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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Midnight Pupil, 류드밀라 이그나텐코의 회고록
미드 체르노빌에 나오는 류드밀라 이그나텐코 실제 인물의 회고록인데 생생하면서도 슬퍼서.. 드라마 장면이랑 같이 구성해봄
실제 회고록은 이것보다 훨씬 긺
우리는 갓 결혼했다. 거리를 걸을 때나, 상점 안에서도 손을 잡고 다녔다. 항상 붙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다. 전혀... 우리는 그가 근무하던 소방서의 기숙사에서 살았다. 2층이었다. 우리 말고도 신혼부부가 셋 더 있었고 부엌을 같이 썼다. 1층에는 차가 있었다. 붉은 소방차가 있었다. 그곳이 그의 일터였다. 나는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언제나 알았다. 밤중에 어떤 소음, 고함이 들렸다. 창 밖을 내려다봤다. 그가 나를 발견했다.
"창문 닫고 자. 발전소에 불이 났어. 빨리 들어갈게."
폭발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화염만 보였다. 모든 것이 환해진 것만 같았다. 하늘이 화염, 그을음, 무서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가 오지 않았다. 콘크리트로 덮였던 발전소 지붕이 타면서 그을음이 생겼다. 그는 나중에 당시를 떠올리면서 마치 나뭇진 위를 걷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기면서 화재를 진압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불타는 흑연을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그들은 방호복도 없이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출동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평범한 화재인 줄 알고 출동했다.
가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살아 있는 목소리. 사진 속 모습보다도 더 진짜 같은 목소리. 하지만, 절대로 그가 먼저 나를 부르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내가 그를 부른다.
7시. 7시에 그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둘러 달려갔지만 이미 경찰이 병원을 에워싸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구급차만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들은 구급차가 피폭됐으니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나뿐만 아니라 그날 밤 발전소에 있던 남자들의 아내들이 모두 뛰어왔다. 나는 그 병원의 의사인 지인을 찾아 나섰다. 그녀가 차에서 내릴 때 가운을 잡아 끌었다.
"나 좀 들어가게 해줘요!"
"안 돼요! 남편분 상태가 안 좋아요. 모두 상태가 안 좋아요."
그녀를 붙잡고 애원했다. "보기만 할게요."
"알았어요. 그럼 빨리 가요. 15분, 20분 만이에요."
그를 보았다. 온 몸이 부어있었다. 눈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우유가 필요해요. 많이 필요해요! 적어도 3리터씩은 마시게 해야해요."
"제 남편은 우유를 안마셔요."
"지금은 마셔야 할 거에요."
이 병원의 많은 의사, 간호사, 특히 간병인들은 얼마 후 아프게 된다. 죽는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시내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가장 가까운 마을로 우유를 구하러 갔다. 3리터들이 우유를 여러 병 샀다. 모두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여섯 병을 샀다. 하지만 그들은 우유를 마시더니 다 게워냈다. 계속 정신을 잃어 링거를 투여했다. 그 사이 도시는 군 장비로 가득찼고 도로는 통행이 금지됐다. 어딜 가든 군인이 있었다. 전차도, 기차도 운행을 중단했다. 정체 모를 하얀 가루로 거리를 청소했다. 방사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군인들만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은 상점에서 빵을 샀고, 사탕도 봉지를 연 채로 가지고 갔다. 매대 위에는 케이크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다만, 어떤 가루로 거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병원 출입이 금지됐다. 병원 주변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의 병실 창가로 갔고, 그가 나에게 무언가 소리쳐 말했다. 너무나 비참했다. 그들을 밤에 모스크바로 이송한다는 소문이 무리 중에 돌았다. 아내들이 모여 남편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때 의사가 나와 환자들을 비행기에 태워 모스크바로 이송할 거라고 하면서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발전소에서 입고 있던 옷은 모두 타버린 것이다. 버스가 끊겼기에 우리는 시내를 가로질러 집으로 뛰어갔다. 가방을 들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비행기가 이륙한 뒤였다. 일부러 우리를 속인 것이었다.
밤. 도로 한쪽은 버스 수백 대로 채워졌다. 벌써 주민을 소개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다른 한쪽에는 소방차가 수백 대 서 있었다. 사방에서 모아온 것이었다. 거리는 하얀 거품으로 가득 찼다. 그 거리를 우리는 걸었다. 욕하면서, 울면서...
