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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이 경점(景点)이더라 – 흰덤이산,양각산,시코봉,수도산
왼쪽 멀리 뾰쪽한 산은 박유산, 그 앞 오른쪽은 보해산과 금귀산
산기슭에 앉아서 우러르거나, 봉우리 정수리에 올라서서 굽어보거나 할 양이면, 으레 산의 높이와 깊이는 가리고
만다. (…) 그래서 산의 높이와 깊이를 함께 느껴 가질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은 따로 있다고 등산가일 뿐 아니라
이름난 화가이기도 한 에드워드 윔퍼는 그의 <알프스 등정기>에서 화가다운 독특한 안목을 이렇게 밝혀놓고 있다.
“골짜기에서 산의 높이를 재기가 어렵듯이 높은 산에서 많은 산을 내려다볼 때에는 그 하나하나의 높이를 알아보기
힘들다. 산의 경치를 가장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높이와 깊이가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멀리 이것저것 보이는 높이이면서도 대상이 눈 아래 깔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이다. 그랑뚜르날랭이 바로 그러한
전망을 가졌다.”
―― 김장호(金長好, 1929~1999),『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1995) 중의 ‘산의 미학’에서
▶ 산행일시 : 2023년 8월 12일(토), 맑음, 연무
▶ 산행코스 : 심방마을,흰덤이산,양각산,시코봉,신선봉(수도산 서봉),수도산,수도산 동봉,구곡령,불석계곡,
허끼나무골,심방마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1.6km
▶ 산행시간 : 5시간 40분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43명) 버스 타고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3 – 신사역 5번 출구
07 : 24 – 죽전 간이정류장( ~ 07 : 29)
09 : 13 – 통영대전고속도로 금산인삼랜드휴게소( ~ 09 : 38)
11 : 10 – 거창군 가북면 증촌리 심방 마을, 산행시작
11 : 50 – 흰덤이산(白石山, 흰대미산, △1,018.5m)
12 : 04 – 안부
12 : 45 – 양각산(兩角山, 1,157.5m), 점심( ~ 12 : 56)
13 : 17 – 1,159m봉
13 : 38 – 시코봉(1,236.5m)
14 : 28 – 신선봉(수도산 서봉, 1,313m)
14 : 35 – 수도산(修道山, △1,317.4m), 휴식( ~ 14 : 45)
15 : 05 – 구곡령
16 : 50 – 심방 마을, 산행종료
18 : 00 – 버스 출발
21 : 28 – 신사역
2. 산행지도
▶ 흰덤이산(白石山, 흰대미산, △1,018.5m)
흰덤이산 들날머리인 거창 심방 마을이 멀기도 하다. 가는 도중에 통영대전고속도로 금산인삼랜드휴게소에 들러
20분을 보낸 것을 감안하더라도 4시간 가까이 걸린다. 무주 삼공리 구천동을 지나고 준령인 빼재 터널을 넘는다.
심방 마을이 산간 오지라서 ‘深方’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尋芳’이다. 방(芳)을 대표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산비탈(온통 산비탈이다) 밭에는 사과 아니면 오미자를 심었다. 심방 마을에 도착하니 11시 10분이다. 한낮에 산행
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남한의 3,000개 산을 다 갔으니 아무 산에 대해서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물어 보시라는 우리
의 Opro 수석알엠 진행대장님은 여기 오는 도중에 산행안내 방송하면서, 양각산 등은 위태로운 암릉을 오르내려야
한다며 자신이 없으신 분은 대로 따라 수도산만을 올라갔다가 내려오시라고 간곡히 종용한다. 산행을 마칠 무렵에
알탕할 데가 있느냐는 물음에 계류는 도랑 수준이라며 좀 떨어진 대천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미리 말하자면, 우리나라 남한의 3,000개 산을 다 갔으니 아무 산에 대해서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물어
보시라는 우리의 Opro 수석알엠 진행대장님의 말씀은 도무지 믿을만한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양각지맥 주릉은
암릉이 더러 나오지만 걸음마할 수준이라면 누구라도 오르내릴 수 있고, 구곡령에서 심방 마을로 내려오는 도중의
좌우의 수많은 지계곡과 주계곡에는 대소와폭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산골을 울리며 포말을 자욱이 날리고 있었다.
