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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서울역/ 공광규
은하수 추천 0 조회 32 18.09.19 22: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역/ 공광규


 

서울역 4번 플랫홈에서 부산행 고속열차를 기다리다가 발견한

화강암에 새긴 서울발 이정표 조각물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음각되어 있다

내가 오늘 가려는 부산까지 441 킬로미터

목포까지 414 킬로미터

강릉까지 374 킬로미터

그런데 평양까지는 겨우 260 킬로미터로 표시되어 있다

인천까지는 38킬로미터인데

내가 살고 있는 일산에서 개성까지는 더 가까울 것이다

부산보다 조금 더 먼 신의주가 496 킬로미터

나진은 부산 가는 거리보다 두 배 더 먼 943 킬로미터이다

그렇더라도 고속열차로 간다면 6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내가 못 가본 저곳들은 얼른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대동강 건너 신의주에서 국경을 넘어 이베리아반도까지

나진을 거쳐 광활한 시베리아를 지나 북해의 어디쯤에 닿고 싶다

어느 날 배낭을 꾸려서 떠났다가

몇날 며칠을 묵으며 깨끗한 술 한잔 하고 돌아오고 싶은 곳이다

 

- 계간 애지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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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길은 뚫어야 하고 뚫린 길은 닦아야 한다. 닦아놓은 길에서 왔다갔다 잘 다니기만 하면 모든 일은 형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늘 길로 1시간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언젠가는 김포공항에서도 평양행 Domestic노선이 개설되리라 믿는다. 닦아놓은 모든 길 위에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나래를 활짝 펼친다면 8천만 겨레에게 그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으랴. 항공이 출발지점과 목적지점간 점과 점의 연결이라면, 육로는 그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풍경과 사람과 풍성한 스토리의 선으로 이어지는 이동 수단이다.


90년대에 발표된 신형원의 노래 가사처럼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5만원’만큼의 멀지 않은 길, 지금이야 택시를 대절하자면 20만원은 줘야겠으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남북정상의 의지만 확고부동하다면 북녘 어딘들 가지 못하랴. 정상회담이 몇 번 더 열리고 각계각층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획기적 계기를 마련한다면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택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리라. 서울에서 평양까지 육로 250km 거리를 달려 평양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그쪽 동무와 맑은 생태탕을 안주로 술 한 잔 한 후 돌아오는 길의 행복을 어디에다 견주랴.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선발대는 경의선 육로를 따라 시속 60㎞ 주행 4시간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개성부터 평양까지 왕복 4차선 고속도로 곳곳이 최근 폭우로 파인 탓에 더 이상 속도 내기가 불가능했다. 서울에서 전주보다 가까운 거리지만 더 천천히, 더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 말마따나 ‘잘 정비되지 않은 도로’였다. 지금 북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교통 인프라 사업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특별히 김현미 장관을 길게 소개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북한의 도로는 다 합쳐도 2만 6000km로, 10만 km가 넘는 남한의 도로에 1/4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간선도로의 포장률이 20% 미만이다. 오는 2020년 완공 예정인 수원~문산 고속도로에 문산~개성을 잇는 고속도로를 추가하면 서울-평양까지 두 시간 만에 갈수 있게 된다. 북한은 도로만 낙후한 게 아니다. 철로가 하나뿐인 단선이 97%에 이르며 선로의 유지 보수 상태 또한 형편없다. 그렇다 보니 경의선의 북한 구간은 최대 시속이 40~50km에 불과하며 동해선 구간은 최고속도가 20km 정도이다.


대륙과 해양의 접점에 위치한 한반도는 유라시아의 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단절되어 실질적으로는 섬과 같은 위치에 처해있지만 남북이 통합되는 순간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접하는 새로운 핵심적 지형이 될 것이다. 길만 잘 닦아놓으면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은 물론 통일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목포에서 서울을 거쳐 ‘신의주에서 국경을 넘어 이베리아반도까지’ 그리고 ‘나진을 거쳐 광활한 시베리아를 지나 북해’까지 마음껏 선을 이어 가는 자유 여행도 머지않으리라.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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