아침에 일어나 혼자 모스크바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 몸으로 어딜 가려고?" 어머님께서 우셨다. 아버님도 같이 가기로 했다. "데려다 주실 거야." 아버님께서 은행에서 돈을 찾으셨다. 있던 돈 전부 다...
어떻게 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에서 또 사라졌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첫 경찰에게 체르노빌 소방관들이 입원한 병원이 어딘지 물으니 국가기밀이라며, 내가 놀랄 정도로 겁을 줬다.
슈킨스카야 거리에 있는 6번 병원이었다. 방사선 전문 병원인 이 곳은 출입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경비원에게 돈을 건네니 몇 층으로 가라며 들여보내 줬다. 누군가를 또 붙잡고 애원했다. 마침내 방사선과 총괄자인 안겔리나 바실리예브나 구시코바 선생님의 방에 들어가 앉았다. 당시에는 성함도 몰랐고, 무슨 말을 들어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나에게 물었다.
"아이는 있어요?"
어떻게 솔직히 말하겠는가? 임신을 숨겨야 한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그를 못 만나게 할 테니까! 다행히 몸이 말라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몇 명이에요?"
둘이라고 말해야지, 하나라고 해도 못 보게 할 것 같았다.
"여자애, 남자애 하나씩이요."
"둘이라니 더 낳을 계획은 없겠네요. 그럼 이제 잘 들으세요. 중추신경계과 골수가 완전히 고장났어요."
'괜찮다, 조금 예민해지겠지.' 내가 생각했다.
"또 들으세요. 여기서 울면 되돌려 보낼거에요. 포옹도 키스도 금지에요. 가까이 가지도 마요. 면회 시간은 30분이에요."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떠나지 않을 각오가 됐다. 떠난다면, 그와 함께일 것이다. 자신에게 맹세했다.
들어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카드 놀이를 하면서 웃는 모습들이 보였다.
"바샤!" 다른 사람들이 그를 불렀다. 그가 돌아섰다.
"세상에! 사라진 나를 여기서 찾아냈군!"
평소에 52호를 입던 그가 48호 파자마를 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있었다. 소매도 바지도 짧았다. 그래도 얼굴의 부기는 가라앉았다. 어떤 액체를 투여 중이었다.
"왜 갑자기 사라진거야?" 내가 물었다.
나를 안으려 했다.
"가만히 있어요." 그가 내게 못 다가오게 의사가 막았다. "안돼요."
우리는 그 상황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 사이 다른 병실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었다. 프리퍄티 사람들.
1분 만이라도 남편과 단 둘이 있고 싶었다. 동료들이 눈치를 채고는 각자 핑계를 대며 한 명씩 복도로 나갔다. 그러자 나는 그를 껴안고 입 맞추었다. 그가 피했다.
"옆에 앉지 마. 저기 의자에 앉아."
"그거 다 거짓말이야." 내가 손을 내저었다. "어디서 폭발이 일어났는지 당신은 봤어? 무슨 일인거야? 당신이 제일 먼저 거기에 도착했잖아."
"아무리 봐도 모종의 시위야. 누군가 일부러 꾸민 일 같아. 동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해."
그때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줄 알았다.
누워 있었다. 복도에도 절대 못 나가게 했다. 서로 대화도 금지됐다. 대신 벽을 두드리며 소통했다. 짧게, 길게, 짧게, 길게, 짧게.... 의사들은 생체마다 방사선 노출에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격리했다면서, 한 사람이 일정 수치를 견뎌내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러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입원한 병실은 벼까지 피폭됐다. 왼쪽, 오른쪽 병실도, 아래층의 병실까지... 거기 있던 환자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아래층에도, 위층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의 모습이 변해갔다.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화상이 겉으로 드러났다. 화상을 입은 입안, 혀, 뺨에 처음에는 작은 물집이 생기더니 계속 커졌다. 하얀 필름 같은 점막이 몇 겹씩 벗겨졌다. 얼굴과 몸이 파란색, 빨간색, 회갈색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나는 그 몸까지도 너무나 사랑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견뎌낼 수도 없었다. 다행히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할 겨를도, 울 시간도 없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때까지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다! 우리는 신혼이었다. 아직 사랑을 다 표현하지도 못했다. 거리를 걸을 때면 그가 내 손을 잡고 뱅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나에게 키스하고, 또 키스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미소 지었다.