한낮에 산행을 시작하려니 마음이 급하다. ‘흰덤이산 1.5km’라는 이정표 방향표시 따라 임도를 간다. 땡볕을 고스
란히 안고 간다. 임도는 벌목한 산자락을 길게 돌아 오른다. 되게 가파르다. 얼마 안 가 눈 못 뜨게 비지땀을 쏟는다.
능선에 오르고 나무숲 그늘에 들어도 바람 한 점 없어 후덥지근하다. 심방(尋芳)의 ‘芳’은 혹시 덕순이가 아닐까,
자꾸 뒤로 물러나는 공제선 긴 오르막에 파적(破寂)할 양으로 좌우 사면을 예의 둘러보지만 내내 빈 눈이다.
심방 마을에서 흰덤이산을 오르는 등로는 세 갈래가 나 있다. 맨 오른쪽은 능선 길이고 다른 두 갈래는 큰죽다리골
등 골짜기를 길게 올랐다가 양각지맥 주릉에 올라선다. 왕도는 없다. 능선 길은 미리 양각지맥 주릉에 오르게 되므
로 왼쪽으로 약간 더 가야 한다. 고정밧줄 잡고 슬랩 한 피치 오르면 흰덤이산 정상이다. ‘덤이’의 ‘덤’은 돌을 쌓아놓
은 모양을 말한다. 흰덤이산 정상 표지석은 흰 화강암에 ‘白石山’을 병기했다. 주변은 흰 바위다. 삼각점은 ‘무풍
320, 1983 재설’이다.
흰덤이산을 오를 때까지는 울창한 숲속이었는데 정상에 올라서니 일시에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인다. 듬직한 단지봉,
대번에 눈길을 끄는 내 여태 보지 못했던 봉긋한 봉산, 수도산에 이르는 장릉 등이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게 한다.
3. 흰덤이산에서 전망, 앞은 양각산, 오른쪽 멀리는 수도산
4. 오른쪽 멀리는 봉산(902.1m)
5. 단지봉
6. 흰덤이산 정상
7. 봉산(902.1m)
8. 왼쪽 멀리는 덕유산 향적봉
9. 멀리는 육십령에서 남덕유산으로 가는 백두대간
10. 멀리 왼쪽이 덕유산 향적봉
11. 우리를 응원하는 원추리
12. 가운데가 보해산, 그 뒤 오른쪽은 금귀산, 왼쪽 뒤는 박유산
13. 멀리 가운데는 두무산, 그 왼쪽 앞은 비계산
14.1. 단지봉, 그 왼쪽 뒤는 좌대곡령
14.2. 앞 오른쪽이 흰덤이산, 왼쪽 멀리는 보해산과 금귀산
▶ 양각산(兩角山, 1,157.5m)
방금 올라온 양각지맥 주릉 슬랩 내린다. 양각지맥은 수도지맥의 분기봉인 시코봉에서 남진하여 양각산, 흰덤이산,
보해산, 금귀산, 박유산, 일산봉을 넘어 황강과 가천천의 합수점인 가천교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지맥 접근거
리(6km)를 포함하여 약 44km로 대개 2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한다. 웬만한 산꾼이라면 굳이 양각지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개별 산으로 모두 올랐으리라.
흰덤이산에서 완만한 0.9km를 내리면 바닥 친 안부다. 흰덤이산에서는 한 달음에 갈 것 같던 양각산을 준봉으로
높여 놓고 오른다. 양각산의 서봉은 주봉의 관문이다. 주봉은 첨봉이다. 등로 옆 원추리가 꽃술 흔들며 응원한다.
바윗길이 나온다. 연무가 끼었으나 하늘금인 덕유산 연봉에 이르는 첩첩 산이 원근농담의 가경이다. 바윗길의 연속
이다. 슬랩에는 난간을 설치했다. 이때는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그간 적조했던 보해산과 금귀산, 박유산이 반갑다.
