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짜리 한 장
까만 분칠한 저녁을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멀어진거리엔
어둠을 한 움큰 베어 문 노란 달과
반작이는 별들만
인적이 드문 길 위를 비추며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는데요.
"어서 오세요"
바람과 놀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
할머니는 사방을 돌아보며
두리번 거리는 모습에
"할머니
뭐로 주문하시겠어요?"
할머니는
입고 있는 옷 주머니 이곳저곳에
손을 찔러 넣어 보시더니
"아이고 이럴 어째...,
손자놈이 적어준 종이를 잃어버렸나 보네."
나이가 벗어놓은 슬픈 얼굴로
햇살 든 창가에 앉아
가지도 오지도 못한 채
멍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혹시 이 종이 아니에요?"
"맞아 그 종이가...,"
할머니의 얼굴이
어느새 햇살든 꽃잎같이
변해 있는 동안
여직원은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큼지막한 종이봉투 하나를 건네면서
오래 기다리셨죠?"
"젊은 아가씨가 고맙구먼.
고마워...,"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하고는
속곳 안 주머니에 넣어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하나를
내어놓고 있었는데요.
"작년 내 생일 날
손자가 알바해서 준 용돈이라오"
"그런 돈을 쓰셔서
어떡해요 할머니?"
"오늘이
마치 우리 손주 놈 생일이라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네네...,
손자분이 좋아하시겠어요"
새하얀 웃음꽃을 매단 할머니는
가게 앞에 세워져 있는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노란 달님이 수놓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봉투 안에 든
만원짜리 한 장과 함께...,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중에서 -
좋은 글 좋은 생각
출처: 향유 냄새 나는 집 - 아굴라와 브리스가 원문보기 글쓴이: 브리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