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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位君臣頌
오위군신송
洞山良价
동산양개
正中偏정중편
三更初夜月明前 삼경초야월명전
莫怪相逢不相識 막괴상봉불상식
隱隱猶懷舊日嫌 은은유회구일혐
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
서로 만나 알아보지 못하는 걸 괴이타 말라
품은 뜻은 있어도 몸에 익은 버릇을 따라가나니
▶ 隱隱: 희미하다. 흐릿하다. 어렴풋하다.
▶ 舊日嫌: 출리出離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육진六塵의 경계에 미혹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먼저 ‘正’과 ‘偏’의 의미를 알아보자.
正位卽空界, 本來無物; 偏位卽色界, 有萬象形. 正中偏者, 背理就事.
정위즉공계, 본래무물; 편위즉색계, 유만상형. 정중편자, 배리취사.
‘정’의 자리는 ‘공空’의 세계라 본래 아무것도 없고,
‘편’의 자리는 ‘색色’의 세계라 수많은 형상이 있다.
‘정중편’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게 일을 하는 것이다.
- 《조산원증선사어록曹山元證禪師語錄》중에서
이를 통해 ‘正’은 곧 체體와 공空과 이理의 자리이고,
‘偏’은 용用과 색色과 사事의 자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정중편正中偏은 ‘正’의 자리에서 이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사물의 상相에 집착하여 ‘偏’의 자리로 떨어져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첫 구절 속 ‘三更’과 ‘初夜’와 ‘月明前’은 모두 어두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마음의 본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범부의 경계를 뜻한다.
범부위凡夫位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偏中正편중정
失曉老婆逢古鏡 실효노파봉고경
分明?面別無眞 분명적면별무진
休更迷頭猶認影 휴갱미두유인영
눈 어두운 노파가 큰 거울 앞에 앉아
얼굴 들여다 바라봐도 새로울 것 없더라
자기 머리를 그림자로 잘못 보지나 말아야지
▶ 失曉: 새벽을 몰라보다. 늦게 일어나다. 눈이 어두워지다.
▶ ?面: 대면하다. 마주하다. 소소생笑笑生이 《金甁梅》에서 ‘西門慶與月娘尙氣, 彼此?面, 都不說話(서문경과 월낭이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마주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偏中正’은 ‘偏’의 자리에 있다가 문득 ‘正’을 알아보게 되는 것으로
학인의 수행과 체득이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삼라만상이 티끌 하나까지라도 정결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
‘失曉’는 해가 밝았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시력이 약해진 노파로 비유된 수행자가
‘古鏡’으로 표현된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 풀어 읽었다.
‘偏中正’을 견도위見道位라는 별칭으로도 부르는 것에서 보듯
‘偏中正’은 ‘도’를 만나고도 확실히 알거나 굳건하게 믿지 못하여 의심을 내고
그리하여 거울을 보면서도 그림자만 보고 마는 데 머물러버린다.
‘正’이 ‘鏡’으로, ‘偏’이 ‘影’으로 표현된 것에서 보듯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여眞如인 것을 모르고 또 다른 무엇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切忌從他覓 체기종타멱
??與我疏 초초여아소
我今獨自往 아금독자왕
處處得逢渠 처처득봉거
渠今正是我 거금정시아
我今不是渠 아금불시거
應須恁?會 응수임마회
方得契如如 방득계여여
절대로 남 따라서 찾으려고 하지 마라
그리하면 나와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내가 지금 혼자서 스스로 가면
곳곳마다 그것을 만나리로다
그것이 지금 바로 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이 아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여眞如를 얻게 되리라
- 동산양개洞山良价 선사의 오도송 전문
正中來정중래
無中有路隔塵埃 무중유로격진애
但能不觸當今諱 당능불촉당금휘
也勝前朝斷舌才 야승전조단설재
없는 것 속에 세상일 벗어날 길이 있도다
오늘날의 금계禁戒를 범하지 않을 수 있어야
혀 잘린 재능을 가진 이보다 뛰어날 수 있으리
앞에 나온 ‘偏中正’을 잇는 자리로 ‘偏’을 빌어 ‘正’을 깨닫는 단계이다.
앞에서 ‘體’는 ‘正’과 ‘空’과 ‘理’를 말하고 ‘用’은 ‘偏’과 ‘色’과 ‘事’라고 한 것에 따른다면
‘正中來’는 ‘依體起用’, 즉 ‘體’에 기대 ‘用’을 일으켜 세우는 단계를 말한다.
‘正’은 ‘空’이라 무형무상無形無相이고, ‘偏’은 ‘色’이라 유형유상有形有相이다.
그러나 ‘빈 것은 빈 것이 아니라 오묘하게 있는 것(空體不空, 盡是妙有)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속이 없어 모두 빈 것(妙有不實, 凡有皆空)‘이다.
그래서 ‘비어 있으면서 동시에 오묘하게 있는 것(眞空妙有)’이 되고
‘없는 중에 세상사에서 벗어날 길이 있게 되는 것(無中有路出塵埃)’이다.
