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바꿨는데 그럴 듯허질 않어? 좀 심하다구? 그걸로 몰 삐치고 그래. 시원한 그림 보며 진도 나가자. 위 약도는 앞글에서 제시한 것이니 낯설지는 않을 것이야. 노파심에서 앞글의 핵심을 상기하면, 서기전 214 년 경에 만리장성의 수축이 끝나고 동쪽 끝이 바다에 닿았을 때 그 바다 건너편에 조선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조선의 서쪽에 있는 바다 건너편인 장성의 동쪽 끝 임유관 곧 진 시기의 요동이며 한 시기의 요서군은 어디냐는 거지. 아무튼 북경 동북쪽 지역의 만리장성은 앞 글에서 제시한 북위형세도에서 보듯이 적색 물길인 난수를 동쪽으로 벗어나지 않는데 최하류인 요서군 지역에서 만큼은 난수를 동쪽으로 끊고 바닷가 부근까지 이어져 있고 장성이 횡단한 이 난수를 화국의 전국시기에는 요수遼水로, 최하류는 요해遼海로 불렀는데 그 근거는 <수경주/난수> 기록이라는 것이고 이 난수는 거란족이 세운 요국의 정사인 <요사/지리지>부터 란하 水+欒河로 불렸고 1911년에 멸망하는 청국 정사인 <청사고/지리지>까지 죽~ 이어져 기록되었다는 거였지. 이 난수.란하와 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 부근의 지형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 황조일통여지전도皇朝朝一統輿地全圖인데 원도는 청 도광 12 년(1832) 董方立.李兆洛에 의해 8권의 지도첩으로 제작된 이 후 수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고 하며 북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아래 지도는 1865년 간행본으로 일본 쓰쿠바 대학 소장본이라네. 사기꾼들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여 참고해야 해. 고지도- 황조일통여지전도(이하 황조도라 함) 주) 계.옥전 승덕.고하 영평.노룡 임유현 산해관 조양 대릉하 의무려산복주 앞글에서 제시된 북위형세도에는 노룡까지만 묘사하였는데 위 황조도는동쪽으로 더 나가 산해관과 바다 그리고 요동지역의 의무려산이 있는 무려현 및 복주까지 묘사되어 있어 산해관 주위의 지형을 살펴보는데 아주 긴요한 지도라 평할 수 있지. 얼매나 보기 좋아! 사실 화이도가 뭔 지도냐? 장성 동쪽 끝도 잘못됐고 조선 땅이라며 그린 것도 지형도 모르는 무식쟁이가 그린 것인데 저것을 지금의 한국땅을 그렸다고 해석한 놈들도 참 두고 보기 아까운 가관이지. 에효. 병진들이 지리지를 읽어봤어야제. 어쨋든, 고지도 왼쪽 끝에 표시된 옥전은 한 시기의 우북평군 무종현으로 당 시기 측천무후의 만세통천 2 년에 옥전으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고 고하라 표시된 물길은 <한서/지리지> 우북평군 무종현에는 650 리 길이의 경수라 기록되어 있으니 그림쟁이 화사가 잘못 표기한 것이야. 경수 발원지의 동쪽 지역을 난수.란하가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난수.란하 하류의 동쪽 지역이 진 시기의 요동이며 한 시기의 우북평.요서군이고 청 시기는 직예성에 소소된 승덕부와 영평부야. <명사/지리지>와 <청사고/지리지>에는 북경에서 영평부 치소인 노룡까지를 동쪽으로 550 리,480 리쯤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고 산해관까지는 약 650 리, 산해관 밖 봉천성 금주부 영원주 경계까지는 680 리로 못을 박아 기록해 놓았어. 자, 그러면 북경에서 동쪽으로 650 리 떨어진 산해관 위치가 어딜까? 앞 글에서 설명하였듯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300 리 떨어졌다는 요서군 지역은 과연 어딜까? 현대지도에 표시된 지금의 란하 동쪽일까? 650 리, 3300 리 감이 오질 않지? 그래서 저 난수.란하를 파봐야 하는 것이야. 우선 화국의 전국시기나 진시황 시기엔 확실히 요수라 불렸는데 서기 83 년 경 반고가 <한서/지리지>를 저술하면서 동북쪽에 있는 새로운 물길을 대요수라 하였는데 <한/지> 편찬 이후에도 습관인지 저 난수를 요수.요해라고 표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바로 <수경주/난수>야. <수경주/난수> ... ...濡水又東南流逕令支縣故城東... ...<史記>曰 孤竹君之二子伯夷叔齊讓國于此... ...遼西太守廉夢人謂己曰 余孤竹君之子 伯夷之第 遼海漂吾棺槨 聞君仁善... ...