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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카 이야기
대학진학과 군대생활
내 형제가 5남매인데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시다
누님과 나 사이의 형님이 어려서 돌아 가셔서
나이 차이가 여섯살이나 난다
누님은 개띠시고 나는 용띠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누님은 대학생이 됐다
K대 가정학과를 졸업하셨다
72년도에 결혼하셨고 이듬해 11월 아들을 낳았다
올해로 벌써 51세가 됐나? 세월 참 빠르다
그 녀석 낳던 날 내가 서울로 달려 병원비를 타서
다시 수원으로 내달린 기억이 생생하다
그 애가 어렸을 때 포천에 있던 할아버지 댁에 가 있었다
연년생으로 낳은 동생을 시샘한다는 이유였다
마침 내가 그 쪽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이라서
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적에 들러서 보고 그랬다
입대할 때는 그 녀석 사진을 한 장 갖고 갔는데
고된 훈련을 받을 때나 휴식을 할 때
그 녀석 귀여운 사진을 꺼내 들여다 보곤 했었다
나중에는 사진이 너덜너덜해 질 지경이 되었다
그 녀석이 대학에 갈 나이가 됐다
Y대 건축학과와 S대 수의학과를 놓고 고민을 했다
누님과 매부가 내게 조언을 구했다
면밀히 검토해 본 후에 S대 수의학과를 추천했다
그리고 지원했던 학과에 합격했다
누님댁은 수원인데 학교는 서울에 있었다
기숙사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내가 차를 가지고 가서 이불이랑 옷가지를 싣고
누님, 매부랑 함께 기숙사엘 갔었다
기숙사에 짐을 부려놓고 모두 우리집으로 와서
저녁까지 먹고 수원가는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렸다
조카와는 다시 기숙사까지 갔었다
방학이 되면 이불빨래를 해서 다시 갖다 주고 그랬다
아파트 청약을 위해 우리집으로 주민등록까지 옮겼다
그 녀석이 군대생활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
동해안으로 처가식구들과 여름휴가를 다녀 오는 길이었는데
미시령을 넘자마자부터 차가 무지하게 막혔다. 인제쯤이었나?
차들이 거의 서있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길가에 부대표지가 있었고 적십자표시가 보였다
조카가 수의장교로 입대하여 의무부대에 근무하는데
그 부대가 인제쪽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있는데 장모님께서 들러보자고 하셨다
차도 많이 밀리고 하여 바로 핸들을 꺾어 부대로 들어갔다
뒤에서 따라오던 처남과 손윗동서도 차를 꺾었다
장모님께서 편찮으신 줄 알고 적잖이 놀랐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카이름을 대고 면회를 신청했다
그 부대가 조카가 근무하는 부대가 맞았다
거기서 예하부대 급식 보급품 중에서 축산물과
군견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자전거를 타고 위병소로 달려 나왔다
참 반가웠다. 조카가 깜짝 놀랐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주머니에서 집히는대로 돈을 주고 나왔다
월급이야 타겠지만 군대에서 돈이야 다다익선이다
그 날도 헤어지면서 또 얘기했다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제대 후 직장생활
졸업을 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남양유업에 입사했다
조치원에 있는 연구실이었다
1년 남짓 다니고 나더니 재미가 없다고 하였다
동물약품업계에 자리가 두 개 났다고 하며
내게 어느 회사로 가는 게 좋겠느냐고 물었다
두 회사 모두 내가 아주 잘 아는 회사들이었고
한 회사와는 거래관계까지 밀접하게 맺고 있었다
내가 손바닥 손금보듯 잘 아는 업체들이었으니까
한국에서 1등으로 잘 나가던 독일 Bayer한국법인을 추천했다
입사후 몇 년 영업사원을 맡아 청양지역에서 근무했다
이후 본사 마케팅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때쯤 해서 내가 스위스 Roche사로부터 그 전에 일했던
Lilly사의 동물약품 사업부 Elanco로 컴백했다
컴백한 1년 후에는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다
마침 한국과 선진 외국 간의 무역마찰이 심각할 때였다
이런저런 이슈로 늘 한국정부와 서로 부딪쳤다
미국 민간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인
미국 상공회의소라는 곳이 있었다. 소위 AMCHAM
American Chamber of Commerce
삼성동 무역센타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나도 바로 길 건너 아주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있어서