‘不觸’은 위배되는 일을 범하지 않는 것을 뜻하고
‘當今諱’는 백성이 지금 임금의 이름을 문자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뜻하므로
‘用’이 되는 ‘偏’으로 ‘體’가 되는 ‘正’을 범하지 않아야
재능을 잘못 사용하여 혀가 잘린 앞사람의 화를 면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斷舌才’는 세속에서 볼 수 있는 언변이 좋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혜에 기반한 변재辯才는 그러한 경지를 넘어서는(勝) 것을 뜻한다.
偏中至편중지
兩刃交鋒不須避 양인교봉불수피
好手猶如火裏蓮 호수유여화리연
宛然自有?天志 완연자유충천지
칼날끼리 부딪칠 때도 피하려고 하지 마라
솜씨 좋은 사람은 불꽃 속의 연꽃 같아
하늘이라도 찌를 큰 뜻 완연하나니
▶ 好手: 능력이 뛰어난 사람. 솜씨가 좋은 사람. 습득拾得이 자신의 시에서 ‘不顧他心怨, 唯言我好手(다른 이 원망 따위 상관하지 않고서 / 자기 솜씨 좋은 것만 떠벌리고 다니네)’라고 읊었다.
‘偏’은 ‘用’을 말하고 ‘至’는 ‘도달’, 즉 실상實相을 뜻하므로
‘偏中至’는 ‘用’을 포섭하여 ‘體’로 돌아가는 ‘즉용즉체卽用卽體’를 의미한다.
《화엄소華嚴疏》에서 말한 ‘이 법계로부터 흘러가지 않은 것이 없고(無不從此法界流),
이 법계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無不歸還此法界)’고 한 것과 같고,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가 ‘하루 종일 밥을 먹어도 쌀 한 톨 씹은 적이 없고(終日吃飯, 未曾咬着一粒米),
하루 종일 걸어도 땅 한 조각 밝은 적이 없다(終日行, 未曾踏着一片地)’고 말한 것과 같다.
첫 구절 ‘兩刃交鋒不須避’에 담긴 함의를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경계를 차별 없이 평등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었다.
‘火’는 세간의 번뇌를 말하고
‘蓮’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 것을 말하며
‘火裏蓮’은 번뇌가 많은 세속에서도 때가 묻지 않는 잘 단련된 수행자를 가리킨다.
동산양개 선사와 한 수좌가 나눈 문답이다.
?
僧問: 寒暑到來, 如何回避?
승문: 한서도래, 여하회피?
한 수좌가 물었다, “춥거나 더울 때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師云: 何不向無寒暑處去?
사운: 하불향무한서처거?
선사가 말했다. “어째서 더위도 없고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는가?”
云: 如何是無寒暑處?
운: 여하시무한서처?
(수좌가 말했다): “어떤 곳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입니까?”
師云: 寒時寒殺?黎. 熱時熱殺?黎.
사운: 한시한살도려. 열시열살도려.
선사가 말했다. “추울 때는 추위가 그대를 죽이고 더울 때는 더위가 그대를 죽이는 곳이지.”
(추울 때는 그대가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그대가 더위가 되어라.)
-《서주동산양개선사어록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 중에서
兼中到겸중도
不落有無誰敢和 불락유무수감화
人人盡欲出常流 인인진욕출상류
折合還歸炭裏坐 절합환귀탄리좌
유무에 떨어지지 않으니 누가 감히 화답하랴
사람들 모두 속진번뇌 벗어나기 바라지만
결국에는 불타는 집으로 돌아가느니라
▶ 常流: 속된 무리. 상례常例.
▶ 折合: 마침내. 결국.
▶ 炭裏: 삼계화택三界火宅을 뜻한다. 삼계화택이 곧 청정세계라는 감춰진 함의가 있다. ‘?’으로 쓴 자료도 있다.
‘兼中到’는 즉편즉정卽偏卽正이면서 즉용즉체卽用卽體가 됨으로써
‘偏’과 ‘正’이 하나가 되는 가장 높은 과위를 뜻한다.
‘常流’는 생사고해의 속세를, ‘炭裏’ 또한 삼계화택三界火宅’을 뜻한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의 ‘炭裏坐’에는 감춰진 함의가 있다.
사람들이 모두 고해를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갖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게 되어 ‘折合歸還?裏坐’를 발현하게 되는데
그 말 속에 삼계화택이 곧 청정세계라는 감춰진 함의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법화경法華經》에서도 말하기를
‘이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이대로 항상 있다(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고 했고,
육조혜능六祖慧能도 ‘불법은 세상 속에 있으니 세상을 떠나서는 깨달을 수 없다(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고 했다.
왜냐하면 세간의 모습(常流)이란 다름아닌 ‘體’의 ‘用’이기 때문이다.
‘體’의 근본은 다함이 없고 ‘用’은 쉼이 없다.
사물이 끊임없이 생성하고 번성하는 《주역周易》 속의 ‘生生不息’도 이것을 말함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깨달은 자 역시 세간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아야 하고
그래서 ‘折合歸還?裏坐’라고 한 것이다.
‘炭裏坐’는 범부의 경계를 초월하여 일진법계一眞法界에 이른 것을 뜻한다.
