때, 그것이 이 다음날 자기와 세력을 겨루다 집안을 망치고 나라를 망칠 싸움의 적숙인 민비가 될 줄은 천만 뜻밖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은 후일에는 다 그 뜻이 분명하게 될 일을 바둑돌 놓듯이 하나씩 놓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뒤에 수구파요 개화파요, 친일이요 친청이요, 친러요 친미요 하는 파들을 갈라 배치시켜 서로 싸우게 하였다. 그 모양이 꼭 늙은 갈보와 같았다. 제가 스스로 제 운명을 개척하고 사람 노릇을 하자는 생각이 없고 오늘 이놈에게 내일은 저놈에게 붙어 그때그때 구차한 안락을 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끄트머리는 결국 이놈에게도 사랑을 잃고 저놈에게도 미움을 사 한 몸이 망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먼저 깬 사람들의 힘씸으로 갑신정변, 갑오경장하는 운동이 없지 않았으니, 소용이 없었다. 싸움의 결과 대원군은 중국에 붙들려 가고, 민비는 일본 군대의 손에 죽고, 임금은 자리를 쫓겨나고 아들이 대신 들어섰다가 그나마도 오래 못 가고 1910년 8월 28일에 한일합병이 되어 나라가 아주 망하여 버렸다.
그러니 민족의 부끄럼이 이제는 끝에 간 것이다. 고구려 때에는 욕을 먹었는지 모르고, 신라 때는 매를 맞았는지 모르고, 고려 때는 넘어졌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아주 거꾸로 구겨박혔다. 고구려는 발해가 있고, 신라에는 마의 태자-궁예가 있고, 고려에는 최 도통-정 포은이 있지만 이조에는 그것도 없다. 이준이 헤이그에 피를 뿌리고 민충정이 서울에 푸른 대에 올렸으나 그것으로 가리우기에는 그 허물이 너무 크다. 신라가 당나라에 수그렸다 하나 그래도 나라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나라란 이름이 아주 없어지고 남의 한 개 식민지가 되어버렸으니 5천년 역사에 이런 일이 없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주 이 민족한테 속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다.
하필이면 일본이냐? 일본을 우리가 길러냈고 가르쳐 왔었다. 동해 바다 가운데 있어서 그 사는 사람의 종자의 일부는 원시시대의 인종의 하나인 아이누요, 또 다른 일부는 남양으로 올라온 계통의 인종인데, 거기 비로소 문화 사회를 발달시키기 시작한 것은 소위 천계 민족이라는 필시 이 반도를 타고 구주 지방으로 건너 갔던 우리 민족의 한 물결이었다. 그 신화가 그것을 말하고 그 석기 시대의 유물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후 그들에게 처음으로 한자를 가르쳐 준 것이 우리요, 유교-불교를 전해 준 것이 또한 우리였다. 그들의 문화는 대륙과의 교통이 아니고는 발전할 수 없고, 그들의 경제는 우리와 오감이 없이는 되어갈 수 없었다. 임나는 그래서 있는 말이요, 왜구도 그래서 있던 사실이다. 덕천막부가 조선신사를 크게 대접하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만일 튼튼한 주권을 가지고 제해 교통을 완전히 하였다면 일본의 운명은 우리 손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양문명이 올 때에 우리가 만일 만주를 뒤뜰로 삼고 일본열도를 앞 방파제로 삼는 형편이었다면 역사는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친청, 친러, 친일하며 몇 십년 국제 매음을 하다가 우리가 길러내고 우리가 업신여기던 일본한테 나라를 몽땅 빼앗겼으니, 이것은 마치 행랑 머슴한테 주부가 朱節을 한 셈이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반발이 일어날 때까지 하실 작정이었다.