<晉書地道志>曰 遼西人見遼水有浮棺... ... ...난수는 또 동남쪽으로 흘러 영지현의 옛성 동쪽을 지난다... ...<사기>에는 고죽군의 두 아들인 백이.숙제가 나라를 버린 곳이 이곳이라 하였고... ...요서태수 염번이 꿈을 꾸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얘기하기를 나는 고죽군의 아들이고 백이의 동생인데 요해에 내 관이 떠다니는데 군이 인선하다는 소릴 듣고... ...<진서/지도지>에는 요서인이 요수에 떠다니는 관을 보았다... 위 글에서 보았듯이 난수가 요서군의 영지현을 흐르고 요서태수나 요서인이 요수.요해를 말하는 것은 전한 시기나 진 시기에도 난수를 옛날과 같이 요수로도 보았다는 것이지. 흔히 반고의 <한/지> 설명이 너무 유명하여 요수는 1250 리 길이이고 요동군 망평.양평.요수.안시현 등을 경유하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바로 함정이라는 대목일 것이야. 당인 두우가 <통전/변방/동이.고구려>에서 요수가 장성을 끊고 갈석 남쪽을 지난다는 기록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는데 바로 저 난수를 요수로 인식하기 때문이야. 사실 요서.요동은 요 지역의 동.서쪽이라는 것이고 그 기준을 요수로 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겠는데 만약 강역이 확장되면 요수도, 요서.요동도 동쪽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반고보다 무려 700 여년이나 지나 글을 쓴 사람이 전국시기의 요동 상황을 이야기하니 헷갈릴 수 밖에. 또한 전국시기엔 요수로 불렸던 한 시기 요서군을 흐르는 난수는 <청사고/지리지> 기록에서야 처음으로 2100 리라고 설명되어 있어 <한서/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에 주석된 2100 리 길이의 염난수와 혼동할 수 밖에 없는 기록이지. <한/지>의 대요수는 새외에서 흘러와 요동군만을 경유한 후 바다로 들어가는데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가 현토군을 지나 요동군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대요수는 염난수의 지류격일 수 밖에 없고 어양.우북평.요서 3 개 군을 지나는 난수와는 명확하게 다른 물길인데 대다수 한국역사학자들이 화국 유주 지역의 지형지세를 검토하여 결과를 내놓지 않으니 난수와 염난수를 혼동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난수.란하와 염난수.대요수로 구별되는 두 물길의 동떨어진 거리는 대략 300 여리 차이가 있는데 산해관을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에서 2000 여리나 되는 물길은 쉽게 찾을 수 있어. 어떻게 장담하냐고? 바로 <한서/지리지>의 어양.우북평.요서.요동.현토 등 5 개 군과 현에 주석된 물길 기록과 현대지도를 대조하면 끝나. 이는 반고의 세심하고도 정확한 기록 덕분인데 어양군 지역에는 750 리 길이의 고하가 흐르고 우북평군에는 650 리 길이의 경수가 발원하여 어양군으로 흘러들어가 2 개 군을 경유하며 요서군에는 48 개의 작은 개천이 흐르는데 그 총길이는 3046 리라 설명하였어. 또한 요동군에서는 1250 리 길이의 대요수가 흐른다고 하였고 현토군에는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가 흘러 요동군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어. 즉 대략 1:550 만 축척의 현대 중국지도에 뚜렷하게 표시될 수 있는 물길들이라는 것이지. 현대 중국지도를 모사한 약도에 표시해 볼께. 참고도 - 유주 5 군 주요 물길과 장성.산해관.바다 주) 현대지도엔 고북구.평곡.옥전은 저 위치에 표시되어 있고 현대지도에 표시된 노룡.산해관(임유관)은 동쪽으로 지금의 란하 하류를 건너서 표시되어 있슴. 참고도 - 양수경의 북위형세도 너무 길어지면 지루하니 다음에 계속할께. 다음엔 뭘 할까? ! 산해관 동쪽 바다에 대해 쓰께. |
출처: 우리國史, 단기 4349년 원문보기 글쓴이: 신석재
첫댓글 명사 조선전이나 검열하고 이런글 쓰삼^^
씨알도 안먹히는 글 올리지 말고!
명사 조선전 첫 구절도 모르면서 무슨 사서를 드리미낭?
위에서 약수나 비정해 보삼?
부여의 사방(나라, 강 등등으로)에 대해서도 쫌 논해 보시길^^
흠, 촐랭이 왔는가?
너무 쫓아다니는 거 아녀?
남들이 보면 어쩔라고 그래.