게송으로 읽어본 다섯 자리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No. |
이름 |
개요 |
별칭 |
1 |
正中偏 |
日用而不知 |
凡夫位 |
2 |
偏中正 |
脫妄證本體 |
見道位 |
3 |
正中來 |
證體起妙用 |
修道位 |
4 |
偏中至 |
卽用卽本體 |
修道位 |
5 |
兼中道 |
體用同時到 |
究竟位 |
선가의 주요 가르침이 비록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견성성불見性成佛이지만
세상사람들의 근기가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수행자의 수행을 통해 이뤄내는 과정들을
부득이하게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 빗대어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리라.
동산양개의 제자이자 조동종曹洞宗의 제2조인 조산본적曹山本寂(840~901)은
스승 동산양개가 말한 ‘오위군신’ 각각에 대해
‘正中來’를 ‘君’으로, ‘偏中至’를 ‘臣’으로,
‘正中偏’을 ‘君視臣’으로, ‘偏中正’을 ‘臣向君으로,
그리고 ‘兼中到’를 ‘君臣都合’으로 설명하였다.
※ 위 내용은 SINA 블로거 悟心禪院 이 올린 「五位君臣頌釋義」를 개략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당대唐代 선승禪僧이자 조동종曹洞宗의 개조로 속성은 유씨兪氏이고 회계會稽(지금의 저쟝성浙江省 회계會稽) 사람이다. 어려서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하다가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에 이르렀을 때 손으로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내게는 눈과 코와 혀 등이 있는데 왜 경전에서는 없다고 하지요?” 그 말에 스승이 깜짝 놀라 아이의 자질을 높이 보고 오설산五洩山의 영묵선사를 찾아가 참례하고 머리를 깎였다. 21세 때 숭산嵩山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를 찾아가 깨달음을 구했고, 또 위산영우?山靈佑를 찾아가 무정설법無情說法 공안에 참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위산영우의 안내로 운암담성雲巖曇晟(782~841)을 찾아가 무정설법의 뜻을 물어 살폈으나 역시 시원하게 뚫리는 바가 없었다. 이에 지주池州의 노조보운魯祖寶雲과 남원도명南源道明 등을 찾아가 참례했다. 물을 건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크게 깨친 후에 운암雲巖의 법을 이었다. 대중大中(847~859) 말년에 신풍산新豊山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나 오래지 않아 예장豫章(지금의 쟝시성江西省)의 동산보리원洞山普利院으로 옮겨 오위군신설五位君臣說을 제창하여 문풍을 크게 떨쳤다. 함통咸通 10년(869) 삼월 초하루, 머리를 깎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종을 울려 대중에게 작별을 고하니 대중들이 이름을 부르며 슬퍼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동산이 홀연 눈을 뜨더니 “夫出家之人,心不附物,是?修行;勞生息死,於悲何有(무릇 출자가란 마음이 사물에 머물지 않아야 바른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사는 것은 힘든 것이고 죽는 것은 쉬는 것인데 어찌 슬퍼하는가)?”라고 말한 뒤 주지에게 우치제愚癡齊를 준비하게 했다. 그로부터 여드레째 되는 날, 몸을 씻고 방장에 앉아 입적했다. 세수 63세, 법랍 42세였다. 시호는 오본선사悟本禪師였으나 사람들은 동산양개 또는 동산으로 부르기를 좋아하였다. 동산의 법은 운거도응雲居道膺, 조산본적曹山本寂, 용아거돈龍牙居遁, 화엄휴정華嚴休靜, 청림사건靑林師虔 등 제자 26인이 이어받았지만, 특히 본적의 법계를 주류로 보고 스승 동산과 제자 조산 두 사람을 합해 조동종曹洞宗이라 불렀다. 저서로는 《현중로玄中路》, 《풍중음豊中吟》, 《보경삼매가寶鏡三昧歌》, 《동산어록洞山語錄 》이 있다.
◈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
당조唐朝의 선승이자 조동종曹洞宗의 2조로 속성은 황씨黃氏이고 탐장耽章으로도 불린다. 천주泉州(현재의 복건福建) 포전浦田 출신이다. 어려서 유학을 배우다가 열아홉 살 때 복당현福唐縣 영석산靈石山으로 가서 출가한 뒤 스물다섯 살 때 구족계를 받았다. 함통咸通 연간(860~873)에 선풍이 크게 일자 동산양개洞山良价를 사사하여 법을 이어받았다. 나중에 무주撫州(강서江西) 조산曹山(옛이름 하옥산荷玉山, 육조혜능을 흠모하여 조산曹山으로 개명)으로 가서 종풍을 드높이자 학도들이 모여들었다. 입적 후 원증대사元證大師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하옥광혜荷玉光慧, 금봉종지金峰從志, 녹문처진鹿門處眞, 육왕홍통育王弘通, 조산혜하曹山慧霞 등이 법을 이었다. 《무주조산본적선사어록 撫州曹山本寂禪師語錄》(2권)을 남겼다.
들돌님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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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곳이 없어 괴롭더니만
피하려는 마음을 놓으니
괴롭고 즐겁고
춥고 덮고....
그 무엇도 논할여지가 없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