그러므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민족 자결주의에 따라 많은 민족이 해방이 되어도 우리는 빠졌고, 3.1운동을 일으켜 민족의 역사에서 전에 못보던 용기와 통일과 평화의 정신을 보였건만도 그것으로도 안되었다. 받아야할 교육이 아직 있고, 겪어야 할 試鍊이 또 있다. 그리하여 제 2차 세계 대전에 이르러서는 민족의 의식이 아주 끊어지나 잇나 아슬아슬한 지경에 빠져 들었다.
이것으로 우리 고난의 역사의 대충 보기가 끝났다. 돌아보면, 아아, 삼국시대 이례 그 걸어온 길이 얼마나 잔혹했나? 눈물과 피로 걸었다기보다 기었고, 기었다기 보다 굴러 왔고 발길에 차여 왔다. 그리고 5백년 수난도 오히려 부족하여 돌아오던 회복의 기운도 사라지고 다시 더 심한 煉獄(시련)의 바닥으로 거꾸러져 내려가는 뒷모양을 보며. 아니다, 우리 자신이 그것임을 깊이 의식하면서 그러나 그보다도 날이 장치 오면 이것이 다 뜻이 있는 한 구절이 될 줄을 믿으면서 이 막을 마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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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다 읽고 댓글 달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참고로 좌우파 개신교인의 존경을 받으며. 특히 좌파의 멘토였던 함석헌 선생님의 역사관은 지금도 소위 자칭 좌파라고 하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죠 ㅋㅋ
첫댓글 어렸을때 동생이 논술학원에서 뜻으로 보는 한국사를 받아와서 읽었더니 조선편 보고 밥맛이 확 떨어지더군요
그넘의 서양드립은 참 우려먹는 구만 저런 소리하기 이전에 서양과 먼저 교류했던 나라들이 어떻게 됬는지 부터 봐야지요. 그잘난 서양에 문호 개방했던 나라들 다 일찌감치 식민지 크리 탔습니다. 그거하곤 별반 상관 없다는 거죠. 단지 당시 권력층의 부패나 뭐 그런걸 문제 삼아서 비판하는 것은 모르겠는 데! 서양과 교류드립은 뭐!
@유문기 게다가 그 자맹론은 현재 논파되었으니 더 재밌죠 ㅋ
그래서 전 함선생의 소위 씨알사관도 까여야 된다고 보는데요 그건 종교나 철학이지 역사가 아닙니다. 이걸 까려면 맹자도 하늘이 큰 일을 맞기려는 사람은 뼈를 꺽는 고통을 줘서 단련시킨다고 했으니 깝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함선생은 과거의 고통으로 단련되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발언을 할 지언정 과거의 모순과 오늘의 부조리에 대한 망각과 정당화론 이어지지 않으니까요
뭐 지금 저희가 지적하는 것은 그럼 문창극의 사관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문창극의 사관이 소위 자칭 좌파 코스프레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친일파가 아니라는 거죠 ㅋ
솔직히 저런 사회진화론적인 헛소리(정확히는 고전적인 또는 단선론적인 사회진화론)는 저 같은 사람이 매우 싫어하는 부분이니까 말이죠
재미있는 건 진영논리를 목청 높여 성토하는 사람들이 가장 진영논리에 경도된 태도를 보인다는 거죠. ㅋㅋㅋ
그런면에서 경향신문이 참 대단하죠 ㅋ, 조중동이야 일관되게 유능한 인간들이 그 좋은 머리 이용해 왜곡질하고, 한겨례와 오마이는 무능하면서도 자신들의 믿음에 경도되어 얼척없는 소리나 지꺼릴때 경향신문 혼자서 진영논리를 최대한 탈피하면서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 파헤치려고 하니까 말이죠
진짜 이런 신문이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겨례 따위한테도 밀리는게 한탄스럽네요
다 읽어보니
말만 거창하지 매우 지극히 평범한 조선까일뿐이라 여겨지는데요..?