14일 간의 급성 방사선 장애 치료.... 그 열나흘 동안 사람은 죽어간다.
5월 9일. 남편은 항상 나한테 말하곤 했다. "모스크바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모를거야! 특히 승전 기념일에 불꽃놀이 할 때는 더 예뻐. 너도 꼭 봤으면 좋겠어." 병실에서 남편 옆에 앉아 있는데, 그가 눈을 떴다.
"지금 낮이야, 밤이야?"
"밤 9시야."
"창문 열어봐! 불꽃놀이 시작했겠다."
창문을 열었다. 8층이라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불꽃 다발이 하늘로 올라갔다 떨어졌다.
"멋져!"
"내가 모스크바를 보여준다고 약속했잖아. 평생 기념일마다 꽃을 선물한다는 약속도 했지."
그때 남편이 베개 밑에서 카네이션 세 송이를 꺼냈다. 간호사에게 돈을 주고 부탁한 것이다.
그에게 달려가 입을 맞추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사랑!"
그가 나무랐다.
"의사가 한 말 잊었어? 나를 안으면 안 돼! 키스해도 안 돼!"
남편을 포옹하는 것은 금지였다. 만질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침대에서 일으키고 앉혔다. 그가 누웠던 이불을 정리하고 열을 재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몸을 닦고 밤새도록 옆에 있었다. 그의 움직임, 호흡 하나하나를 지켜봤다.
남편은 일반병실이 아닌 감압실에서 치료받았고, 투명커튼이 쳐진 이 방은 원래 출입이 금지됐다. 남편 침대 옆에 작은 의자를 두었다. 남편의 건강은 심하게 악화되어 나는 단 1분도 그를 떠날 수 없었다. 남편은 나를 계속 찾았다. "류샤, 어디있어? 류센카!" 부르고 또 불렀다. 하루 20번, 30번씩 대소변을 받았다. 피와 점액이 뒤섞여 나왔다. 손발의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물집으로 뒤덮였다. 남편이 머리를 움직이면 베개에 머리카락이 한 줌씩 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농담으로 기분을 전환하려 했다. "편하고 좋네. 빗도 안 갖고 다녀도 되고." 얼마 후 다들 머리를 깎았다. 남편 머리는 내가 직접 깎았다. 그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 직접 하고 싶었다. 몸만 따라줬다면 24시간 내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1분 1초가 아까웠다.
누군가 말했다. "잊지 마세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전염도가 높은 방사성 물질이에요. 죽고 싶어요? 정신 차리세요." 나는 미친 사람처럼 대답했다. "그를 사랑해요! 사랑한다고요!" 그가 잘 때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병원 뜰을 거닐면서도 고백했다. "사랑해!" 대소변을 받으면서도 말했다. "사랑해!" 함께 살던 시절을 떠올렸다. 우리 기숙사에서 밤에 그는 내 손을 잡아야만 잠이 들었다. 남편의 버릇이었다. 잘 때는 꼭 내 손을 잡았다. 밤새도록....
병원에서는 내가 그의 손을 놓치 않았다.
밤. 정적. 우리 둘 뿐이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우리 아기가 너무 보고싶어. 아기는 잘 있어?"
"이름은 뭐라 지을까?"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그걸 왜 내가 혼자서 해? 우리 둘이 있는데."
"그렇담, 사내아이라면 바샤라고 부르고, 여자아이라면 나타샤라고 하자."
"바샤라니? 나에게는 이미 바샤가 한 명 있어! 당신이잖아! 더는 없어도 돼."
그때까지도 나는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다! 남편... 그만을.... 사랑에 눈이 멀었다! 아이가 발로 차도 느끼지 못했다. 임신 6개월 이었는데도... 뱃속의 내 작은 아이가 안전한 줄만 알았다. 내 아이...
의사들은 내가 병실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 생각도 안 했다. 간호사들 덕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설득하려 했다.
"아직 젊잖아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에요? 이제 사람이 아니라 원자로에요. 같이 타버린다고요."
