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찾아오는 장마니 지겹다구 한다구 멈출것도 아니구 수십년을 격어온 세월인데 새삼스레 유난 떨일은 아니지만 이자그마한 나라에서 어딘 난리나고 어딘 멀쩡허구
1960년대 후반쯤 난 상암동이 고향이라서 장마때 홍수가 나면 온동네 꼬맹이 들이 바로옆으로 흐르는 샛깡으로 달려가 물구경 하는것이 나름 구경거리 였다 그샛깡이 현제 난지도 하늘공원 앞에 흐르는 냇가 그자리다. 동네 아저씨들 겨울철 땔감구하려고 강가에 다모인다 어떻게? 저상류 양수리 에서 수많은 나무들이 뽑히고 해서 떠내려오면 갈구리에 줄연결해 던져서 끌어올리는 때때로 초가집이 통째로 내려 오기도 하고 또 돼지나 소도 떠내려오면 짐승들도 건저내어 나중에 주인들을 찾아 주기도 하고 돼지는 그냥 동네잔치용으로 쓰기도 했었던 그렇게 장마로 한바탕 동네가 난리나고 한편 난지도에 살던 주민들 또한 모두 동네로 피난나와 물이 빠질때 까지 머물고는 했었다 그당시 난지도에는 지금도 상암동에 자리잡고 있는 삼동 고아원이 있었다 그많은 애들이 머물곳이 없어 동네에 대형군용천막을 치고 임시로 거주했던 그당시 난지도 섬으로 들어가는 나룻배가 있었는데 내기억으론 어린이는 일원인가 받았던 그리고 샛깡 맞은편 산위에는 경동산장 이란 일류 호텔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유명세를 타게된 계기는 최무룡과 김지미가 그곳에서 불륜으로 걸리면서 메스컴을 타는 바람에 유명해진 그리고 얼마후 호텔은 문을 닿고 그자리에 삼동 소년촌< 고아원> 이 난지도 에서 이리로 옮기는 ... 비가 그치면 집에 있던 소투리를 가지고 논으로 향했다 논에 물고를 터놓아 미꾸라지나 붕어들이 득실거려 그걸 잡으려고 다모여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큼지막한 미꾸라지는 들판에 불을피워 미꾸라지에 소금간을 해서 구워 먹으면서 단백질 보충을 했었던 기억이난다
이렇게 어린시절 아부지 께서 백수이시다 보니 모 때꺼리가 있었을까 박여사 께서 날품팔아 겨우 입에 풀칠 할때 였으니 내가 7살되서야 아부지께서 순위고사 치뤄 교직에 몸담고 나서야 겨우 ... 암튼 먹는거 하나는 타고나서 붙여진 별명이 돼지 였다 어릴적 꼬맹이때 동네 아줌마 젖은 다 빼앗어 먹었다고 하니.. 어릴적부터 늘어난 뱃골로 인해 청소년이 되고부터는 라면은 기본이요 짜장면 빨리먹기 에서는 곱빼기가 아닌 보통으로 5초내에 먹어치워 내기에선 타의추종을 .. 그리고 고빼기 는 3그릇 이상 먹었는데 주머니 사정때문에 .. 그러니 라면 8개는 기본에 찬밥까지 말아 먹었던 또하나는 학교앞에서 파는 통통한 만두 80개씩 먹어 치우고도 살이 찌지 않았던 ..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터 몸무게가 95키로 까지 육박 하다 군에가니 지금의 몸을 유지 하다가 제대하고 또다시 90키로대로 유지를 했던 것이다 지금 허리가 31인치 인데 그때는 38까지 나갔던
첫댓글 몸무게가 많이 줄었네요
나이들면 다들 쪄서 걱정인데 ㅎ
예전에 비하면 엄청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고 왜유 ㅎ
장마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온 것 같기도하고...
지구환경의 변화로 한반도 지역도 변하고
있으니 그런가봅니다.
입에밴걸 어쩌겠어요 얼마 안남은 삶
시간은 각자가 가진
고유의 재산이요 유일한 재산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지당하신 말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