근데 저보다 덜한 발언을 한 사람은 친일파로 모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죠 ㅋ 참고로 함석헌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ㅋㅋ 즉 역사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매국노로 모는 겁니다
일관되게 동성애자를 때려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가 있는데, 그 양반이 하필이면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사고가 난 날 신나게 '소돔과 고모라의 천벌'을 외쳤다고 치죠. 근데 그게 일관되게 빈민 구제에 앞장서고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하던 목사도 언젠가 '소돔과 고모라의 천벌'을 말한 적이 있다는 걸 들어 정당화될 수 있는 일입니까? 기독교계 내에서 후자가 전자를 정당화시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그런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언론이 욕먹을 일이 아니라 기독교계가 까여야 할 일로 보이네요.
그게 단순한 사회진화론을 친일파로 왜곡시켜 보도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것과 무슨 관계인가요? 지금 저와 문기님이 비판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왜곡을 일삼고 잘못하면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 투사인 함석헌 선생마저 친일파로 몰아붙일 짓을 하고 있는 언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저 발언도 문창극씨가 함석헌씨의 영향을 받아서 나온 발언인데 말입니다. ㅋ 지금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지적하는건지, 저 발언을 지지하는건지 아니면 얼척없게 빨갱이 몰이와 유사한 친일파 몰이를 비판하는 건지 ㅋㅋ
@무장나드 물론 두 분이 문창극씨의 발언을 지지한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창극씨 사태에서 언론이 한 게 어처구니 없는 왜곡이라고도, 함석헌을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일이라고도 여기지도 않습니다. 문창극씨가 언론에게 친일파 몰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라고 보구요.
@푸른숲 그래서 그 친일파 분께서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 강경하게 발언하고 그러나 보군요.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친일파라는 의미가 어떤 족쇄로 작용하는지 생각해보면 게다가 실제 문창극씨의 발언 내용을 보면 어떤 면에서 친일파인지 심히 궁금하네요, 일제시대를 찬양한게 아니라 시련으로 본 사람이 친일파라...
@무장나드 그 문제의 칼럼에서의 독도발언을 고려한다고 쳐도, 문창극씨가 해당 칼럼에서 한국 총리로 취임하기엔 지나치게 친일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면 그건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한 것 뿐입니다. 어차피 한국 정부는 독도의 영유권과 위안부의 일본 정부 책임인정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건 바뀔 수 없는 거죠. 독도영유권을 인정하지만 일본의 위안부 책임과 사과는 안 받아도 된다고 주장했다면, 한국 총리로 취임하기엔 지나치게 친일적이라고 서술되는 게 당연하죠. 둘 다 정부가 총리에 맞춰 줄 수 없는 문제들이니까요. 그건 명백히 언론이 사실대로 쓰기만 한다면 친일 논란이 안 일어날수가 없는 문제였죠.
@푸른숲 그게 어떤 면에서 친일적이라는 것인지요? 위안부 관련 발언은 친일 발언이 아니라 우리가 그만큼 성장했는다는 자부심과 연관된 발언인데 말이죠. 게다가 총리라는 자리가 거의 허울뿐인게 한국의 현실이긴 하지만 그 자리자체는 단순히 일부 발언으로 시비거는 역사관보다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냐 없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텐데 말이죠.
전 솔직히 이에 대한 검증은 실증되고 이상한 부분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참 답답하던데 말이죠. 이런 것도 시비를 걸면 앞으로 이 작은 나라에서 좌우파 진영 어디에서 제대로 된 인재를 캐낼지 암담해서 말이죠.
@무장나드 총리가 아무리 의전상의 직위인 것으로나 인식되는 상황입니다만, 어쨌거나 현재 공식적인 한국의 행정부 2인자이자 정부를 대표하는 위치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총리로 지명된 사람의 이전의 언행은 정부의 정무적, 외교적 입지에 영향을 끼칠수밖에 없어요. 당장 문창극씨가 총리로 지명된 직후 그의 기존 발언들을 보고 일본의 극우 언론들에서 환호성을 내질렀고, 바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존의 고노 담화를 공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창극씨가 한국의 국무총리로는 드러난 이전의 언행이 너무 친일적이기 때문에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부적절하다고 한다면, 그건 그냥 사실을 서술한 것 뿐이죠.