뭇 산 저마다 간직한 사연이 없겠느냐마는 박유산(朴儒山, 712)은 특히 애틋하다. 신라 처사 박유가 이 산에 은둔한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은 이지활(孤隱 李智活, 1434 ~ ?)의 은둔은 쓸쓸하다. 그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을 사직하고 이 박유산에 들어와 망월정(望月亭)을 짓고 단종을 생각
하며 북향재배하였다고 한다. 그는 다음 시 한 수를 지어 단종에 대한 절의를 나타내었다.
夜夜相思到夜深 그리운 님 사모하느라 밤은 깊어 가고
東來殘月兩鄕心 동에서 오는 잔월 두 고을 비추네
此時寃恨無人解 이 한스러운 마음 알아주는 이 없어
孤倚山亭淚不禁 외로이 산 정자에 기대어 눈물 흘리네
양각산 서봉에서 주봉은 0.4km 떨어져 있다. 잠시 하늘 가진 숲속을 지나다 바윗길을 오른다. 손을 뻗쳐 바위 턱을
붙잡을 때는 그 위에 혹시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독사를 움켜쥐지나 않을까 무척 조심스럽다. 바위 턱 붙잡고
머리 내미니 너른 암반에 마치 우박이 내린 듯이 하얀 꽃봉오리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뛰는 장관이다. 난쟁
이바위솔(Meterostachys sikokianus (Makino) Nakai)이다. 깊은 산의 바위에 사는 여러해살이풀로 세계적으로
일본과 한반도에만 자라는 희귀식물이라고 한다. 이런 기화요초를 보면 두고두고 기분이 상쾌하고, 덩달아 양각산
도 좋아진다.
왼쪽 우회로 마다하고 흐릿한 인적 쫓아 암릉 길을 직등한다. 지난주에 수락폭포 슬랩에서 구른 일이 예방주사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더듬어 딛는다. 양각산도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이는 암봉이다. 오석의 정상 표지석 옆에 오석 판석
에 양각산을 소개하는 글을 새겼다.
“양각산은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에 위치하고 있는 명산으로서 화강암 지반을 갖고 높이 솟은 두(二 ) 봉우리가 소뿔
(牛角)과 같다고 하여 이름 지어졌다.
소(牛)와 인연한 이름으로 양각산 아래에 소(牛)의 ‘머리’와 같다는 우두령(牛頭嶺)이란 고개가 있으며, 소(牛)의 ‘물
을 먹는 그릇’과 같다는 구수(口水)마을, 소(牛)의 ‘불알’과 같다고 우랑(牛郞)이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으며, 양각산
의 옛 이름은 금광산(金光山)이라고 하였다.(…)”
양각산 정상에서 늦은 점심밥 먹는다. 둘러보는 주위의 가경이 한 반찬 한다. 독작하는 냉탁주 정상주 맛이 또한
각별하다. 잔 거푸 비운다.
15. 난쟁이바위솔
이런 기화요초를 보면 두고두고 기분이 상쾌하다.
17. 봉산(902.1m)
18. 단지봉, 그 왼쪽 뒤는 좌대곡령
19. 왼쪽 멀리가 시코봉, 오른쪽 멀리는 수도산
20. 멀리는 덕유산
21. 맨 오른쪽은 양각산, 맨 왼쪽은 보해산과 금귀산
22. 봉산(902.1m)
23. 수도산 서봉과 수도산(오른쪽)
24. 가운데는 보해산, 그 뒤 오른쪽은 금귀산, 왼쪽 뒤는 박유산
25. 맨 오른쪽은 양각산, 그 왼쪽 뒤는 흰덤이산, 멀리 가운데는 기백산
26. 왼쪽 멀리는 가야산, 맨 오른쪽은 단지봉
▶ 시코봉(1,236.5m), 수도산(修道山, △1,317.4m)
세상의 한 가운데를 간다. 왼쪽은 기백산, 금원산, 덕유산 연릉, 오른쪽은 가야산,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등. 연무
가 없이 날이 맑다면 뒤에는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렀으리라. 숲속에 들어 눈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암봉에 오르고
눈이 시리도록 거침없는 사방을 둘러보기 반복한다. 골 건너 단지봉은 내내 푸짐하고 너른 품이다. 뒤돌아보는 양각
산은 아까보다 더 뾰쪽하다. 15년 전 가을날 오지산행에서 이 길을 갔다. 그때는 월매산에서 금귀산으로 갔다. 도상
27km. 12시간 32분 걸렸다.