혹시 말이여,
자네가 추천 때린겨?
실컷 빈정.조롱해대고 뭔 추천이랴?
에이 자네가 아니겠지.
난 그리 믿네.
자네가 추천 날릴 리가 없지.
그나저나 자네가 부여를 어찌 아나?
게다가 약수까정.
허! 유식허이.
그럼 이번엔 자네가 먼저 약수를 비정해 보게.
맞추면 박수쳐주께.
그리고말야 지난 댓글 뒤적여 봐.
유일하게 질문한 허접스런 명사 기록에 대한 평을 달아놨으니.
@신석재 앞으론 냄새나는 입으로 명사를 언급하지 마시게^^
얼마전 대화내용을 상기하자면 그대는 청사고와 더불어 명사를 정사로 인정했고, 그대 글 몇구절을 명사로 부터
인용하고선 다른 님들의 댓글에 퓀훼 내지 하품수준으로 취급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구만!
이를 어찌 자기배반, 이율배반이라 하지 않겠나??
타임로드님이 말하는 전거의 근거로 명사를 인용한 그대가 스스로 명사를 쓰레기라 하는것은
그대 자신을 퓀훼하고 쓰레기로 격하시킨 것이 아니것나? 역사를 베끼기 전에 선행하여 국어공부를 가열차게
해보심이 어떠신지 충고 드리겠네!!
약수를 비정하시게나? 쫄리나? 삼한을 엿바꿔 자시는 님이 하셔야지^^
@신석재 그대 비정과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부여와 약수에 대해 논해보시게^^
쫄리믄 하지 마시공!
명사는 빼시고 비정하시게나? 지나가는 손님입니다가 삼우잡록당 가자고 잡아끌지 모르니....!
그대가 올린 '간도'에다가 질문을 올렷어야 했는데 그새 까먹은건 아니니 대답하시게~
질문에 답하는 것은 글올린자의 의무가 아니겠나?
@신석재 죽을때까지 실험관을 떠나지 못하는 모르모트를 보는듯 하군!
안타까우이^^ 꿈도 야무지고 해몽은 걸작일쎄!! ㅋㅋ
이런 글을 쓸때는 반드시 현지를 답사하기 권한다.
고대 국경이란 강보다는 산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강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도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산악은 의지는 있되 월산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육이오 끝 무렵... 평강, 김화, 철원이 철의 삼각지대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로 피바다를 이룬 이유가... 어느 고지 하나라도 점령해야 나중을 기약할수 있었기에... 미, 중 양국이 피바다를 이룰 정도로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100세 시대에 겨우 60살 쳐먹은 신석재에게 권한다.
한번이라도 현지를 답사해보고... 그곳이 과연 고대국가 국경선의 조건에 합당한 지형인가를 확인하고 주장을 펼치기 바란다.
(내가 이처럼 막말을 한 것은... 니 놈이 나를 향해 비아냥이라도 하라는 막말성 글을 올렸기 때문임으로... 나를 원망하지 마라. 자업자득으로 생각해라.)
@金子 금자야
니는 욕을 밥먹듯 하는 ㄴ 인데
무슨 , 세삼스럽게...
금자야
내가 질문하나 한다
니는 진남관에 대해 나와
ㅈ 나게 토론 할때 75칸을
기둥이 아닌 집의 채수로 얘길
햇어 뭔말인지 알쥐///
그럼 내가 아랫글에서
올린것처럼 여수 시내 전체가
진남관이 돼야해
그 점에 대해 야그 혀봐...
알것째...
꼭 답변 기대한다.
ㅋㅋㅋ(좋은 의미로다 ㅋㅋㅋ)
@波奈留之國 미필의 시각에서 군사문제를 다루려하면 망신당하기 딱이다.
@金子 피하지 마삼
알고자 하오니
글고 미필이 아니라고
얘길 해도
전에 얘길 했자나
창녕에서 박희도 봤다고
군생활 할때야...
석재님, 삼분지계님
두 분께 야그 합니다;ㅣ
사실 몇 사람을 제외하곤 님들의
글에 대해 반박을 할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저도 마찬가지...
두분의 글 넘 좋습니다.
끝없는 토론 부탁드리고요
아래에 제가 올린글 "진남관"에
대해 열띤 토론 좀 부탁 합니다.
그리고 두 분이 넘 적대하듯 하지
마시고 좋은 , 다른 의견 많이 올리시길
기대 합니다.
제가 추천 했습니다.
ㅋㅋㅋ, 사실 입니다.
제가 봤을 땐 그러하니깐요...
저 아래글에 대해 제가
추천 했으나 이글은 두 번
째네요 ...
@波奈留之國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