@(TheGodfather) 한국에서 친일의 정의 자체가 중구난방인건 사실입니다. 개인이 이런 정의의 혼란 탓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이 있는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언론의 검증 대상인 공직자가 그 역할에 걸맞지 않게 한국정부에 명백히 불리하고 일본(극우)에 유리한 언행을 한 것을 언론이 친일이라고 했다면, 공직자의 검증 의무가 언론에 있는 이상 이걸 언론이 부당하게 검증했다고 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문창극씨의 지명이 고노담화 부정 시도를 낳은 것처럼 서술된 건 잘못이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총리지명 직후에 드러났듯 일본이 해당 문제를 계속 외교적으로 공격하리란 건 명확하고, 총리의 이전의 언행이 명백한 외교적 짐이 된다는 겁니다.
@유문기 아뇨, 문창극씨가 칼럼니스트 시절 허위사실에 근거해 있지도 않았던 김대중의 비자금을 추궁한 것이 이후 허위사실 자체에 의해 보상해야 할지라도 그 문제제기가 허위사실임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을 시점엔 언론의 자유와 공직자에 대한 감시의 원리에 비추어 부정될 수는 없는 것처럼, 문창극씨 본인이 총리 후보가 되었을 때에도 허위사실이 아닌 한 그에 대한 검증이 부정될 일은 아니라고 볼 뿐입니다.
물론 문창극씨가 억울해 할 수는 있고, 이는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사견으로는 이번 사건에서 (진보)언론은 공직자의 검증 의무와 문창극씨의 억울함 사이에 균형을 맞춰 공정하게 보도했다고 평가할수밖에 없다고 봐서요.
@유문기 분명히 결과적으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신 건 이해합니다만, 문제의 언론들은 허위사실을 보도하지도 않았고, 그 보도가 공직자 검증의 선을 넘지도 않았고, 당사자의 소명과 항변 역시 충실히 보도했고, 출처를 명확히 드러내고 관심있는 이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보도했고, 해당 이슈에 대한 여론의 흐름도 충실히 보도했고, 그와 관련된 칼럼, 사설 등에서 드러난 견해 역시 충분히 객관적 사실에서 정당화 될 수 있는 일이었고, 설령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들 공직자의 공적 검증의 의무를 고려한다면 용인되는 선을 지켰습니다. 이래선 썩 만족스럽지 않은 면이 있었다고 한들 전체적으로 공정보도였다고 해 줄 수 밖에요.
@유문기 이번사건의 경우 언론이 있는 사실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었다 보기 어려우니까요. '게으른 조선민족 DNA'나 '식민지는 하나님의 뜻' 발언 등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선의로 해석해 줄 수도 있는 것임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반대쪽 해석을 하는 이들이 완전히 틀린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는것도 아닙니다. 이 역시도 최소한 문창극씨의 발언과 시각만큼 동등하게 존중해 줄수밖에 없는 시각이죠. 더군다나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책임인정이 불필요하다는 발언은 어떻게 봐도 한국 국무총리로는 직무수행에 부적절할 정도로 친일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발언입니다. 이 상황에 언론이 어쩌겠습니까?
@유문기 뭐, 기독교적으로 모든 일은 신의 뜻일 수 있기에 식민지기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기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식민지기에 대한 긍정이나 민족에 대한 비하도 용납하지 않고 격분하는것이 한국 민족주의 역사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죠. 그리고 기독교적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민족주의적 여론이 문창극씨의 발언을 정당화해줄 까닭이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언론은 두 역사관의 가치충돌에서 기독교적 역사관이 민족주의적 역사관보다 옳다거나 따라야만 하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총리 후보의 검증과 여론의 동향을 보도하는 원칙 정도만 남을 뿐입니다.