AMCHAM의 책임자와 자주 만나고 그랬다
한국말도 아주 잘하는 유들유들한 친구였다
그 AMCHAM에 동물약품 분과위원회가 있었다
나와 또 한 사람 독일사람이 공동으로 분과위원회 회장을 맡았다
나는 미국회사들을 대표하였고, 독일사람이 EU회사들을 대표했다
매달 신라호텔 뒤에 있는 서울클럽이라는 곳에서 조찬모임을 했다
이런저런 현안들을 모아서 미국대사관과 EU대표부에 전달했다
특히 내가 미국대사관 농무관실과 밀접하게 접촉하고 일을 했다
마침 농무관 바로 아래에서 일하는 한국직원이 대학후배였다
내가 배운 적도 있는 대학시절 교수님의 아들이었다
내게 많은 업무상의 편의와 도움을 주었던 후배다
나와 함께 공동으로 분과위 회장을 맡았던 EU쪽의 독일친구가
바로 내 조카가 일했던 독일 Bayer 사의 한국법인 대표이사였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내 조카와의 관계는 비밀이었는데
그 때쯤해서 처음으로 독일인 대표에게 터놓고 얘기를 했다
좀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도 함께 했다. 아주 좋은 친구였다.
나와 함께 암챔 일을 하다 보니 친분도 꽤 두터운 편이었다
독일인 대표도 내 이야기를 듣고 조카를 많이 칭찬하였다
내가 따로 봐 줄 것도 없는 친구다. 일 잘 하고 있다. 걱정마라
뭐 그런 대화를 나눴던 거 같다
그 시절에도 조카에게 늘 강조했다
지금은 국제화시대다. 영어는 필수다.
특별히 너는 지금 독일회사에 근무하고 있지 않느냐
영어공부에 사활을 걸어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독일 본사근무와 그 이후
그렇게 독일 Bayer동물약품회사에서 일하던 조카가
독일에 있는 본사로 발령이 났다
식구들이 모두 기뻐했다. 누님께서 특히 더 좋아 하셨다
내게 늘 고맙다고 하셨다. 다 내 덕분이라고 하셨다.
대학 입시 때 학과 선택부터 시작해서, 전직할 때도 그랬고
영어공부를 그렇게 강조하더니 드디어 본사로 가게 됐다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내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고 또 하셨다
내가 영어회화 교재도 추천을 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독일 본사에 가서 6년인가를 근무했다
이후에 베트남지사장으로 또 몇 년,
그 다음에는 중국지사장으로 또 몇 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지사장으로 또 몇 년
그렇게 그 독일 Bayer 제약회사의 동물약품부에서 일했다
그리고 베트남 지사장 근무시절 함께 일했던
한국의 동물용백신 전문회사에 대표이사로 스카우트됐다
그 회사의 백신을 받아서 베트남에서 판매한 인연이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게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지금까지도 그 회사에서 잘 근무하고 있다
회사가 대전에 있는 관계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안부전화를 한다
이제는 이 업계에서도 나와 조카와의 관계를 대충 다 안다
그러면서 진작 말을 하지 그렇게 숨겼냐고도 한다
독일인 대표이사와 나와의 관계가 맺어지기 전까지는
전혀 내색을 하지않고 지냈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들을 한다
세계 동물약품 회사들의 인수합병
미국 Lilly제약회사의 동물약품사업부인 Elanco는
2019년 모기업이었던 Lilly제약회사로부터 따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뉴욕증권시장에 따로 완전한 독자기업으로 상장되었다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Elanco의 매출액이 Lilly전체의 40%였다
지금은 양자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아마도 그로 인해 회사가 분리되었을 것이다
회사가 독립하고 나서 스위스 Novartis제약회사의 동물약품부를 인수하였다
이 회사는 과거 산도즈와 시바가이가가 합병된 스위스 제약회사다
몇 년 전에 동물약품사업부를 Elanco에 매각했다
조카가 한국회사로 옮기고 나서 몇 년 지난 2020년
조카가 근무했던 독일 Bayer제약회사의 동물약품부를
내가 근무했던 미국 Lilly제약회사의 동물약품부 Elanco가 인수했다
조카와 나와의 관계 요약
1973년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 조카녀석은 나와의 인연의 끈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둘이서 지금까지 Bayer사와 Elanco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면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인수합병 이전에 은퇴를 했지만...