그때 무박산행에 함께 갔던 악우들이다. 대간거사, 산진이(악수), 가난한 영혼, 한메, 사계절(사계), 상고대, 옥지갑,
무크, 메아리, 베리아, 영희언니, 다훤, 신가이버.
저 앞 봉우리에 오르면 경치가 또 어떠할지 궁금하여 숲속에서는 어서 가보자 하고 잰걸음 한다. 완만한 오르막이
다. 시코봉. 거창군에서 포도송이 곁들인 큼직한 정상 표지석을 세웠다.
시코봉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인 산이다. 수도지맥에서 양각지맥이 분기하는 산행교통의 요충지
이다. 시코봉이 ‘소의 코’라는 뜻이라고 하니, 소코, 혹은 쇠코가 변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정표에 여기서 수도산이
1.4km이다. 아껴 걷는다. 이제 왼발은 경상북도를, 오른발은 경상남도를 걷는다. 봉산은 더욱 가깝고, 뒤돌아보는
박유산 또는 기백산에 이르는 봉봉이 보고 또 보는 가경이다. 숲속 길에 불과 20분을 버티지 못한다. 암봉 올라 머리
를 내밀게 되는 것이다.
수도산 서봉. ‘신선봉’이라고도 한다. 김천시에서 선점하여 정상 표지판을 세웠다. 수도산 주봉이 가깝다. 0.3km.
7분 거리다. 잠깐 숲속에 들었다가 바윗길 난간 붙들어 오르면 정상이다. 이 근방 뭇 산을 거느린 맹주다. 삼각점은
1등이다. 무풍 11, 2016 재설. 맹주답게 오늘 산행의 최고 경점인데 연무가 점점 더 짙어졌다. 석화성 가야산은 보
이지 않는다. 하산. 심방 마을까지 5.2km가 줄곧 내리막이다.
수도암 쪽으로 가는 ┣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사면 돌아 오르면 수도산 동봉이다. 동봉 내리는 길은 가파른 슬랩
이다. 이어 울창한 숲속에 든다. 수도산에서 20분 걸려 ┣자 갈림길 안부인 구곡령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내린다.
경상남도 거창군에 든다. 펑퍼짐한 내리막이다. 등로는 수로이기도 하고 수로가 여러 갈래로 났다. 인적 찾기가
어렵다. 계류와 함께 내린다. 절벽에 막히고 큰물로 흐르는 계류 건너 언덕바지 오르니 임도다. 길이 풀렸다. 임도는
곧장 심방 마을로 간다.
어디서 땀을 씻을까 연신 계류를 기웃거리며 간다. 임도는 주계곡에 멀찍이 떨어져서 간다. 오른쪽 지계곡도 옥수가
흘러넘친다. 수재동(秀才洞).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에 따르면 오래전에 박수재라는 사람이 살던 마을이라고
하여 그렇게 이름 하였다. 그 오른쪽 지계곡의 층층폭포가 볼만하다. 그 위쪽에 올라가 옥계암반에 가부좌 틀고
수도하듯이 물맞이한다. 그러나 물이 생각보다 차가워서 한 생각도 펼칠 틈이 없이 얼마 못 버티고 빠져나오고 말았
다. 심방 마을까지 시원하여 간다.
그 산을 갔느냐는 진부한 물음이다. 그 산을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야 한다. 심방 마을을 들머리와 날머리로 하여
흰덤이산과 양각산, 수도산을 오른 것은 처음이다. 아울러 그 산들 또한 처음처럼 올랐다.