나는 강아지처럼 남편을 쫓아다녔다. 문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렸다. 부탁하고 애원했다. 결국 "마음대로 해! 제정신이 아니군." 이라며 포기했다. 아침 8시가 되기 전, 의사들이 회진을 오면 간호사가 커튼 밖에서 "도망가!" 라고 알려주었다.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들고 물었다. "내 남편이 죽나요?" 그녀가 대답한다. "뭘 바란 거에요? 400뢴트겐이면 죽는 방사선을 1600뢴트겐이나 쏘였어요." 나는 그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들이 다 죽었을 때 병원은 건물을 보수했다. 벽을 긁어내고 바닥재를 부수어 밖으로 치웠다. 그 후에 마지막은... 조각난, 흐린 기억뿐이다.
남편 옆 의자에 앉아 밤을 보냈다. 8시가 되어 "바센카, 나 다녀올게. 조금 쉬고 올게" 라고 말했다. 눈을 떴다 감는다. 가도 된다는 뜻이다. 아침에 타냐 키베노크가 간절히 부탁했다. 그날이 비탈리크 키베노크와 블라디미르 프라비크의 장례식이었다. 우리는 가족끼리 친구였다. 묘지에서 돌아와 당직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잘 있나요?"
"15분 전에 사망했어요."
그럴 수 없어! 밤새 그의 곁을 지켰는데. 딱 3시간 자리를 비웠는데! 창문 옆에 서서 소리쳤다. "왜? 무엇때문에?" 하늘을 보고 소리질렀다. 숙소가 떠나가도록....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 모습은 봐야 해! 볼 거야!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아직 감압실에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의 유언은 "류샤! 류센카!" 였다고 했다. 간호사가 "방금 나갔어요. 바로 올 거에요" 라고 안정시키자 숨을 내뱉고 조용해졌다고 했다.
무덤까지 그와 같이 갔다. 정장을 입히고 모자를 가슴 위에 올려놨다. 발이 부어 신발은 신길 수 없었다. 발이 아니라 폭탄이었다. 정장도 몸에 안 맞아 조금 잘라냈다. 이미 온전한 몸이 아니었다. 피와 상처로 뒤엎였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이틀... 그의 팔을 들어 올리면 뼈가 흔들리고 움직였다. 피부조직이 떨어져 나갔다. 폐와 간의 조각이 목구멍으로 타고 올라와 숨을 못 쉬었다. 손에 붕대를 감아 입속에 있는 것을 다 긁어냈다. 말로 할 수가 없다! 글로도 남길 수 없다! 견뎌낼 수도...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모든 것을... 발에 맞는 신발이 한 켤레도 없었다. 맨발인 채로 그를 묻었다.
내 눈 앞에서 정장을 입은 그를 비닐 주머니에 넣고 묶었다. 그 주머니를 나무 관 속에 넣었다. 관을 또 다른 자루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아연으로 만든 관 안에 겨루 집어넣었다. 모자만 위에 남았다. 특별위원회가 우리를 만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남편, 아들 시신은 방사선 수치가 높기 때문에 드릴 수 없습니다. 모스크바의 묘지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매장할 것입니다. 밀폐된 아연 관에 안치해 콘크리트로 덮읖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서에 서명하셔야 합니다. 사망자들은 국가의 영웅이기에 시신은 절대 가족 것이 아닙니다." 이제 국가의 사람이었다. 국가의 소유였다.
집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사흘 동안 잤다. 아무도 꺠우지 못했다. 구급차가 왔다. "죽은 게 아닙니다. 일어날 거에요. 깊은 잠을 자는 겁니다."
나는 스물 세 살이었다.
두 달 후, 나는 모스크바로 갔다. 그를 만나러! 묘지에서 진통이 시작됐다. 남편에서 말을 걸자마자 구급차가 왔고, 내가 주소를 불러줬다.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다. 바로 안겔리나 바실리예브나 구시코바 선생님 병원이었다.