어쨌거나 참으로 끈질긴 인연이다
지금도 업계의 이런저런 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들이 내게 꼭 조카이야기를 해준다
반대로 내 조카를 만나면 내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비슷한 점도 많다
둘이 같은 대학을 나왔고, 같은 업계에서 일했으며
같은 경로로 본사근무를 하였고, 비슷한 업무를 했다
시차를 두고 내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온다고나 할까?
거의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 모두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과거 베트남, 중국, 일본에서 근무할 때에는
내게 자주 전화를 했었다
삼촌 이러저러한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내가 먼저 겪어본 경험에 입각해서 조언을 해 주었다
다국적기업의 생리와 일처리방식을 잘 알고 하는 이야기라
아마도 나의 조언이 조금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Lilly외에도 스위스 Roche사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뻑하면 전화를 해서 한 시간씩 두 시간씩 통화를 했다
요즘은 업무이야기는 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전화를 종종 해주고 안부를 전해주는 조카가
참 고맙고 귀엽다. 벌써 51세가 됐다니...
믿어지지가 않늗다
내게는 아직도 포천 할아버지댁에서 아물아물 기어다니며
짬춘 짬춘하던 그 때 그 애기 때의 모습인데...
키도 180이 훌쩍 넘는 훤칠하고 중후한 중년의 모습이 되었다
첫댓글 청솔님~
조카분이 대단하네요
삼촌이 잘 이끌어 주시 덕도 있겠지요
조카도 삼촌 덕 톡톡히 보구요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나 봅니다
네 조카녀석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 덕이랄 것까지야 없겠지만
약간의 도움은 되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카분과 같은 대학 같은 업종에서 일하셨네요. 서로 도움도 많이 되고 든든하셨을것 같습니다
조금 의지는 되었을 것입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독일인 사장과 다달이 만날 때마다
조카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훌륭한 조카이야기 잔잔하게 잘 보았습니다
젊은이들 바로서야 나가가 잘될터인데 ᆢ
젊은사람들이 잘신수 있어야 하는덕 ᆢ
우리나라 경제가 걱정입니다
맞습니다
젊은이 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젊은이 들이 잘 살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다행이 조카녀석은 잘 삽니다
그 아래 동생녀석도 같은 대학을 나왔는데
기계공학을 전공해서 현대차에 근무합니다
연구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외삼촌과 조카의 같은길을 걸으니 동종업계 선배에 학교 선배 사적으론 조카고요 유독 더 정이가는 조카군요
그런 걸 떠나서라도 이 녀석이 외탁을 했습니다
인물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렇고...
누님도 이 녀석에게 더 정이 간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
작은 녀석은 딱 매부입니다
말도 별로 없고 무슨 꿍꿍이 속인지...
큰 녀석이 누님에게 아주 잘 합니다
저한테도 그렇구요
자연히 큰 조카에게 더 정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청솔님 글을 읽다보면
참 실력.재능 모두갖춘
인재셨구나 싶어요
아는게 힘.아는게 없다면
조카에게 어떤 조언도 못하지요
잘 살아오신 청솔님
누님이 청솔님같은
동생두셔서 행복하셨겠어요.
