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판소리를 좋아한다. 요즘 누가 고리타분한 판소리를 듣느냐고 할지 모르나 젊을 적부터 국악 애호가였다.
TV보다 라디오를 좋아해서 집에서도 FM 방송을 낮게 틀어 놓고 국악방송과 판소리를 자주 듣는다.
북 장단에 맞춰 밀고 당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소릿길에 우주가 담겨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음악이든 자기가 좋아야만 귀가 열리는 법, 관심 없는 음악은 그저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어릴 적 우리 집 가까운 어느 집에서 전축을 크게 틀어 놓아 우리 집까지 생생하게 들릴 때가 많았다.
이미자나 배호 노래뿐 아니라 춘향전, 흥부전, 장화홍련전 등 판소리가 자주 나왔다.
라디오는커녕 시계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이웃집 덕분에 누렸던 소리 동냥이 내 정서에 도움이 되었을라나.
나야 크게 감흥을 못 느꼈으나 어머니는 마당이나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도 소리 참 좋다고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고향을 떠나 가리봉동에서 공장 생활을 할 때 노동자 축제에서 풍물을 보고 국악에 관심이 생겼다.
친한 선배 하나가 꽹과리를 아주 잘 쳤는데 이상하게 풍물 소리에 끌림이 생긴 것이다.
근묵자흑이라는 고사성어가 꼭 나쁜 쪽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친구든 선배든 선생이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국악에 관심이 갔기 때문일까.
어릴 적 흑백 TV에서 봤던 창극 프로가 떠올랐다. 볼거리 없던 시절 온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에 모여 창극을 봤던 기억이 있다.
여성 국극을 봤던 추억도 어렴풋이 난다.
이후 20대 중반이었던가. 신촌에 있는 지하 공간에 풍물을 가르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선배를 통해 알았다.
정작 풍물을 배우러 갔다가 다른 반인 판소리에 매료되어 나중 그 반으로 옮겼다. 매주 한 번씩 국립창극단 단원인 소리꾼 한 분이 강사로 나왔다.
지하에 방음벽으로 계란판을 잔뜩 붙여놓고 그 공간에서 민요와 단가, 판소리 눈대목 등을 배웠다.
수강료가 있긴 했으나 거의 강사 수고료 정도였기에 가르치는 그 창극 단원도 국악 대중화를 위한 재능 기부였을 것이다.
소리 배우는 것을 그만 둔 후에도 판소리에 매료되어 틈틈히 공연을 보러 다녔다.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가끔 올리는 창극 무대와 매달 완창 판소리 공연이었다. 어느 날 뒷자리에 앉은 두 노인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안향련이 참 잘했는데 너무 아까운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단다. 실연을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안향련이 고인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연 때문이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라 귀가 솔깃했다. 이후 안향련의 자료를 찾았다.
국문학자의 책에서 안향련의 일생을 대충 알 수 있었으나 자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70년대와 80년대 초는 안향련의 전성기로 TV, 라디오 국악 프로는 그녀가 완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처럼 그녀는 국악계의 독보적 존재였다. 소리도 천부적인 실력이었지만 그녀의 빼어난 미모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녀는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들 하나를 데리고 키웠다. 열아홉 살쯤 목포의 소리 후견인 임모씨의 후처로 살다 아들을 낳았다.
이후 인간문화재 김소희 선생 제자가 되어 서울로 진출하면서 그녀는 빛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남자를 알게 되었으니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안향련은 유부남을 사랑했다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시의 신문 기사는 선데이서울 기사 제목처럼 아주 선정적인데 <유부남과 내연 관계 여국악인 자살>이라는 제목을 단 2단 기사다.
한 예술인을 이렇게밖에 기억할 수 없다는 게 서글퍼서 짧은 기사지만 굳이 옮기지는 않겠다.
흔히 판소리에는 두 가지 목구성이 있는데 천구성과 수리성이다. 천구성은 선천적 목소리고 수리성은 오랜 수련 끝에 얻게 되는 후천성 목소리다.
안향련은 세상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천구성을 가졌다.
예전에 국악인의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인생을 걸 수 없는 것이 소리다.
영화 서편제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돈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답시고 온갖 천대를 받으면서도 소리에 미쳐 목에서 피가 나도록 공부에 매달린다.
안향련도 화려한 조명을 받긴 했으나 늘 생활고에 시달리며 신산한 소릿길을 걸었던 고독한 예술가였다.
인생에 가령이란 없다지만 그녀가 조금 순탄한 길을 걷고 오래 살았다면 소리뿐 아니라 평가 또한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느 분이 말하길 안향련을 <불꽃처럼 살다 간 비운의 천재 명창>이라고 했다. 격하게 동의하면서도 그의 삶이 너무 애잔하다.
나는 왜 성공한 사람의 화려함보다 이렇게 비운의 삶을 살다간 인생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일까.
내가 아무도 듣지 않을 소리를 홀로 듣는 것도 그녀의 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가야금 선율 위에 당신의 인생을 담고 있는 듯한 노래가 있어 올린다. 사람은 갔지만 소리가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녀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첫댓글 안향련 이제서야 접해보네요
저도 50넘어서 설장구 한1년 배웠는데 해보니 그쪽에 끼가 있더이다 ㅎ
덩덩 덩더궁
헐~~ 마초 가이인 지존형이 안향련을 알 줄이야,,
게다가 설장구까지 배우셨다니 대체 성님 관심 분야와 재능이 어디까지인지 감탄합니다.
