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에세이
욕쟁이 할머니 국밥
(국밥 한그릇 ? 원)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빈 뚝배기 그릇에 퍼담은
국밥 한 그릇과
깍두기 한 접시를 먹을 만큼 담아 와
자리에 앉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요
“ 많이들 처무라...“
공부하는
학생들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시는 할머니는 척 봐도 이 가게의 주인인 욕쟁이 할머니 같아 보입니다
그렇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찾아온 사람들이
배부른 트림 한 점에 구부러진 하루를 버틸 용기를 내서인지
“할매요..
잘먹고 갑미데이....”
살어음 녹듯 살가운 인사를 건네며
나무상자에 돈을 넣고 나가는
사람들마다 밥값이 다른 걸 보며
여쭈어 봤더니
“씨벌을 놈 별기 다 궁금한갑네….”
라며
주방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새벽녘을 걸어 나와
커다란 가마솥에 정성 가득 끓여놓은
국밥 한 그릇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걸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할머니에게도 내일을 열어갈 희망이 되고 있었는데요
“아까부터 밥무면서 오만 인상은 다 찡그리고 뭔 일 있디나?“
“요즘 돈벌이가 시원 찮아서인지
행복하지가 않네예”
“돈벌이가 잘돼 만족한다 해서
행복이 생기는 게 아니다
이 할매 따라서 한번 웃어봐라.”
오래된 토담이 무너진 듯
듬성듬성 빠진 이빨을 내보이며
웃고 있는 할머니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온 남자에게
“그 봐라 웃으니 올매나 좋노
오늘 밥값은 이 할매가 쏠테니까네
얼굴 좀 펴고 댕기라"
“푸하하하하“
옆 테이블에서 산울림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젊은이가 일어서더니
“할매요..
지도 웃었으니까 밥값 공짜지예?
“저 씨불를 놈이 이 할매를 거들 낼라카네...그래 니도 오늘 이할매가 쏜다“
어느새
웃음식당으로 변해버려서인지
지친 어깨에 하얗게 묻은 먼지 같은 하루를 웃음 한 가닥으로 털어내는 손님들을 보며
옥쟁이 할머니의 하루도
또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
손님이 끊어진 자리에 나무 돈통을
탁자 위에 엎어버리자 천 원짜리와
백 원짜리만 한가득인 걸 보고선
“주인할매요
우리도 국밥값을 정해야지
이러다 망할 것 같구먼유“
주방 아줌마의 봇물 터진
넋두리에
“코로나 같은 세상 풍파가 불면
바람보다 먼저 눕는 게 우리 같은 서민들 맘 아이가“
“대한민국 식당에 밥값을 손님 맘대로
내는 식당은 여기밖에 없구먼유“
“지나다니는 사람들 얼굴 좀 봐라
똑같은 얼굴이 어디 있디나
그것처럼 사람들 주머니 사정도 다 다른거 아이겠나"
"그래두 할머니?"
"사람들 주머니 사정따라 내면
되는 기제“
"이리 장사 해가 좋은 차 한번
못 타보고 죽것네유"
"세상에서 제일 큰 차를 타고 다니면 된 기제"
"할매가 무슨 차가 있기나 한데유"
"지하철 안 있나?"
그때
성질 급한 낮달이 나와 앉을 길을 따라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는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부터 먼저 챙깁니다
“와….
초저녁 댓바람부터 벌써 술이고?“
“새벽별 보고 나와가 일하면 뭐합니꺼
하나 있는 아들이 나이가 사십이
다 돼가는데도 취직할 생각은 안 하고
게임에 빠져 지내니 속이 터진미더“
“예전에 자식 아니었던 사람 있었디나
다 부모 속 썩이면서 철이 드는기다"
“지도 해 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는 게 서글푼미더”
“나이한테 자꾸 구박하지 마라
나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나“
“나이가 무슨 일을 함미꺼?“
“니 요만큼 철들게도 해주고
세상 보는 눈도 만들어주고
인간노릇하고 살게 해주는 게 나이 아이가?“
드르륵....
지나는 바람을 따라.노란 달빛을 머리에 이고 들어오는 남자를 보며
할머니는 죽은 자식이 살아온 듯
반깁니다
"이기누꼬
까까머리 철규 아이가?"
"어머니도 건강하셨습미꺼?
"서울 가서 돈 번다꼬
고등학교 졸업하고 떠나가더니만
중년이 되어 돌아왔네"
"그렀네예
서넛 시간 달려오면 되는 곳을
왜 이제서야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네예"
무엇이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 했는지
무엇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다 놓은 것인지
50년이란.시간만이 알고 있는 정답을
풀어보겠다고 여기 온 남자를 보며
소주 한 잔을 건네던 할머니는
"움켜쥐고 산다고 그런 거 아이겠나
담을 때는 쉽지만도 비울 때는 힘든 게 욕심인기라.."
어릴적 아들 친구였던 아이가 중년이 되어 찾아와 술 잔을 넘기는 모습을
먼 산 긴 그리움이 된 채 바라보던 할머니는
묵음으로 전해오는 그리움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한 바탕 그려놓더니
부르기만 해도 가슴 먹먹한 그 이름
아들 이름을 되뇌어봅니다
내 새끼 배곯는 것도 모르고
돈 한 푼 더 벌 거라고 머리에 생선
궤짝을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넘어다니다 내려선 폭설에 발이 묶여버린 엄마를 애타게 부르다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된 그 이름을
뼈마디 마디 주름사이에 밀어 넣고 산
눈물을 두 손 가득 담아내던 할머니는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보낸 내게
작은 소망이 하나 생기더구나"
산다는 게
욕심이 되어버린 서민들을
비추는
희망의 등대가 되어 줄 거라는...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