조카의 성공에
저도 기쁩니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업계동향이야 제가 오래 몸 담았으니까
당연히 손바닥보듯 알았던거구요
함께 기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
그 것도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보통은 배아파하고 시기질투하고
심지어 모함하고 깎아내리지요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청담골님의 마음씨가 부처님이십니다
저는 운칠기삼을 믿는 사람입니다
험한 이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려면
1. 운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당연히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요
3. 남다른 주특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단군이래 가장 경기가 좋았던 시기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제 전공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할 때였지요
축산물소비가 엄청나게 불어나던 때입니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고객들에 대해 가족처럼 대하고 보살폈습니다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분들이 여럿입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누님의 권유에 따라
영어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차이가 나도록
끊임없이 갈고 닦았습니다
영어덕분에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안에 청솔님 같은 멘토가 있어야 인생길을 알려주는데.....
우리 아버지는 이북 연백에서 18세 어린 나이에 6.25사변 2년전 군입대 하신분이라 친가는 인척 한분 없기에 조언자가 없었지요.
그런가요?
제가 졸지에 멘토가 됐네요. ^^*
감사합니다
아 아버님께서 연백이 고향이시군요
제 장모님 고향이 연백이십니다
강화도 교동으로 해서 피난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시고 교동에 몇 번 갔었습니다
저희 부모님 고향도 황해도 평산입니다
장인어른도 평산이 고향이시구요
반갑습니다 ^^*
@청솔 삼촌이 아버지와 같은 멘토 역할을 잘해 주셨습니다.
저도 인생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명 사명님은 좋은 삼촌을 두셨네요
좋은 선배가 되시겠다는 사명님의 말씀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조카와 두 분의 캐리어가 참 역동적이기도 하네요.
이제 은퇴했다니 조카의 일이 즐거움으로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저는 이제 편안하게 물러나 있습니다
가끔씩 교육의뢰오면 교육다니면서
젊은이들과 호흡하는게 즐거움이지요
조카 하는 일은 전혀 모릅니다
제가 백신을 다뤄보지 않았거든요
제 주특기는 사료첨가제였습니다
사료회사 다니며 하는 영업/마케팅
요즘은 사료에 일체의 약품첨가가
완전히 금지되었습니다
제가 일할 때는
53개의 첨가제가 있었습니다
삼촌과 조카, 그러니까 외삼촌과 생질이군요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조카의 진로를 잘 안내하여 성공시킨 삼촌
삼촌의 성공이 있었기에 조카의 성공이 이어진 거군요
조카 군 생활 의무부대, 그곳 을지부대 의무중대로군요
저가 그 부대 옆 을지부대 헌병중대에 근무했지요 ㅎ
안내라기보다는 물어 보니까
제 나름대로 최선의 답변을 했겠지요
나름대로 편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조카도 마찬가지구요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설악산 고갯길 넘어와서 오른쪽에
적십자표지판이 서있던 부대입니다
도로에 붙어서 위병소까지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던...
헌병출신이시로군요
저는 기갑 정비출신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솔님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연구 하고 기획하시며
공부를 많이 하셔서
해박하십니다
조언이나 충고도 뭘 상세히
알아야 자료도 해 줄수 있죠
아이고 라아라님 과찬이십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전에 글 올렸던대로 제대하고 몇 년
죽을 고생을 하는 바람에
죽기살기로 일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 외국인회사로 옮긴 후에는
식솔을 거느리게 되니 더 열심히 했구요
그저 일 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골프를 못 배웠습니다
골프하려면 시간이 엄청 깨지드라구요
늘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고
이리저리 회사를 몇 번씩 옮기고 하다보니
끊임없이 새로운 걸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줏어들은 풍월이지
뭐 별 거 아닙니다
늘 따뜻한 글로 격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