아기를 나에게 보여줬다. 여자아이었다. "나타센카!" 내가 불렀다. "아빠가 너를 나타샤라고 이름 지었어." 겉으로는 손도, 발도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간경화증에 걸린 아이였다. 간이 28뢴트겐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리고 선천성 심장병도... 4시간 후. 딸이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시신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이에요! 나야말로 줄 수 없어요! 연구 때문에 데려가는 거잖아요! 나는 당신들 연구를 증오해요!" 나는 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들을 만나러 갈 때면 언제나 꽃다발을 두 개 가지고 간다. 하나는 남편에게, 하나는 딸을 위해 묘지 위에 올려다 둔다. 무덤에 가면 무릎을 꿇는다. 무릎으로 기어서 다닌다. 내가 딸을 죽였다. 내가... 딸이, 나를, 살렸다. (말을 끊으면서 한다) 내 딸이 방사선을 모두 끌어모아 나를 살렸다. 그렇게 작은 아이가..... (숨이찬다) 딸이 나를 지켜줬다. 나는 그 둘을 다 사랑했다. 사랑으로, 사랑으로 죽이는 게 가능한가? 이런 사랑으로! 사랑과 죽음은 왜 나란히 있을까? 그 둘은 항상 같이 있다.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누가 알려줄까? 무덤에 가면 무릎을 꿇는다. (오랫동안 침묵)
키예프에서는 아파트를 줬다. 원전을 떠난 사람들이 다 같이 한 건물에 산다. 모두 아는 사람이다. 아파트는 바샤와 함께 꿈꾸던 방이 두 개인 큰 집이다. 그런데 나는 그 집에서 미쳐갔다! 어디를 봐도 남편이, 그의 눈이 보였다. 가만히 있기 싫어, 잊어버리고 싶어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꿈을 꿨다. 남편과 걸어가는데, 그이가 맨발이었다.
"왜 신발 벗고 다녀?"
"신발이 없으니까..."
교회에 가니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큰 신발을 사서 남편을 위한 것이라는 메모와 함께 아무 관에나 넣으세요." 그 말대로 했다. 모스크바에 오자마자 교회로 갔다. 신부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신발을 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방법은 알고 있습니까?"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셨다. 때마침 늙은 노인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관에 다가가 덮개를 들어 올리고 그 속에 신발을 넣었다.
"쪽지는 남겼어요?"
"네, 써두었어요. 그런데 어느 묘지인지는 안 적었어요."
"저 세상은 다 같은 곳이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나에게는 삶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었다. 밤에 창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바센카, 나 어떡해? 당신 없인 살기 싫어." 낮에 유치원을 지나게 되면 한참 서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나는 미쳐갔다! 그리고 밤에 애원하기 시작했다. "바센카, 난 아이를 낳을거야. 혼자 있기가 두려워. 더는 못 견디겠어. 바센카!
또 다른 날에는 이렇게 말했다. "바센카, 남자는 필요 없어. 당신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어. 아이만 갖고 싶어."
나는 스물 다섯 살이었다.
류드밀라 이그나텐코
순국 소방대원 바실리 이그나텐코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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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아프다
슬프다...
ㅜㅜㅜㅜㅜㅜ마음아파
ㅠㅠ하..
얼마나 사랑했으면..
슬프다ㅠㅠㅠㅠㅠㅠㅠ나까지 황망해짐
ㅠㅠ울어따..
너무 슬프다..
너무 슬퍼...
너무슬퍼..
아 눈물나...얼마 전에도 울나라 위험할 뻔 했잖아ㅠ
아 진짜 전기 줄여야해 ㅜㅜ 너무 슬프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슬퍼 진짜 ㅠㅠㅠ
아....
ㅠㅠ 저이야기어디서 들었는데 소설체로 보니더슬프네 아...
너무슬퍼...
너무 슬퍼 ㅠㅠㅠ 어쩜ㅠㅠㅠ
아 너무 슬프다 ㅠ
어떡해....
아........
아침부터 울었다.... 방사능 정말 위험하다... ㅠㅠ
아...진짜 너무 슬프다ㅠㅠ..
아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끝까지 못보겠어...
너무슬프다..... 진짜 ... 정말 방사능 위험한 건데.. 미드 챙겨봐야겠다..
진짜슬프다..아침부터...너무마음아파ㅠㅠ
좀더알고싶은여시들잇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라는 작가가쓴 체르노빌의목소리라는 책읽어봐 ㅜㅜ 피해자들 인터뷰한걸 ㅈㅐ구성해서 엮어낸건데 본문내용도 자세하게잇어 ㅠㅠ
고마워!! 찾아볼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 작가분인듯....
읽어봐야겠다 고마워 여시야ㅜㅜ
넘나 무섭고 슬프다... 짱깨들이 서해에 원전 띄우면 우리도 남일 아니게 될듯...
딸이 나를 살렸대....ㅠㅠ
와 딸이 방사선 다 모은거야?? 미쳤다 너무 슬퍼
헐ㅜㅜ
너무 슬프다ㅠ 그래도 지금은 아들과 둘이 잘 살고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