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사는 동진(東晉, 326년) 시대에 인도 승려 혜리(慧理)가 항주에 왔다가 이곳 산의 기세가 매우 아름다워 ‘仙靈所隱(선령소은, 신선의 영혼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 이라고 말한 후 사찰을 짓고 이름을 영은(靈隱)이라 했다고 한다. 영은사 입구의 현판은 비교적 최근에 쓴 것으로 강택민 국가주석의 글씨다.
중국선종 10찰 중 하나라고 하니 선종의 선문답으로도 볼 수도 있겠다. 곧 극락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척에 있는 내 마음에 천국인 서방 극락정토가 있다는 의미도 되리라.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이공지탑(理公之塔)이 있다. 영은사를 창건한 혜리스님을 기리는 탑이라고 한다. 비래봉 앞 이공지탑 이공지탑 뒤에는 비래봉(飛來峰)이란 산이 있다. 비래봉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높이가 209m, 둘레 800m 정도의 바위 봉우리다. 이 비래봉에는 제공스님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공스님은 출가 스님인데도 계율을 잘 지키지 않고 자유분방했다. 술과 고기를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복장 또한 낡은 모자를 쓰고 찢어진 부채를 들고 마을에 나타나 어슬렁거리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술과 고기를 자주 얻어먹었다. 그러나 이러한 스님이지만 신통력이 뛰어났다. 마을에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나쁜 사람은 혼내주고,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뢰 하지는 않았다. 하루는 스님이 인도에서 큰 산이 날아 올 것을 알아차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피신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산이 날아 온다'라는 어이없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냥 두면 마을 사람들이 다 죽게 되어 스님은 꾀를 내었다. 마침 그때 마을에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이때 스님은 결혼식의 신부를 납치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동네사람 모두가 스님을 잡기 위하여 달려가는데, 달리는 뒤로 거대한 바위가 떨어졌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 이때 떨어진 바위가 비래봉이라고 한다. 그 이후 스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러한 전설을 가진 비래봉에는 10-14세기경에 만들어진 석굴조각품들이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불교 굴각상 115굴, 334보살상이 있다. 이 불상들은 송나라의 조형예술을 대표하는 걸작품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특히 강남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석굴예술을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한다. 이 모든 불상들은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잘 조각되어 있었으나 문화대혁명 시기에 많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이 불상들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송대의 것인 미륵좌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포대화상 이라고도 한다.
향장목으로 만든 천왕전 불상
비래봉을 지나면 천왕전을 만난다. 천왕전의 불상은 향장목이라는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른 나무들은 세월이 가면 속이 비어 큰 불상 같은 것을 조각하지 못하는데 이 향장목은 다르다고 한다. 속이 꽉 차서 조각을 잘 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항주의 가로수는 대부분 향장목이다. 향이 독특하다.
김교각 스님 그런데 영은사에도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로 모셔져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구화산과 멀지 않은 곳이라 생전에 이곳까지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것일 거다. 이곳에서도 김교각 스님의 동상이 가장 가운데, 그리고 가장 크게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신라의 김교각 스님을 얼마나 존경했는가를 알 수가 있겠다.
처음 들어 갈 때는 천왕전 뒤쪽으로 갔다가 나한전을 보고나면 천왕전 앞쪽이 나온다. 역대 중국황제 강희제의 친필이다. ‘雲林禪寺(운림선사)’라고 쓰인 편액이다.
강희제가 남쪽 지방을 순찰하던 중 항주에 들러서 북고봉(北高峰)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 곳에 영은사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네 글자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재미있는 이야기도 함께하고 있다.
청나라 강희제는 경치가 아름다운 항주에 자주 놀러왔다. 어느 날 영은사 주지 스님이 황제에게 현판 글씨를 부탁했다. 전날 밤 지나치게 과음을 한 황제는 ‘靈’자를 쓴다는 게 雨자를 너무 크게 쓰서 그 다음에 들어가야할 입 구(口)자 세 개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 때 강희제는 기지를 발휘하여 ‘雲’자를 크게 쓰고 말았다. 곁에서 보고 있던 주지 스님은 감히 황제에게 다시 써달라고 말은 할 수 없기에 "폐하, 여기는 영은사이옵니다"라고 살며시 말했다.
그러자 황제 대답하기를 "내 그걸 모르는 바 아니다. 나는 사찰의 이름을 쓴 것이 아니라 사찰의 풍경을 두고 편액을 쓴 것이다. 주변에 나무가 우거지고 구름이 자욱하며 안개가 덮인 곳에 영은사가 있지 않느냐?"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 어쩔 수 없이 편액을 '운림선사'로 달게 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잘봤습니다 고맙습니다...관세음보살()()()
참 좋은 인연입니다~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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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려님~항저우의 영은사의 유래와 포대화상 모습, 김교각 스님을 지장보살로 섬기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비래봉(돌덩이가 날아옴)이 생긴 스님의 설화 참 잘읽었습니다.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참배하고 싶은 영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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