설마 뜨개질도 잘한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유현덕 뜨게질에 빵 터집니다
유현덕님 다운 재치 ㅎ
@유현덕 예전에 뜨게질도 해봤구먼 ㅎㅎ
안향련 사랑도 좋지만..
재주도 뛰어나지만
유부남을 사랑한것은
우리나라 정서상 그 당시에는
더욱 뭇매 맞을것만 같습니다..
국악에도 관심.유현덕님..
책뿐만 아니라..다양한곳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분 같습니다
배움을 -응원합니다
저도 하필 유부남을 사랑했을까에 늘 안타까움이 있답니다.
그래서 국악계에서도 그녀의 죽음을 대놓고 애도하지 못했던 모양이구요.
그녀의 도도한 예술혼 때문인지 아무리 돈 많은 남자라도 웬만해서는 상대를 안 했다고 하더이다.
지인님의 따뜻한 응원과 모범 댓글에 무지 기쁘네요.ㅎ
@유현덕 이율배반적인 사랑..
사람맘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사람의 맘을 누구도..
백분 이해하지 못할듯 싶어요
나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듯
재주와 재능이 아깝네요..
@칼라풀 칼라풀 님 사랑과 인생에 대해 좀 아는 분이시네요.^^
맞습니다. 안향련과 그 화가 사이에는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여기에 쓰기에는 넘 길어 생략했으나 언젠가 숨은 사연을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ㅎ
"기"가 극에 달하면 "예"에서 만나고 "예"가 극에 달하면 "도"에서 통한다~
만화가 방학기 선생의 말씀 입니다 국악이든 양악이든 궁극은 소리샘의 통일이겠지요
우리세대는 대체적으로 양악에 길들여져 있기에 국악이라면 다소 어색한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참을성있게 듣다보면 지음의 경지에 다다를수 있겠지요
하지만 난 너무 늦어버린듯 합니다 새롭게 깨달음 얻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지요
해서 국악과 친해지기 포기 합니다
암튼 유비님
여러면으로 심오 하십니다~
저도 정규교육을 받았다면 앙악에 더 관심이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양악도 오래 들으면 귀에서 꿀이 흐르듯 국악도 사랑으로 들으면 귀에서 단맛이 나네요.
어쨌거나 함박산 님과 방학기 선생 만화와 연결이 되니 좋습니다.
방학기 만화는 무협지의 통속함과 인간적 따뜻함이 조합되어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지요.
함박산 님의 울림 있는 댓글에 공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ㅎ
판소리 배우고싶네요
대중음악에서도 판소리를 한 친구들이
오래 성공을 한다죠
우리가 잘아는 패티킴도 사실은
판소리를 했었데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명창이 되기 위함보다 소릿길을 찾는 목구성을 다듬는 정도는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소릿길을 약간만 알아도 판소리 듣는 귀가 달라지네요.
글구 조용필도 심수봉도 판소리를 했고 소리꾼 집안의 피가 흐른다고 하더이다.
드가님, 평온한 밤 되세요.ㅎ
안 향련 판소리 국악인에 대한 자료 고맙습니다 ㆍ처음 접하는 이름이라 식견을 넓히는 시간이었습니다 ㆍ
건강하십시요 ㆍ
추소리 님께서 안향련을 알게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소개할 사람과 노래는 많은데 시간이 없어 늘 제 마음이 아쉽답니다.
자주 오셔서 좋은 시간 되셨으면 합니다.ㅎ
그당시에는 획기적인 이슈가 되었겠어요
유부남을 사랑한 재능 많은 그녀
안타까운 삶이었네요
안향련을 알 기회를 주시어 감사합니다
그때 큰 이슈였다고 합니다.
국악계의 유망주가 꽤 이름 있는 화가와 사랑에 빠져 자살을 했으니 얼마나 큰 화제였겠는지요.
국악계에서는 쉬쉬했다는데 안향련의 재능이 아깝기는 했으나
처자식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광대 기질 다분한 탁월한 재주꾼의 짧은 삶이 아쉬울 따름이네요.
제일 부러운게
국악과 가야금 연주 잘 하는
사람입니다
술술 읽어내려 갈수 있게
뜻깊고 재미있는글..
즐감합니다
편안밤 고운밤
다소 긴 글을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제일 부러운 게 소리 잘하는 사람과 가야금 연주가입니다.^^
몇 년 드문드문 소리를 배웠다지만 저는 또랑목으로 겨우 흉내만 내는 정도네요.
칼라풀 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ㅎ
애정 으로 인해 자살을 한것은
자존감이 낮은듯 합니다
이세상에 태어나서
한번은 다 죽는데
굳이
미리 비관 자살 할건 없지요
국악판소리 깊히 있고
구성져서 한이 서린듯한 소리죠
저는 크래식에 심취해서
잘은 모르지만요
사랑이 얼마나 깊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어떻게 보면 자존감이 너무 강해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그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과 바꿀 용기가 없는 사람은 예술을 하지 말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도 있네요.
제가 예술지상주의자이긴 해도 죽음과 바꾸지는 않을랍니다.
리야님도 클래식과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