27. 단지봉
28. 멀리 오른쪽 구름에 가린 산이 덕유산이다.
29. 박유산과 보해산, 금귀산
30. 가운데는 흰덤이산, 그 뒤 멀리 가운데는 기백산
31. 맨 오른쪽은 좌대곡령, 가야산은 구름에 가렸다.
32. 단지봉
33. 구곡령에서 심방 마을 가는 길
34. 등로 옆 계곡
36. 수재동 등로 옆 지계곡
저 위쪽 옥계암반에 가부좌 틀고 수도하듯 물맞이하였다.
37. 이질풀
38. 더덕 꽃
첫댓글 시원한 조망속에 산행을 하고, 시원한 계류에 땀을 닦으니 몸과 마음이 시원하겠습니다^^
양각지맥과 수도지맥은 시원한 조망을 자랑합니다.^^
흰덤이산 아름다운 이름과 난쟁이바위솔 군락 때문에라도 찾아가고픈 곳이네요.
너른 암반을 뒤덮은 난쟁이바위솔을 처음 보았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다시 또 저희 고향 거창 가조를 가셨군요.
가북 중촌 심방마을은 저희 형수의 고향입니다.
지금도 사돈어르신 두분은 거기에 살고 계십니다.
가북 중촌 심방마을의 심방 한자가 尋芳이었군요.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芳年 18세의 그 방(芳), 流芳百世(향기가 백대에 흐름)의 그 방(芳 꽃다울 방)이었네요.
尋은 찾을 심이니, 尋芳이란 "향기를 찾아서" 그러니까 "꽃 감상에 젖다"정도 아닐까요.
芳이 "덕순이"이시라니, 역시 오지산행의 대가다운 냄새가 솔솔 풍깁니다. ㅎㅎㅎ
아,,, 검색을 해보니
유명한 송나라 주희(朱熹)의 漢詩 '춘일(春日)'에 尋芳이란 말이 있네요.
여기서의 '심방(尋芳)'은 '성인의 도를 구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춘일(春日)
*주희(朱熹)
勝日尋芳泗水濱 無邊光景一時新
等閑識得東風面 萬紫千紅總是春
맑은 날 꽃을 찾아 사수가에 왔더니
끝없는 광경 일시에 새롭구나.
한가로이 거닐다 동풍이 얼굴에 닿는 줄 알았네.
만자천홍(萬紫千紅) 필경 봄이로구나.
아무리 오지라고 해도 심방 마을 만큼 오지는 없을 것 같더군요.
가게도 없고, 물론 음식점도 없고...
저 코스는 제가 중학교 때 친구들하고 한번 간 기억이 납니다.
완전 촌구석이라 장비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버스타고 가서 한바퀴 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중학교 졸업전에 가북 용암마을을 통해 수도산-가야산을 간 기억도 납니다.
그 당시엔 가조, 가북이 이리도 좋은 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로 산좋고 물좋은 곳에서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까지 저기 가조에서 살다가 대학 들어가면서 서울로 왔으니,
앞으로 10년 후에는 저기로 다시 가야하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마눌이가 쉽게 허락을 하질 않을 듯 합니다.
ㅎㅎㅎ
게다가 지금 아버지, 어머니 사시는 장군봉 아래 당동마을의 저희 집은 저희 형이 먼저 선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ㅎ
만만찮은 코스인데, 고생 많으셨네요.
심방마을엔 거창사과가 유명합니다.
지금은 오미자도 기른다고 하네요.
용암마을은 마가 유명하기도 합니다.
가조는 복수박과 딸기가 유명하지요.
난쟁이바위솔이 정말 이쁘네요.
아닌 게 아니라 온통 사과와 오미자 농원이더군요.
하기야 산간벽지이니 그런 특용작물이 제격일 것 같더군요.^^
굴곡센 산줄기를 한여름에 ㅠ
이젠 편안히 다니는게 만수무강에 좋을듯요ㅎ
알탕하는 맛에 가지요.
그렇지만 캐이 님처럼 등로주의가 아니라 등정주의이니 훨씬 수월합니다. ^^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