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당산나무 또는 선비 나무라고(양반들이나 학자 집안에서 많이 키웠다고 함)불리는 이 안동나무는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택인 임청각 앞에 심어진 나무였음 (고려 시절부터 존재했단 말도 있음)
이 곳은 도박으로 탕진해가는 척 하며 뒤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파락호 김용환 선생과 민족시인 이육사 시인 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하던 지역이었음 독립운동가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서 결의도 맺고 그랬다고 함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임청각을 허물고,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끊기 위해 대부분의 건물을 허물고 이 나무를 베려고 하였음
그런데 인부가 나무를 도끼로 내려 찍으려하자, 갑자기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져 인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후에도 그 나무를 베려고 했던 인부들이 알 수 없는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꺼려하였고 일본놈들도 지들이 나무를 직접 베기에는 찝찝한 거임
그래서 당시 나무를 베면 5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내걸고 또 다른 인부가 나타나 자기가 나무를 베겠다고 했음 근데 이 인부도 나무를 베던 중 집으로 잠시 쉬러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함
사람들은 또 다시 술렁거리고 금액은 100만원까지 오르고 한 남자가 또 나타나 자기가 나무를 베겠다고 나섬 근데 이 남자가 나무를 베다가 나머지는 내일 하려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음 날 출근을 안하는 거임 그래서 집을 찾아가봤더니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죽어있음 이유는 알 수 없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나무는 베야겠고 해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함 굿하다가 무당이 작두에서 미끄러져 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함 소문은 더 안좋아짐
결국 일본놈들은 금액을 200만원까지 올려보았지만 역시나 베겠다고 나선 사람 족족 죽어나가고 일본놈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포기함 이후 마을에서는 이 나무는 영령이 깃든 나무로 숭배받게 돼
또한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끊으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철도를 마치 맞서 싸우기라도 하듯, 철도가 있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함 (임청각의 건물과 귀신나무는 철도를 감싸는 듯한 형태로 일본이 만든 철도를 옥 죄는 형태)
이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이육사의 생터가 있던 마을 및 수많은 자연마을이 수몰당하게 됩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났던 수많은 마을이 수몰되는 사건이 생김
그리고 안동댐 건설과 경제계발 계획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또 나무를 베려는 시도가 있게 됨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나무를 베려하자 근처 안동댐에서 건설을 하던 인부들이 사고로 죽은 사건이 발생하였고, 나무를 밀어버리려던 불도저의 삽이 갑자기 빠지는 등 괴이한 사건이 발생함
결국 현장 관계자들 역시 나무를 베는 것을 포기해 그리고 이 나무를 구경하러 안동에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함
이후 안동나무는 도로를 조금 침범한 위치에 오래 유지되는데 이 나무 위치 때문에 자동차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고 함 교통 사고로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고 오토바이 사망 사건도 나고...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나무가 밑둥만 남겨두고 잘려버림 밤새 시청에서 작업했단 말도 있고 나무에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죽은 동생의 복수를 하러 할아버지가 새벽에 나무를 잘라버린 후 무서워서 굿을 했다는 말도 있고 기독교 측에서 잘라버렸단 말도 있고 여러가지 설이 많음
근데 밑둥만 남은 나무에서 새싹이 남
여기서 안동 사람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림 교통에 방해되는 나무를 베어야 한다 vs 역사가 있는 나무인데 놔둬라
그렇게 나무에 펜스를 쳐두고 대립하던 중 다음 날 보니까 나무가 뿌리 째 뽑혀서 완전히 죽어버린 거임 알고보니 한 대학생들이 나무를 못보고 차로 치어서 사고가 났다고 함
그 후로 나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나무가 있던 자리에 아예 시멘트를 깔아서 안동나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대학생들은 그 후 어떻게 됐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별 탈 없이 지냈다고 들은 듯...)
첫댓글 중복
신기하다..
근처 살았었는데 여기 지날때마다 뭔가 기분 이상했음...
그냥 지킬만큼 지키고 갈때가 됐다고 느껴서 간거같애...
헐 개신기해
저마을 정말 유서깊은 독립운동가 많이나온 마을이었는데 박정희가 수몰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