@유문기 기독교적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이들이 함석헌은 용납하는데 왜 문창극씨는 용납하지 못하냐고 따져 봐야, 어차피 그들은 기독교적 역사관에 동의해서 함석헌을 용납하는 게 아니라 함석헌의 민족주의적 행적 탓에 용납하고 존경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민족주의적으로 일관적이지 기독교적으로 일관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틀렸고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할 수 근거도 없습니다. 물론 맹아론이 학설로 몰락했다는 걸 들고 싶으시다는 건 압니다만, 그렇다면 그쪽도 천동설과 창조론을 들 겁니다;; 사실판단이 아니라 가치판단의 대결이지요.
@유문기 유감스럽게도, 문창극씨가 한 발언이 친일파로 볼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판단이 아니라 가치판단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진보 언론이 문창극씨를 친일파로 몰고 있는게 아니라,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은 여론 전체가 KBS에서 특종으로 보도된 문씨의 발언을 친일적으로 보아 이슈가 되었고, 이후 대다수 언론들은 사실대로 보도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언론들이 사실대로 보도했다는 걸 부당하다고 보기도 어렵고, KBS의 해당 보도가 부당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이를 꼭 비판해야한다면 그 발언을 친일적으로 본 여론이 맞겠습니다만, 저는 이 여론 역시 비난받을만하다고 여기긴 어렵습니다.
@푸른숲 사실대로 보도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다는게 함정이죠 ㅋ, 시련이 찬양으로 바뀌는 마법을 시전했으니 말입니다
@무장나드 기독교적 관점의 '신의 뜻'을 무조건 옳다라고 여긴 건 분명히 엄밀하지 못한 접근이긴 했지요. 언론사들이 신학에 영 무관심하긴 합니다. 하지만 조선민족의 dna가 미개했기 때문이라는 맥락이나, 그 외에 일본의 위안부 사과와 책임이 불필요하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고 여기는 게 부당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경우 언론사들은 기존의 폐습과 달리 본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최소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한 편이라는 것 역시 고려해야겠죠.
@유문기 결국 여론과 그를 보도하는 언론의 증거는 일본의 위안부 사과&책임 불필요, 조선민족 dna미개, 식민지기는 신의 뜻의 세 발언이고, 거기서 문창극씨가 친일파라는 유추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한국 총리로 취임하기엔 부적절할 정도로 친일적'이라고 평가했다면, 이건 정무적, 외교적 조건을 고려한 사실 판단일 뿐이라고 봅니다. 친일파의 의미를 축소시켜서 해석할 경우라고 해도, 저 세 발언을 근거로 친일파라고 드는 것에 대해 유추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보구요. 게다가, 언론의 비판의 경우 전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습니다;;
@유문기 제일 유명한 발언이 자주 언급되었다고 조선민족 DNA 미개나 위안부 사과&책임 불필요가 문창극씨가 친일적이라 유추하는것과 무관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한 일이죠.
@푸른숲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가 강해졌다는게 어찌 친일이고, 민족개조론을 이야기 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친일이되는지 궁금하네요. 위안부는 몰라도 최소한 민족개조론과 비슷한 이야기는 함석헌 선생도 위에서 했는데 말입니다.
위의 글에서 대강 제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1930년대에 총독부의 근대농촌행정정책의 추진을 보고 감동하던 근대적 지식인의 발언이 2014년의 총리후보자와 연결되는것이 타당한가'....였습니다만 뭔가 불의의 습격을 받아서...... 이 부분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저는 일단 자야 해서 내일 글을 하나 새로 파던지 해서 마저 논의해 보겠습니다. 의견 달아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두 주장이 연결될 수 없죠. 다만 제가 생각하는 것은 결국 문창극 후보자의 역사관은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언론보도처럼 친일은 아니며, 더 나가서 그것이 총리 후보 검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라는게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