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선물 달 항아리
달항아리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 만들어진 조선백자로 보통 높이가
40㎝를 넘어 백자대호(大壺)로 불렸다.
고려 귀족이나 조선 사대부를 위한 청자나 백자와 달리 서민의 일상생활에 사용됐다고 한다.
온화한 백색에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밈없는 형태를 갖춘 이백자에 달항아리란
문학적 이름을 지어준 것은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와 그의 절친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 알려져 있다.
김환기는 달항아리와 보름달이 조화를 이룬 그림을 자주 그렸고 관련 시와 수필을 남겼다.
1963년 신문 칼럼을 통해 달항아리란 단어를 지면에 처음 등장시킨 최순우는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는 한국민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할 수 없다”고 극찬했다.
지난 2000년 한국실을 개관한 대영박물관은 주요 유물로 백자대호를 소개하면서
‘Moon Jar(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1년 새 단장을 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백자실에 13.5㎡의 달항아리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주인공은 높이 41㎝, 몸통 지름 40㎝의 보물 제1437호로 뒤 벽면에는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세기 문인화 4점을 재구성한 영상이 흐른다.
도자기 원료인 태토는 구의 형태로 빚기가 어렵다.
흙 자체의 무게 때문에 넓고 둥글게 빚어 올리면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 도공들은 먼저 큰 대접 2개를 빚은 뒤 그중 하나를 엎어 이어붙였다.
그러나 원래 하나의 몸통이 아니다 보니 불가마에서 변형이 일어나 허리선이 살짝 찌그러진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도공들은 이 결점을 자연의 현상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여유와 해학으로 받아들였다.
지난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달항아리를 선물했다.
달항아리는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조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발전시켰던
영·정조 진경시대(眞景時代)가 빚어낸 걸작이다.
특히, 달항아리의 세계적 작가 박영숙은 “아래·위 사발이 깨지지 않고 서로를 꽉 껴안은
걸 보면 흡사 부부 같다.
자기를 허물고 상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미·중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 적합한 선물인 것 같다.
[오후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