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6.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에페4,7-16 루카13,1-9
지혜로운 구원의 삶
“회개, 책임을 다함, 사랑의 공동체 건설”
가을은 국화꽃의 계절입니다. 몇차례 된서리에도 청초한 들국화꽃 무리들 흡사 회개한 영혼들의 아름다운 공동체같습니다. 오래전 '들국화꽃'이란 시를 나눕니다.
“작아도 그 청초함과 향기는 비할바 아니다
크기와 자리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작디작은 송이송이 샛노란 들국화꽃 무리들
꼭 노오란 별무리 은하수같다
늦가을 매서운 된서리에 가을꽃들 다 졌어도
홀로 청초하다
그윽한 향기 멀리멀리 퍼진다
꿈꾸듯 피어난 샛노란 사랑이다”<2000.11.16.>
이어 이런저런 소식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페루 출신 해방신학의 선구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가 지난 화요일 10,22일 향년 96세로 선종했습니다. 교황은, “나는 오늘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를 생각한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자 교회의 사람이었다.”극찬합니다.
또 어제 교황은 성 보나벤투라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선종 750주년을 맞이하여, “두 거룩한 교사들은 크게 영감을 주고 교회를 부요하게 한 영감의 원천이었다”며 두 교회박사를 기립니다. 성 프란치스코회의 성 보나벤투라는 “세라핌 박사(The Seraphic Doctor)”로,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사박사(Angelicus Doctor)”로 불립니다.
교황청을 방문한 예수고난회 수도자들에게 주신 교황님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고통중인 세상에 하느님 사랑의 희망을 가져다 주십시오’, ‘여기 제가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관상생활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전쟁은 인류의 쓰레기입니다’, ‘사랑이 희망을 가져다 줍니다’, ‘마리아의 모범’” 순서에 따른 풍요로운 영적 가르침이었습니다.
행복은 발견이자 선택입니다. 언젠가가 아닌 오늘 지금부터 행복을 발견하여 행복을 선택하여 사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2,4), 어제 금요강론 시간 서두 인용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느님이 소망하시는바 우리 각자 모두 구원의 행복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어제 찾아온 '이 행복에 삽니다'란 짧은 시가 자주 저를 행복하게 할 거란 예감입니다.
“늘
앞에 있는 산,
늘
앞에 있는 당신,
이
행복에 삽니다”<2024.10.25.>
늘 앞에 있는 주님이 제 행복의 원천입니다. 다음 옛 어른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예술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시인詩人은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오기 때문에 시를 쓴다.”<다산>
시가 찾아오기에 시를 쓴다는 것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시인임을 깨닫습니다.
“시로써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예로써 바로 서고, 음악으로 완성한다.”<논어>
‘시삼백, 사무사(詩三百, 思無邪)’란 공자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래서 성서의 시편을 늘 노래로 바치는 우리의 공동전례기도가 얼마나 지혜로운 구원의 축복인지 감동합니다.
지금까지 모두가 풍요로운 영성생활에 좋은 참고가 되는 가르침입니다. 유비무환의 지혜입니다. 언젠가 예기치 못한 일에 앞서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것이 구원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이 왜? 하느님이 왜?...끝없는 물음만 있지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도대체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 하여 인과응보도 단편적일 뿐 모두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불행한 일을 만날 때, 우리는 조건반사적으로 인과응보의 프레임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불행한 일에 담긴 경고를 배우고 깨닫는 것이 지혜이자 겸손입니다.
빌라도에 죽임당한 갈릴래아 사람들의 불행을, 실로암탑이 무너져 죽은 사람들의 불행을 경솔히 죄와 연결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인을 캐기 보다는 각자 신속히 회개의 계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원인 해명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 영역입니다. 원인 해명하다보면 악순환의 미궁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니 이 또한 유혹입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결론 말씀이 아주 단호합니다. 결코 회개를 미뤄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인 예수님의 지혜가 빛납니다. 이어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회개의 절박성을 가르칩니다. 포도밭 주인이 하느님이라면 포도 재배인은 예수님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겠다는 하느님에게 간곡히 제동을 거는 포도 재배인 예수님입니다. 일단 심판을 유예하고 재기의 기회를 주십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모두 회개하라 연장되는 날들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회개지 죽으면 회개도 못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계획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도대체 소모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시작해야만 합니다. 과거는 지났고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 영역이 아닌 하느님 영역이고 오직 현재만 우리에게 해당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금 그분과 함께 있는 한, 나는 전혀 걱정할 것 없습니다(As long as I am with him now, I have nothing to worry about)’. 그분과 함께 회개의 지금을 사는 것이 바로 구원의 지혜입니다.
회개에 이어지는 지혜로운 구원의 삶은 바오로 사도가 가르쳐줍니다. 회개는 끝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각자 받은 은사의 몫에 따라 책임을 다함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여하여 실현해야 할 바오로의 원대한 공동체 이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결코 혼자의 구원은, 혼자서 완성의 구원은 없습니다. 더불어의 공동체를 통한 구원이요 전인으로서의 참나의 실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끊임없이 사랑으로 성장하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중인 그리스도의 몸인 유기체의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와 더불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통해 실현되는 각자 지혜로운 구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와 더불어 각자 책임을 다함으로 사랑의 공동체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